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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불법 정착민에 올리브밭 송두리째 빼앗겨” 다시 평화가 올까

불법정착촌 무장자경단의 팔레스타인 토지·농산물 약탈과 인권침해, 2023년 이스라엘 가자 침공 이후 심화…휴전 발효 뒤에도 공포 사그러들지 않아
등록 2025-01-31 19:52 수정 2025-02-03 11:57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부린 마을에 사는 움 니므르 자벤이 자신의 올리브나무 아래서 수확한 올리브 열매를 손질하며 인터뷰하고 있다. 사우산 크와리크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부린 마을에 사는 움 니므르 자벤이 자신의 올리브나무 아래서 수확한 올리브 열매를 손질하며 인터뷰하고 있다. 사우산 크와리크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이 발발한 2023년 이후 사단법인 아디는 팔레스타인 현지 여성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직접 취재해 기사를 쓰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6개월 동안 취재 관련 교육을 받은 현지 기자들이 아디에 보내온 다섯 편의 기사를 차례로 싣는다. _편집자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우리 가족은 올리브밭을 송두리째 빼앗겼습니다. 수확 시기가 돌아왔지만 우리는 올리브 나무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 인근에 있는 부린 마을의 움 니므르 자벤(73)이 올리브나무 아래서 올리브잎을 떼어내며 울분을 토했다. 자벤의 가족에게 사실상 유일한 생계 수단인 올리브나무 대부분을 이스라엘 정착민에게 수탈당하고 몇 그루 남지 않은 것이었다. 자벤은 “우리 올리브나무지만 올리브 열매를 딸 수도 없고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2023년 이스라엘 침공 이후 접근이 금지된 우리 땅을 되찾을 길이 없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불법 정착민들의 무법 폭력

올리브나무(감람나무)는 성경에서 종려나무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식물로 원산지가 팔레스타인이다. 성경에서 방주 안에 있던 노아에게 비둘기가 가져다준 것은 올리브잎이었다. 그래서 올리브잎은 대홍수의 끝을 알리는 ‘평화와 화해’를 상징한다. 하지만 평화를 빼앗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올리브나무는 눈물의 씨앗이 돼버렸다.

팔레스타인에서 올리브 수확은 단지 농업 노동의 결실이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국가의 농업이 그러하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올리브 수확은 그들의 문화유산과 역사, 그리고 그들의 땅과의 유대를 상징한다. 수천 년 동안 이 지역의 올리브나무는 문화적·역사적 풍경 그 자체였으나 2023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축복받은 계절은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과 토지의 실제 소유주인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 갈등의 시간이 됐다.

자벤이 사는 부린 마을은 나블루스 남쪽의 작은 마을인데 사방이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린 마을의 현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정착촌 무장 자경단으로부터 겪는 인권 침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장 자경단은 이스라엘 극단주의자인 ‘가격표’(Price Tag·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좌파를 상대로 공격을 자행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극단주의 이스라엘 정착민 청소년 단체) 그룹이나 정착촌 군부 세력 ‘힐톱 유스’(Hilltop Youth·서안지구에서 활동하는 극단주의 시오니스트 청소년)들이다. 이스라엘이 행하는 팔레스타인 탄압 정책의 일환으로 이곳에 자리 잡은 이들 단체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수시로 위협하고 있다.

부린 마을 주민 약 3천 명은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으로 대부분의 토지를 잃었다. 원래 1만8천 두남(지중해 중동 지역의 토지 단위. 약 18㎢) 중 1만2천 두남이 몰수됐다. 몰수되지 않은 땅이라고 해도 올리브 과수원에 대한 이스라엘 정착민의 공격이 증가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게 됐다.

빼앗고 훔치고 폭행하고…

자벤은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이츠하르’ 사람들이 나와 가족이 소유한 땅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올리브를 훔쳐간다”며 “부린으로 가는 모든 입구와 출구를 장악한 이츠하르 사람들은 총기로 무장하고 있어 아무도 그들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시작된 뒤로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에 의한 폭력과 공격도 증가했으며 부린에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범죄가 일상이 됐다는 것이 자벤의 설명이다.

이츠하르는 1982년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 짓기 시작한 정착촌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1948년부터 시온주의를 내세워 팔레스타인 영토 전부를 통제하기 위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곳곳에 불법 정착촌을 건설했다. 처음 이츠하르에 세워진 건물은 두 채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세력은 팔레스타인 땅에 암이 퍼져나가듯 빠르게 커졌다.

이츠하르의 폭력은 자벤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팔레스타인 가족들에게도 악몽이 됐다. 이스라엘 군부를 뒷배로 둔 이츠하르는 올리브 수확 시기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올리브밭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나아가 수확 시기에 이른 올리브 열매를 훔치기도 일쑤였다.

이러한 토지와 농산물의 약탈은 부린 마을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안지구 전역에서 횡행하고 있다. 나블루스 남쪽의 후와라와 아시라 알키블리야 마을에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속적인 정착민 침해를 겪고 있다. 토지에서 쫓겨나거나 작물을 빼앗기고, 심지어 총격을 당하는 경우도 잇따른다. 자벤의 아들 니므르 자벤은 가족 땅에 접근하려다 이츠하르 정착촌에 구금된 뒤 폭행당하기도 했다. “28두남에 걸쳐 있는 우리 올리브밭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침범당했습니다. 3년 전에는 정착민들이 올리브나무 200그루를 완전히 불태웠고, 2년 전엔 8두남 지역의 나무 70그루 중 52그루를 벌목해 갔습니다.” 자벤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다른 부린의 주민 아흐메드 이사도 이츠하르 때문에 자신의 올리브밭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36두남의 올리브밭에 거의 접근하지 못하고, 고작 6두남에서만 수확할 수 있다. 이사는 “2023년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사람 삶의 모든 영역을 둘러싸고 탈출구를 차단한 뒤 미친 듯이 공격했다”며 “올리브 수확철이 시작돼도 정착촌 브라차와 이츠하르 주변 마을의 농부 90%가 농지에 갈 수 없거나 올리브를 수확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많은 가정이 올리브 수확에 실패하고 수출할 수 없게 되면서 수입원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먹을 식량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슬퍼했다.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에도 멀기만 한 평화

‘분리장벽 및 정착촌 저항기구’(Wall and Settlement Resistance Authority)의 수장인 무아이야드 샤아반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대가 모두 1만6663건의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공격은 팔레스타인의 토지·재산·생계를 겨냥한 것으로, 무고한 주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올리브 수확과 관련한 공격으로 많은 농부가 주요 소득원을 잃었고, 팔레스타인 경제와 문화에도 큰 손상을 입혔다. 단순히 경제적 자원일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뿌리를 상징하는 주요 유산인 올리브에 대한 공격은 이스라엘의 공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짐작게 한다. 2025년 1월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 전쟁의 휴전을 발효했지만 여전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평화는 멀게 느껴진다.

가자 전쟁 이전부터 불법 정착민들로 공포에 떨었던 자벤은 언제 자신의 올리브밭을 찾을 수 있을까.

 

나블루스(팔레스타인)=사우산 크와리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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