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에게 이 잡지가 배달될 때는 이미 2018년 새해가 밝았겠지만, 저는 2017년 12월27일 밤 사무실을 지키며 이 글을 씁니다.
2018년 새해 한국 사회엔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 생각하다, 문득 50년 전인 1968년 한국인들의 삶이 궁금해져 옛 신문을 펼쳤습니다. 그해 1월1일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가라후토 교포송환 등 교섭’이었습니다. 가라후토가 뭐냐구요? 한자로 화태(樺太)라 쓰는 가라후토는 사할린의 일본식 지명입니다. 1945년 8월 조선이 해방됐을 때 사할린에는 약 4만3천 명의 동포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을 몰아내고 사할린 전역을 지배하게 된 소련은 극동 지역의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할 셈으로 해방된 조선인들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동포들의 귀향을 위해 당시 국회의원들이 나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같은 날 1면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越(월남), 신정 연휴 연장’. 이 기사엔 당시 전쟁을 벌이던 남북 월남(베트남)이 1월1일 설날을 맞아 24시간으로 예정했던 휴전을 12시간 늘려 36시간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사소한 뉴스가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생각해보니, 베트남전쟁은 한국인들에게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우리의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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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베트남에 첫 전투 병력을 파견한 것은 1965년 10월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동아시아의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는 안보적 고려 외에 경제적 이유도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 박근호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의 저서 을 보면, 베트남전쟁 특수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67년부터 1970년 사이 국민총생산(GNP)에서 전쟁 특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2.6∼3.5%, 수출 총액의 25∼4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현대 등 한국의 건설 대기업을 키운 것은 ‘팔할’이 베트남전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사를 회고해볼 때, 1968년은 매우 중요한 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트남 중부 꽝남성 일대에서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한 해가 1968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50년이 흘렀습니다. 1999년 이후 끈질기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과 한베평화재단은 최근 스토리펀딩 ‘내가 만난 베트남’을 시작했습니다. 이 스토리펀딩의 목표는 4월25일까지 3천만원을 모금하는 것입니다. 이 돈으로 민간인 학살 피해를 입은 베트남 마을에 조화를 보내드리고, 제사비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또 4월께 서울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을 여는 데도 보탤 것입니다.
이번호엔 베트남의 국민작가 반레가 한국의 벗들에게 보내온 글이 실려 있습니다. 반레가 한국과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90대 중반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고민하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1995년 10월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베트남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베트남 작가들과 교류하며 이들의 작품을 한국 사회에 번역·소개했습니다. 반레는 이들을 ‘친근하고 따스한 한국 친구들’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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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담은 교류를 통해 우정이 싹트고, 그 우정은 결국 증오를 녹여버립니다. 반레가 말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분열하지만 그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독자님들 가족에 새해엔 좋은 일만 있으시길!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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