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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냄새난다’는 세뇌

등록 2014-05-24 16:02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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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과 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36년 당시 영국 북부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심각한 실업 상태와 생활상에 대한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버밍엄·맨체스터·위건 등 북부 도시를 향한 여정을 떠난다. 그는 그곳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불결한 하숙집에서 생활하고, 수백m 지하의 갱도에서 일했으며, 시청과 도서관에 들러 노동자들의 생활통계를 조사했다. 그 몇 개월의 기록을 책으로 펴낸 것이 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말 그대로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오웰의 애정 어린 시선 속에 녹아 있는 내용이고, 2부는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과, 비록 중·상류층 출신이지만 날이 갈수록 빈곤해지는 중간 계층이 왜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는지에 대한 자성적 내용이다.

그는 1부에서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탄광노동의 고통을 절절하게 묘사하며 “여러 지식인들과 캔터베리 대주교, 그리고 학식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나마 고상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목구멍과 눈가에 석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일하는 이들 탄광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상기시킨다. 또한 두 집이 서로 등을 댄 채 십수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노동자들의 주거 상태를 보고하면서는 “도로에 면한 집의 사람들은 집들의 맨 끝까지 돌아가서 뒷마당의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걷는 거리가 200m에 달할 수도 있고, 뒷집의 경우는 화장실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 그나마 한 개의 화장실을 서른여섯 명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고발한다. 그는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자체 공공주택의 필요성을 말한다. 한마디로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인의 르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쩌면 2부 때문에 더 유명해진 면이 있다. 2부에서 그는 영국에서 나날이 빈곤과 실업, 불평등이 심각해지는데 그들을 구원할 사회주의는 왜 바닥을 면치 못하는지를 성찰한다. 오웰 자신이 중·상류 계층 출신이었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교육들, ‘노동자에게는 냄새가 난다’는 세뇌로 상징되는 무의식에서 벗어나는 데 자신도 엄청난 힘이 들었고, 아직도 많은 중·상류층 출신 진보주의자들이 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한다. ‘많은 중·상류층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과 함께 있을 때보다 자신을 급진파라고 생각하는 자신과 같은 계급 사람들과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말에 그의 문제의식이 잘 녹아 있다. ‘단지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진정으로 노동계급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는 좋지만 사회주의자는 싫다’는 대중의 평가를 전하며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언어와 행동, 타인에 대한 태도를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 때문인지 당시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좌파 지식인들은 불편한 시선으로 이 책을 대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온 지 70여 년이 지난 오늘, 나를 포함해 이 시대의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오웰의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늘 곱씹어야 할 대목일 것이다.

김종철 전 노동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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