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0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 201호 대법정. 위험에 빠진 승객 400여 명을 내버려둔 채 세월호를 서둘러 탈출했던 선장 이준석(69)씨 등 선원 15명이 처음 법정에 섰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의 심리로 열린 제1회 공판준비기일에서다. 사망 292명, 실종 12명의 희생을 불러온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6일 만이었다(당일 기준). 살인, 살인미수, 수난구호법위반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씨와 1등 항해사 강원식(43)씨, 2등 항해사 김영호(47)씨, 기관장 박기호(54)씨 등은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다” “승객 구조는 해경의 몫이다”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다른 피고인 11명도 “선장, 1등 항해사의 지시 없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공황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배에서 빠져나왔다”고 범죄 사실을 대부분 부인했다.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여학생의 한 어머니는 “뻔뻔한 낯짝에 물병을 던지려다 참고” 법정을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목 놓아 울었다.
<font size="3">‘4011번’ 달고 온 이준석 선장</font>세월호 희생자 가족 100여 명은 오전 9시30분 경기도 안산에서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오후 1시40분께 광주지법에 도착했다. 진도 팽목항에 머물던 실종자 가족 4명도 개인 차량을 타고 합류했다. 가족들은 ‘네놈들이 사람이냐, 짐승만도 못한 ××’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법원 입구에 들어섰다. 법원 관계자가 “재판정에 가져갈 수 없다”고 막아서자 몸싸움이 벌어졌다. 몇 분간 실랑이가 이어졌다. “다 늦는다”며 다른 가족들이 설득하자 손팻말을 반입하려던 가족이 한발 물러섰다. 대신 일부 가족이 ‘300명의 고귀한 생명 짓밟은 선원, 내 세금으로 밥 먹여주는 것도 아깝다’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법원 입구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201호 대법정 방청석(103석)과 재판을 생중계하는 204호 보조법정 방청석(74석)이 가득 찼다. 오후 2시2분, 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와 장재용·권노을 판사가 들어왔다. 재판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비극적인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피고인들의 책임이 있다면 어느 정도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재판부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나가겠다.”
오후 2시23분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 등 피고인 15명이 차례차례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색 수의를 입은 이씨의 왼쪽 가슴에 ‘4011’이라는 수형번호가 박혀 있었다. 순간 방청석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이 살인자야, 밥은 잘 먹고 있냐. 우리 자식은 죽었다.” “당신 자식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뻔뻔한 얼굴 똑바로 보여라.” “어떤 ××가 웃어?”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세월호 피해자 가족대책위 위원장인 김병권(47)씨가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희생된 단원고 김아무개양의 아버지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아문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요즘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엄마·아빠 나 왔어’ 하고 말하며 가방을 내려놓을 것만 같다.” 말을 하다가 김씨가 흐느꼈다. 어느새 방청석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유독 피고인들만 살아 있다. 사고 당시 상황을 잘 알았던, 승객을 반드시 구호해야 했던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뛰쳐나왔다. 백번 양보해도 (피고인들이) 도망가기 전에 ‘대피해라, 빨리 나가라’는 안내 방송은 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우리 아이들은 살 수 있었다. 피고인들은 승객만 죽인 게 아니다. 우리 가족들의 영혼까지 죽였다.” 김씨는 피고인들을 향해 덧붙였다. “당신들의 자식이 죽었다 생각하고 진실을 말해달라. 꼭 부탁한다.”
<font size="3">눈가 붉어진 검사, 20분간 휴정</font>오후 2시43분 이준석씨부터 피고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확인하는 인정신문이 시작됐다. 피고인들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담담히 답했다. 3등 항해사 박아무개(26)씨만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검찰 쪽 박재억 부장검사가 피고인 15명에 대한 기소 요지를 낭독했다. “수학여행에 한껏 들떠 있던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은 피고인들의 잘못으로 영문도 모른 채 생사의 갈림길로 갔다. 아무 잘못도 없이 그저 착하게도 선내에 대기하다가 ‘엄마, 사랑해요’ 문자만 남기고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에 갇혔다. 아직 피해자가 돌아오지 않은 가족들의 애끓는 마음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떨리는 목소리로 박 검사가 낭독을 끝냈을 때 다른 검사 3명의 눈가도 붉어져 있었다. 20분간 휴정했다. 답답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법정을 나온 가족들은 두통약을 찾았다.
오후 3시40분부터 피고인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국선변호인들이 앞장섰다. 이준석씨 변호인의 말이다.
[선장 이준석씨 변호인] “이준석은 정년퇴직 후 계약직 직원으로 정식 선장인 신아무개를 대신한 임의 선장이다. 과적과 고박 불량은 1등 항해사와 선사(청해진해운) 관계자에 의해 통제됐다. 계약직에 불과한 피고인이 이의 제기하지 못했다. 사고 지점은 3등 항해사가 문제없이 운항해왔고 조타수는 15년 이상 경력자다. 세월호는 피고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원인이 돼 침몰했다.
배가 갑자기 기울었다. 이준석은 선실에 나뒹굴어 꼬리뼈를 다쳤다. 바로 조타실로 이동해 1등 항해사, 2등 항해사와 상황을 파악했다.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하고 구명장비 착용과 퇴선 방송을 차례로 지시했다. 할 수 있는 구호 조치는 다했다. 그러다가 옆으로 다가온 해경에게 조타실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됐다. 구명정과 헬기 등 구명장비를 갖춘 해경에 의해 승객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승객이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구호하지 않고 혼자만 살겠다고 탈출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상식에 비춰 이해하기 힘들다.”
이때 방청석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아무리 국선(변호인)이라지만 너무하는 것 아니냐. 적당히 해달라.” 재판장이 “피고인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하더라도 (재판은)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준석씨 변호인의 변론은 “잘못 이상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끝마쳤다. 3등 항해사 박씨 변호인의 주장이 이어졌다. 박씨의 눈은 그렁그렁했다. “2013년 12월7일 세월호에 승선했다. 피고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고 지점에서 조타수에게 5도 이내 변침을 지시했다. 당시 반대편에서는 배 한 척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배와 충돌하지 않도록 레이더를 지켜봐야 했다. 사고 직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서 조타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만 있었다. 해경에 구조된 기억도 피고인에겐 없다.”(박씨 변호인)
<font size="3">“제주 인근 해상으로 생각해 제주로 교신”</font>[2등 항해사 김영호씨 변호인] “8시50분께 (배가) 왼쪽으로 30도 이상 급격히 기울어 조타실로 갔다. 1등 항해사가 8시55분께 제주 VTS와 교신하면서 ‘퇴선할지 모르니 구명조끼 입고 승객들 대기시키라’고 했다. 그 교신을 듣고 양대홍(45·사망) 사무장에게 ‘구명조끼 입고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승객들을 바로 퇴선시켜 바다로 뛰어들게 할 수 있었는데 주변에 배가 없었다. 맹골수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세고 수심이 40m나 된다. 실종 위험이 있어 퇴선 지시를 못했다. 9시35~40분 근처 해경을 확인하고 양 사무장에게 무전기로 ‘퇴선하라’고 지시했다. 조타실에서 구조돼 해경 구명정을 탔다. 선원이라고 밝히고 승객들을 함께 구조했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해경이 출동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해경을 증인으로 불러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1등 항해사 강원식씨 변호인] “화물 과적과 고박은 형식상 피고인이 맡은 업무가 맞다. 하지만 선사(청해진해운)는 직접 화주와 화물계약을 맺었다. 화물 종류와 물량은 적하운임목록에 작성되는데 우련통운이 맡았다. 고박 작업은 원광공사가 했다. (청해진)해운에서 급여 받는 직원에 불과한 강원식은 과적을 통제할 권한이 없었다. 화물량을 줄여달라고 건의했지만 선사는 귀기울이지 않았다. 재화 중량 초과하지 않도록 평형수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8시55분께 채널 12번을 눌러 제주 VTS에 첫 구조 교신을 했다. 진도가 아니라 제주 VTS로 교신한 이유는 잠을 자다가 나와서 사고 위치를 몰랐다. 목적지인 제주 인근 해상으로 생각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청해진)해운에 연락하도록 돼 있어 휴대전화를 가지러 침실에 다녀왔다. 강원식이 (청해진해운에) 입사한 계기는 선장 이준석의 제안 때문이다. 그러한 선장이 있는데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원들이 해경에 구조된 상황이라 이후 해경 구조 활동이 원활히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다.”
조타수 조아무개(56)씨의 변호인은 “우현 대각도로 타를 돌리는 업무상 과실을 저질렀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3등 항해사 박씨의 지시로 135도에서 140도로 변침을 했는데 143도까지 진행됐다. 그래서 급변침을 막고자 좌현으로 15도 되돌렸는데 배는 계속 우현으로 넘어갔다.”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기관장 박기호씨의 변호인은 이렇게 항변했다. “부상당한 조리사들을 구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검찰이 밝혔는데, 사실이 아니다. 기관부 선원들에게 부상자 상태를 확인한 후 몸을 주물러주도록 지시했다. 뇌진탕으로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고 바로 옮겨서 조치할 상황이 아니었다. 갑판에 나왔다가 얼떨결에 해경 구조정으로 먼저 승선했고 뒤따르는 다른 선원들이 부상자를 데리고 올 것으로 생각했다.”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된 다른 선원들도 하나같이 “선장, 항해사의 승객 구조 지시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font size="3">재판부 관례 깨고 제일 늦게 법정 나와 </font>6월17일 제2회 공판준비기일 때 재판부는 증거 인부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검찰이 제출한 1만 쪽이 넘는 수사기록을 변호인들이 검토해 재판 증거로 인정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재판장은 또 “(세월호와 구조가 비슷한) 오하마나호를 현장검증 하러 가보겠다. 재판부가 전부 돌아다니며 봐야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방청객에 앞서 가장 먼저 퇴정하는 관례를 깨고 제일 늦게 법정을 나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재판이 끝난 뒤에도 희생자 가족은 법원을 떠나지 못했다. 피고인들이 타고 갈 호송버스를 가로막으며 “잘못한 게 없으면 떳떳하면 유족들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의 영혼이 보고 있다’ ‘판사님의 현명한 재판을 믿는다’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법원 앞 땅바닥에 1시간30분이나 앉아 있었다. 저녁 7시40분 가족들을 태운 버스 3대가 안산으로 출발했다. 5분 뒤 호송버스 4대가 법원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광주=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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