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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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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혼자 먹지 말자

등록 2013-11-12 14:54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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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통신사 자격으로 대마도에 갔던 조엄은 처음으로 ‘고구마’를 재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고구마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훌륭한 식량임을 알아보고 ‘구황작물’로 활용하기 위해 이 기묘한 물건을 들여온다. 그 옛날 가난한 백성을 위한 음식에 불과했던 고구마의 지위가 지금은 몸짱 열풍과 함께 ‘다이어트 기능식품’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심지어 미국에는 ‘고구마 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으며 여기에 소속된 코델 박사는 “하루 고구마 1개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까지 말한다. 믿거나 말거나.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고구마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말 그대로, 치명(致命)적이다. 며칠 전의 일로 기억한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운동을 한 지 몇 달. 식이요법을 병행하라는 친구의 말에 나도 고구마를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출근하셔야 함에도 항상 찐 고구마를 가스버너에 남겨두고 가셨고 헬스장에 다녀온 나는 그것을 아침 대용으로 맛있게 먹었다. 문제는 고구마 하나를 가볍게 넘기고 다른 고구마를 집었을 때 발생했다.

“컥!”

배고파 마구 집어먹었던 고구마가 목구멍을 막아버린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냉장고에 우유며 물이며 마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구마는 계속 내 목을 조여왔고 나는 베란다에 있는 어머니의 쓰디쓴 한약과 수돗물 중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면 저 멀리 고층빌딩에서 날 내려다보는 스나이퍼라든가 영화에 나오는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는 전문 킬러’ 정도일 줄 알았는데 고작 고구마라니! 다행히 수돗물로 목을 막았던 고구마를 밀어내긴 했지만 나에겐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의외로 이런 아찔한 순간이 일어날 가능성은 많다. 몸짱, 식스팩, S라인. 몸매관리도 스펙인 시대를 살아가면서 취직을 위해 준비할 것도 많은데 몸매까지 챙기려다보니 혼자 고구마 도시락을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식사 시간은 이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무표정하게 혼자 다이어트 음식을 밀어넣는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저러다 숨 막히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보면 식사 시간에 찾을 수 있는 여유나 즐거움이 보이지 않는다. 음식을 먹는다는 느낌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강박’을 계속 밀어넣는다는 착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물론 건강을 챙기는 것은 좋다. 하지만 우리 너무 숨 넘어가게 살지 말자. 고구마 도시락을 싸왔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먹자. 대화를 나누고 웃고 떠들며 먹다보면 그 단조로운 식단도 맛나게 느껴질 게다. 또 나처럼 목이 메더라도 물 한잔 떠다줄 친구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는가. 그래도 혼자일 땐 언제나 조심하시라! 암살자 고구마가 당신의 목구멍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박정환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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