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말로 하자, “생축”

등록 2013-11-26 13:59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생일 축하해!”

“오빠, 생일 축하해!”

수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듣는 후배의 목소리. 반가움보다는 어색함이 앞섰다.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얘는 왜 굳이 카톡으로 해도 될 얘기를 전화로 할까’ 생각했다.

“카톡으로 생일 축하하면 정 없잖아. 이러면서 오랜만에 목소리도 듣고 그런 거지.”

멍하니 있다가 깜짝 뺨을 맞은 것처럼 후배의 당돌한 한마디에 뒤통수가 번쩍했다.

지인들의 생일이 되면 나는 으레 ‘생일 축하해^^’라는 카톡을 보낸다. 지인들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일은 관계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생일 축하한단 말을 전화로 전하기는 왠지 쑥스럽기 때문이다. 평소에 연락을 자주 안 한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상의 소통에서 카톡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7할은 거뜬히 넘을 것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몇 번만 두드리면 친구와 약속도 잡을 수 있고, 사랑 고백도 할 수 있으며, 이별의 마지막 말도 전할 수 있다. 그야말로 만사가 엄지 하나로 통하는, 빠르고 편리해진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편지나 엽서처럼 문자로 마음을 전하는 유행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손글’과 오늘날의 ‘카톡’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똑같은 글씨체, 똑같은 이모티콘을 찍어내는 카톡과 달리 손글에는 필자만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랄까.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저… 오빠 좋아해요’라는 고백의 카톡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어찌 수화기 너머로 고백의 말을 전했던 그녀의 목소리에 비할 수 있으랴. 목소리가 주는 진심. 많은 사람들이 그 향기를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는 문자로 감정을 전하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전화 한 번 거는 게 바퀴벌레를 잡는 일만큼의 용기를 요하게 됐다. 문자메시지로 빠르고 편리해진 세상. 혹시 우리의 감정까지도 빠르고 편리해진 것은 아닐까.

한겨울 외투처럼 그동안 꽁꽁 싸맸던 당신의 진심, 이제 꺼낼 때가 됐다. 다이어리를 열어 오늘 생일을 맞은 지인이 누군지 확인해보고 통화 버튼을 눌러보자. 오랜만에 마주할 목소리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만 용기를 내보는 거다. 그러고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의 목소리로 전해보자. “생일 축하해!”

권혁주 독자·프리랜서 리포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