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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재구성되는 사회주의

반대파 주장에 귀를 기울여라,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등록 2013-09-13 17:33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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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의 도전, 케인스주의 정책 실시, 복지국가 출현 등으로 국가의 개입이 확장되는 가운데에도 ‘자유시장경제의 이상은 죽지 않았다’고 외치면서 끊임없이 국가 개입 축소와 자유시장주의를 설파하던 그룹이 있었다. 1947년 이들이 한데 모여 토론하던 스위스 제네바의 몽페를랭이라는 동네의 이름을 따서 ‘몽페를랭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그룹은 이후 자유시장경제 이론의 파수꾼으로서 꾸준히 활동하게 되는데, 이때 좌장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하이에크다. 오늘 소개할 책은 신자유주의의 태두인 하이에크의 저서 (원제 ‘The Road to Serfdom’)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4년에 쓰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던 하이에크는 당시 독일 민족사회주의(나치)의 발흥, 소련 공산주의의 확산, 그리고 영국에서도 세력을 넓혀가던 사회주의 사조를 바라보며 상당히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바로 나치즘과 파시즘,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일견 다른 것 같지만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됐다는 것. 즉,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집단주의 및 전체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 내에서 벌어진 민족사회주의(나치) 세력과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의 싸움은 기껏해야 우익 전체주의자와 좌익 전체주의자의 싸움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 그의 말대로 독일 곳곳에서 거리의 전투를 벌인 나치당원 중에는 공산당원 출신이 엄청나게 많았다. 무솔리니조차 이탈리아 사회당의 기관지 편집장 출신이 아니던가. 하이에크는 국가가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고 명령을 통해 경제를 조직하는 사회에서는 반드시 소수 관료에 의한 인민의 지배가 나타나게 되며, 무수한 인민의 이해관계를 하나의 방향으로 조직하려면 무자비한 권력 행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획경제는 반드시 전체주의로 간다고 주장했다. 즉, 전체 인민이 계획 당국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소련을 비롯한 지금까지 국가사회주의의 역사는 하이에크의 진단이 어느 정도 옳았음을 보여줬다. 그 반대로 하이에크의 주장처럼 자유시장경제가 인민의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이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이자, 우리 사회에도 만연한 극심한 양극화가 아니던가. 하이에크의 계승자인 프리드먼은 1994년, 이 책의 출간 50주년 기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했다. “지금 미국에서 진행되는 전 국민 의료보험 추진 같은 행태를 보건대 우리는 아직도 국가개입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헐…. 오늘날 미국의 의료 현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세상을 바꾸려는 진보주의자들은 반대파의 주장을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소개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자유시장경제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이때, 과거 사회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있는 그대로 곱씹어보고, 그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며 새롭게 재구성되는 사회주의의 이상,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김종철 전 노동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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