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포 소각장 백지화 투쟁본부 회원들이 2025년 1월20일 서울 마포구에서 소각장 설치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모두 매일 쓰레기를 만들지만, 그 처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소수다. 쓰레기 산이나 소각장 굴뚝은 내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매립지나 소각장 지역 주민들은 외롭게 싸운다. ‘님비(기피시설을 반대하는 이기주의) 아니냐’는 비난도 받는다. 하지만 쓰레기 처리 문제에서 꼭 던져야 할 질문들이 있다. 쓰레기 문제 해법은 매립 아니면 소각밖에 없을까. 만들어낸 곳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쓰레기 발생지 처리 원칙’(환경정책기본법 제7조)이 있음에도 왜 쓰레기는 늘 소외된 곳, 기존 처리시설이 있던 곳으로 몰릴까.
2022년 8월31일 서울시가 이미 하루 750t 생활쓰레기를 태우는 마포구 소각장 바로 옆에 하루 1천t을 소각할 수 있는 규모의 쓰레기 소각장을 추가로 짓겠다고 발표(단독 후보지 결정)했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약 3천t)의 절반 이상을 마포구로 몰아준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소각장 설치가 공익사업이라는 점, 소각장을 짓지 않으면 ‘쓰레기 대란이 우려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절박한 주변 주민들은 한밤중에 모여 기존 소각장에 반입되는 종량제봉투를 검사해 부실한 운영실태를 확인했다. 태우지 말아야 할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태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2023년 11월 마포구 주민들을 주축으로 소각장 예정지 2㎞ 이내에 사는 주민 1850명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상대로 ‘마포 쓰레기 소각장 입지 결정 고시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1월1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김준영)는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1월20일 한겨레21은 마포구 한 아파트 회의실에서 마포 소각장 백지화 투쟁본부(백투본) 활동을 해온 나희정·성은경·조인숙 공동대표와 윤아무개·이아무개 주민 등 당사자들을 만났다.
광고
—승소했습니다.
성은경 공동대표(이하 성) “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에 공감해주는 능력 있는 행정전문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다녔어요. 많은 변호사는 주민들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확률이 통상적으로 30% 미만이라고 했고, 특히 거대 서울시와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하기란 상당히 어렵다고들 말했습니다. 이번 승소로 아무리 공익사업이라도 법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사업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 공익이라고 해서 특정 지역의 과도한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상식을 재판부에서도 인정해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위법하다고 인정한 절차는 크게 두 가지다. 서울시가 ‘쓰레기소각장(광역자원회수시설)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할 때 주민대표 3명을 소각장 주변 주민으로 해야 함에도 ‘서울시 거주 주민’으로 구성한 점, 타당성 조사기관을 선정할 때 입지선정위가 직접 선정해야 하지만 서울시가 임의로 결정했다는 점 등이다. 다만 서울시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주민들은 2심 재판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광고
—주민들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윤아무개 주민(이하 윤) “서울시가 말하는 2026년 인천 매립지 직매립 금지로 인한 ‘쓰레기 대란 우려’를, 왜 우리(소각장 주변 주민들)만 부담해야 하나요? 판사님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말 ‘대란’이 올지, 다른 방법은 없을지 서울시가 낸 자료 등을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해서 의견서도 냈어요. 주민 1만6030명의 절절한 목소리(탄원서)도 제출했고요.”
주민들은 최근 5년 동안 하루 평균 서울시 발생 쓰레기가 3300t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례적으로 쓰레기 발생이 많았던 ‘2021년 코로나19 발생 시기’(3759t)가 포함된 점 등을 꼬집었다. 서울시가 통계자료를 부풀렸다는 의미다. 2024년 4월 서울시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18~2022년 대비 2033년 생활폐기물을 20% 줄이기 위해 ‘생활폐기물 반입량 관리제’를 시행한다는 점 등도 지적했다. 이 목표가 실현되면 1천t 추가 소각장은 필요 없다. 사실 ‘하루 1천t’은 서울시민 한 명당 하루 100g의 쓰레기만 덜 버리면 줄일 수 있는 양이다.
성 “(기존 소각장과 추가 소각장의 하루 소각량) 1750t은 한 지역에 부담시킬 수 없는 유례없이 큰 용량이에요. 이 부분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점도 어필했어요.”
광고
전국에서 기초자치단체 한 곳의 생활쓰레기 소각장 용량이 하루 500t 넘는 곳은 서울 3곳(노원·마포·강남구), 경기 2곳(수원·성남시), 인천 연수구, 울산 남구 등 7곳에 불과하다. 1천t이 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마포소각장백지화투쟁본부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단지 입주민 회의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백투본 활동 과정에서 서울시와 마찰이 많았죠.
나희정 공동대표(이하 나) “지난 2년6개월간 서울시가 주민들에게 한 일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커요. 2022년 12월 마포구 입지선정 주민설명회 때는 참석 주민을 200명으로 제한하더니 2023년 2월 (고양시) 덕은동 주민설명회 때는 주민도 아닌 사람들로 채워넣기도 하고요. 저희가 반발하니까, 서울시 공무원들이 업무 지구 쪽을 찾아가서 ‘찾아가는 설명회’를 한다면서 ‘소각장 지어도 무해하다. 편의시설을 몇천억원어치 짓는다’는 일방적인 말만 했어요. 2024년 11월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 때도 똑같이 했어요. 그래놓곤 소송자료를 보니 주민설명 자리를 수백 회 열었다고 하더라고요.”
성 “정작 저희는 업무지구분들한테 준 안내책자도 받지 못했어요. 담당 국장은 저희(백투본)를 만나선 분명히 말했어요. ‘걱정하지 말아라. 주민들이 반대하면 서울시는 사업을 진행 못한다’고요. 법적책임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한 것 같아요. 가장 쇼킹했던 기억은, 정말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나요, 2023년 8월17일 오세훈 시장을 만났을 때예요. 오 시장이 ‘소통이 잘 안 된 것 인정한다. 앞으로 소통창구를 마련하겠다’고 말한 거예요. 믿고 싶더라고요. 기대도 했고요. 그런데 딱 2주 뒤에 서울시가 (추가 소각장) 결정 고시를 하더라고요. 서울시처럼 큰 행정기관에서 특히 시장이란 직분을 가진 사람이 주민들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기망할 수 있는지…. 저는 티브이(TV)에서 노동자 투쟁을 보면 ‘왜 저렇게 과격하게 하지, 말로 하면 되는데 왜 힘들게 저래’ 이랬어요.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오죽했으면 저럴까.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더군요.”
윤 “아마 집회는 수십 번도 더 열었어요. 2년 넘게 마포구청 앞에서 서명운동을 하면서 전단을 나눠줬어요. ‘부엉이 감시단’(쓰레기가 제대로 수거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주민자치단체)이 2022년 9월부터 6개월 정도 실려 오는 쓰레기를 검사했어요. 폐타이어에, 음식물쓰레기에, 플라스틱 등등 반입 금지 품목이 넘쳐났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저희가 새벽 2시까지 검사했는데, 쓰레기차들이 밖에서 줄지어서 기다리다가 주민들이 돌아가면 들어오더라고요.”

서울 마포구 하루 750t의 쓰레기를 태우는 ‘기존 소각장’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백투본 제공
—백투본 활동으로 쓰레기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나요.
이아무개 주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없더라고요. 전에는 집에서 20ℓ 종량제봉투를 1주일에 2장까지 썼는데, 이제는 최대한 분리배출해요. 그랬더니 2주일에 1장 정도로 줄었어요. 제가 버린 게 태워져서 날아다니는 거잖아요.”
성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종량제봉투값을 과감하게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봉투값이 싸니 도덕적 해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윤 “쓰레기는 발생지 처리가 원칙이잖아요. 서울이 얼마나 큰 지역입니까. 최소한 구 단위로는 책임지고 자기 구의 쓰레기는 알아서 처리해야 해요. 자기 지역에 처리시설이 없으면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성 “기후환경 문제 정말 심각하잖아요. 소각장은 탄소 발생이 많은 쓰레기 처리 방식이에요. 오히려 쓰레기를 편안하게 그리고 더 만들게 하면서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소각장을 더 지을 생각만 하고 있어요. 쓰레기 자체를 줄일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인지 그런 노력은 하지 않죠. 서울시장은 오히려 세계적으로 거대한 소각장을 지은 이례적인 곳을 찾아가서는 ‘소각장이 필요하다’ 하고 있어요. 소각장 대신 제로웨이스트(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친환경적인 실천철학) 정책으로 전환한 이탈리아 카판노리나 필리핀 바기오 같은 데는 왜 안 가시나요? 소각장이 안전하다는 사람들 말만 옮기고 위험하다는 사람들 말은 왜 듣지 않나요?”
2023년 3월21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하루 처리량 1500t 규모의 쓰레기 소각장인 덴마크의 ‘아마게르 바케’를 방문했다. 하지만 아마게르 바케는 쓰레기 발생보다 많은 처리량 때문에 영국 등에서 쓰레기를 수입해 태우고 있다. 생활쓰레기 1t을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환원량은 1.052t으로 더 많다.(‘서울시 탄소중립 기본계획 2024~2033’ 참고) 이 때문에 쓰레기 매립과 소각은 지양해야 할 쓰레기 처리 수단으로 구분된다. 유럽연합 폐기물 지침은 쓰레기 처리를 가장 바람직한 방법부터 ①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Prevention) ②재사용(Reuse) ③재활용(Recycling) ④연료 등 자원으로 변환(Recovery) ⑤폐기 및 소각(Disposal) 순으로 소개한다.
쓰레기가 무해하다는 서울시의 주장에 대해 백투본과 마포구청은 2024년 11월6일 폴 코넷 미국 세인트로런스대학 교수를 초청해 반박하기도 했다. 당시 코넷 교수는 “네덜란드 하를링언 소각장의 경우 근처 달걀의 다이옥신 농도가 다른 지역 달걀보다 3배 이상 높아 당국에서 이 지역 달걀 섭취 중단을 권고했다”며 “한국의 경우 짧은 기간(24시간 이상) 배출을 측정해 소각장이 무해하다고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8천 시간 이상 측정해야 한다. 안전한 소각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주민자치나 언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셨다고요.
성 “시의원, 구의원을 사실 잘 모르고 뽑아왔어요.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추가 소각장 설치처럼 불공정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이 주민들을 조직·설득하고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주민 편에 서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나 “국회가 2025년 예산안에서 추가 소각장 예산을 삭감했어요. 그랬더니 오세훈 시장이 페이스북에 ‘민주당, 예산 농단의 망나니 칼춤을 거두라’고 썼어요. 정말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아쓰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예산이 삭감될 때 여야 합의가 있었고, 사업 추진에서의 법과 절차 위반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런 부분은 부각되지 않았어요. 또 주민들이 하는 말은 잘 기사화되지 않아요. 이번 승소 판결을 두고도 ‘1천t 쓰레기 어디로 가나’ 이런 기획기사들이 쏟아져 나와요. 정치인 말을 받아쓰는 기사보다 주민들 입장을 담는 기사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임은정 검사 “즉시항고” 게시글, 검찰 내부망서 2시간 만에 삭제
감사원의 칼 ‘국가공무원법 56조’…헌재 “최재해가 이를 위반했다”
[속보] 검찰, ‘윤석열 구속취소’ 즉시항고 않기로 최종 결정
‘찐윤’ 이창수 복귀…‘윤 부부 연루’ 명태균 수사 제대로 할까
최상목, 내일 임시국무회의서 ‘명태균 특검법’ 거부권 행사할 듯
이재명과 100분 대담 나눈 정규재 “상당히 깊이 있고 팽팽한 사고”
‘즉시항고 포기’ 심우정 대신 사과한 전직 검사 2명
백종원 ‘더본코리아’ 형사 입건…원산지 거짓 표시 혐의
이복현 “최상목 대행 상법 재의요구권 행사, 직 걸고 반대”
헌재, 검사 탄핵 기각하면서도 “국회 탄핵소추권 남용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