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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대가’를 치르게 하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등록 2013-10-19 16:17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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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세계화를 강요하는 저승사자 같은 기구다. 그러나 세계은행 부총재 출신이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그동안 이 기구들이 무책임한 금융세계화를 밀어붙였고, 이를 주도한 미국의 금융자본과 정치권이 상위 1%를 위한 행동만을 했다며 통렬한 비판을 가해왔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가 쓴 엄청나게 두꺼운 책 (The Price of Inequality, 열린책들 펴냄).

스티글리츠가 맹렬히 비판하는 것은 불평등이 나날이 심화되는 오늘의 미국사회다. 그는 분노에 찬 감정을 숨기지 않는데, 예를 들어 미국 사회를 ‘상위 1%’와 ‘하위 99%’의 대결로 묘사하는 것이다. 보통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지금의 미국은 이런 말을 들을 만한 사회인 것 같다. 특히 그는 2008년 미국과 전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금융자본과 상위 특권층 1%를 고발한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로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은 AIG의 경영진은 성과가 좋았을 때는 ‘실적 보너스’라고 하여 거액의 상여금을 챙겨왔는데 막상 자신들의 과실로 회사에 위기가 닥치자 ‘잔류 보너스’라고 하여 또다시 엄청난 상여금을 받았다. 회사가 어려운데도 회사를 나가지 않은 데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헐.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를 받은 이들이 이런 짓을 했으니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노하고도 남을 일이다.

책의 서두에는 오늘날 미국의 온갖 불평등 사례가 이어진다. 실직을 하여 의료보험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수많은 사람들, 미국에서 개인 파산을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은 실직 상태에서 가족이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연방 및 주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이 줄어든 상태에서 학생들은 많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2005년 개정된 파산법은 설사 파산한 학생이라 하더라도 대출금 상환을 면제받지 못하도록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이렇게 고통받는 와중에도 상위 1%는 그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런데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이 사태의 공범은 미국 정치권이다. 자신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기업들에 포획돼 민중에게서 대자본으로 부를 이전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보면, 오늘날 한국 정치가 딱 그 꼴이 아닐까 싶다.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이건희나 정몽구로부터 세금을 더 걷을 수 없다는 박근혜·새누리당을 보면 딱 그 짝이 아닌가?

지금도 미국에서는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오바마케어’를 둘러싸고 공화당의 저항으로 연방정부 폐쇄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각국의 불평등을 접한 스티글리츠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났던 민중투쟁을 보며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미국이라고 예외일까?’ 섬뜩한 문제제기다. 한국이라고 예외일까? 올 연말 국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다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수많은 복지제도마저 흔들리는 가운데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가진 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서민들의 권리를 외면한다면 그들에게 ‘불평등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김종철 노동당 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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