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638F03"> 아침 출근길에 항상 지나는 골목이 있습니다. 골목을 들어서면 교복 차림의 청소년들과 종종 마주치는데, 제가 옆을 지날 때마다 기분 나쁘다는 듯 땅바닥에 침을 뱉곤 합니다. 대개 담배 한 대씩 물고 말이죠. 그럴 때마다 꿀밤을 한 대씩 때려주고 싶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 못하고 지나치기 바쁩니다. 요 녀석들 말고도 ‘불량 청소년’을 보면 침을 자주 뱉잖아요. 어떤 아이들은 이빨 사이로 ‘찍찍’ 침을 내뱉기도 하고요. 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요.(소심한 직장여성)</font>
→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이향숙 소장은 ‘불량 청소년’이 거리에 침 뱉는 이유를 과도한 스트레스와 분노 탓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소장은 “부모의 과도한 통제와 욕구 좌절 등으로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아이들은 거리에 신경질적으로 침을 뱉을 수 있다”며 “침 뱉는 행위와 비슷하게 거친 말투와 욕설, 동물 학대 등도 모두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답변을 이렇게 정리하면서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네요. 이향숙 소장께는 일반적인 ‘침 뱉기’에 대해서만 문의했습니다. 문제의 불량 청소년들이 ‘소심한 직장여성’님이 “옆을 지날 때마다” “기분 나쁘다는 듯 땅바닥에 침을 뱉곤 한다”는 개별 사례에는 미처 답변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향숙 소장의 설명을 ‘소심한 직장여성’님이 처한 상황에 대입해보면 힌트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 먼저 ‘소심한 직장여성’님이 옆을 지날 때마다 불량 청소년에게 스트레스가 쌓였을 가능성입니다. 제가 포착한 1차 단서는 아이들이 ‘담배 한 대씩’ 물고 있었다는 대목입니다. 본인들도 학생 신분으로 담배 피우는 행동이 떳떳하지는 않았겠죠. 이런 상황에서 예기치 못하게 낯선 어른을 맞닥뜨리니 아이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쌓인 스트레스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침 뱉는 행위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소심한 직장여성’님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만만하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교복 입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도 아무 말 못하고 지나치기에 바쁜 소심한 직장여성을 낮춰본 결과, 보란 듯 침을 뱉으며 적대적 행위를 했다는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바닷속 복어는 적대적 존재가 다가오면 몸집을 부풀려 위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불량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대적 존재인 기성 세대이지만 ‘소심한 직장여성’님은 비교적 만만해보이니 침을 뱉으며 불량스럽게 보이려 한 것이죠. 껌 씹는 행위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침 좀 뱉아봤다’ 혹은 ‘껌 좀 씹어봤다’는 표현이 젊은 시절 잠시 ‘놀아봤다’는 말과 동의어로 통하기도 합니다.
담배 피울 때 자연스레 침을 많이 뱉게 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실제로도 제 주변 흡연자 가운데 담배를 피우며 습관적으로 침 뱉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 나름이죠. 저도 담배라면 꽤 피우는 편이지만 침을 뱉지는 않거든요.
다음부터 침 뱉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활짝 웃는 얼굴로 “좋은 아침!” 등의 인사를 건네보세요. 옛말에도 있잖아요. “웃는 낯에 침 뱉으랴.” 물론 담배 피는 행위가 거슬릴 수 있는데, 이건 그냥 눈감아 해주세요. ‘소심한 직장 여성’님이 꾸짖는다 해서 아이들의 흡연 습관이 단번에 고쳐지지 않습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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