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케이블TV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다. “국정원 사태는 국정원이 단순히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 아니라 자신이 보호해야 할 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벌인 사건”이라는 나의 말에, 맞은편 의 아무개 논설위원은 “70%의 국민이 아니라 나머지 30%를 국민으로 생각하는군요”라고 비아냥댔다. ‘아… 지금 시대가 이러한 것인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는 자가 이런 토론에 나올 수 있는가.’ 아마도 지금의 미국에 대해, 특히 9·11 이후 미국의 질식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나보다 더 절망적인 학자가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의 (후마니타스 펴냄)에는 이런 절망감이 곳곳에 배어난다.
월린의 진단에 따르면 오늘날의 미국, 특히 9·11 이후 조지 부시의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닌 ‘전도된 전체주의’에 불과하다. ‘전도된 전체주의’는 고전적 전체주의처럼 정치권력이 모든 사회를 지배하고, 일체의 반대를 폭력으로 억압하지는 않지만, 시민들을 탈정치화하고, 누구도 다수를 형성할 수 없도록 유권자 집단을 분할 관리하며, 설사 권력이 바뀌더라도 수많은 견제 장치로 일체의 변화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즉 기득권 세력에게는 아무런 위해가 가해지지 않는 체제다. 그리고 이 전도된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업권력이다. 이는 오늘날 미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경제와 사회복지 등에서는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지 못해 안달이면서도, 성관계나 결혼, 출산, 생사에 관한 결정 등에서는 개입하도록 하지 못해 안달이 난 희한한 국가주의, 또한 안으로는 다원성을 말하면서도 밖으로는 미국에 반대하는 일체의 국가나 세력에 대해 악마로 규정하며 성전을 수행하는 극단주의로 말이다.
왜 미국이 이렇게 되었을까. 월린이 보기에 그것은 기업·정치·사법·군사 등 각 부문의 엘리트들이 서로서로를 포획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한 결과인 것 같다. 한 사례로, 2004년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던 딕 체니와 연방대법관 앤터닌 스캘리아는 부통령 전용기를 타고 가족과 함께 휴양지로 오리사냥을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때는 연방대법원이 체니와 석유개발 업체의 유착 의혹을 심리하기로 결정한 직후였다. 이렇듯 미국 각 부문의 엘리트들은 서로를 돌봐주며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해왔다. 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정부 관료로, 다시 금융기업의 경영자로 회전문 인사를 하면서 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리’해온 것이다. 불행히도 이 현상은 오늘날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기업권력이 정치·사법·군사 등 모든 부문의 엘리트와 결탁해 민주주의를 관리하는 오늘의 미국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면, 기업권력은 물론 가장 공포스런 국가기관(국정원·군대)이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는 우리나라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을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마지막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구절인 듯. “19세기와 20세기 내내 미국의 파편화된 데모스(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중)들은 탈주적 민주주의와 돌발적 난입의 정치를 실천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수많은 권리들을 실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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