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봉규
“그때 사실 너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고 있었어. 근데 무작정 찾아온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냥 너한테 눌러앉은 거야.” 그녀에게서 사귄 지 3년 만에 들은 고백이다. 그때 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다소 충격이었다. 그녀는 26살 먹은 나와 6년째 연애 중인 내 여자친구다. 당시에 그녀는 나름 ‘배드 걸’(bad girl)이었다.
내가 20살 때, 그녀와 이른바 ‘썸’(연애를 시작하기 전 서로 알아가는 단계)을 타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무작정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 찾아갔다. 일전에 저녁 8시에 마친다고 들었다. 혹시나 싶어 7시에 갔다. 그런데 그녀가 퇴근하고 편의점을 나서는 게 아닌가. 서둘러 멀리 있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나를 본 그녀는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얼른 다른 곳에 가자고만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정말 둔했다. 당시엔 아르바이트하는 곳이라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알았다. 이제는 이해가 간다. 원래 그놈(?)이 편의점 앞에 오기로 예정돼 있었단다. 근데 걸어오는 내 모습이 영화 의 주드 로 같았다나 뭐라나.
나에겐 아주 결정적인 한순간이었다. 만약 ‘우리 잠깐 만날까?’ 따위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면 우린 지금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자 무작정 찾아가본 게 언제였는지.
늘 휴대전화를 곁에 두니 약속 잡는 게 참 편해졌다. 약속 시간을 정할 때 ‘한 3~4시쯤? 낼 연락할게’라고 답할 때가 많다. 그래놓고 다음날에 시시콜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다. 어디야, 뭐해, 나 이제 버스 타니깐 빨리 와라, 버스가 많이 막히네 천천히 와라 등등. 약속 시각 따윈 중요하지 않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오지 않는 그녀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쪽지를 남겼던 애틋함은 이미 다 사라졌다. 이제는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독촉하거나 유예한다. 우린 늘 채워져 있다. 주머니에서 꺼내 전송 버튼를 누르면 끝이다. 그래서 쉽다. ‘연락할게.’
이번주는 연락하지 말자. 여친, 남친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무작정 찾아가보자. 시시콜콜한 문자, 카톡은 잠시 접어두고 “보고 싶어서 왔어”라고 해보는 거다. 물론 못 만날 수도 있고 보기 싫은 장면을 볼 수도 있다. 그건 뭐 할 수 없고, 중요한 건 액션!
*주의사항. 무작정 찾아가보자고 해서 자고 있는 여자친구를 깨울 필요까진 없다. 급하게 씻고 화장하고 렌즈까지 껴야 하는 그녀들을 배려해주자. 그리고 새벽 2시 옛 남친들 자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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