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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주량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등록 2009-06-17 16:11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006699">무엇이든 물어보라 하셔서 물어봅니다. 보통 ‘주량’이라고 하면 무엇을 말할까요? 그만 마시고 싶을 때? 필름이 끊기는 때? 마시다 쓰러지는 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충현)</font>
주량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주량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표준국어대사전은 “마시고 견딜 정도의 술의 분량”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정답입니다. 자, 그럼 독자 여러분 모두가 주량의 정의에 대해 동의가 되셨나요? 아니죠. 왜일까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견딜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속이 조금 울렁이는 걸 견딤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전봇대가 벌떡 일어나서 뺨을 후려치는 정도는 돼야 견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답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대체 뭘 견디며 자신의 주량을 판단하는지.

답변을 보니 대략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더군요. 첫 번째 ‘눈꺼풀’파입니다. 사회팀 막내 임지선 기자는 “졸음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마시는 술의 양”을 제시했습니다. 그 양이 대략 소주 서너 잔, 맥주로 환산하면 1천cc라는데, 이상하게도 ‘소맥 폭탄’은 대여섯 잔을 마신답니다. 두 번째가 ‘목구멍’파입니다. 사진팀 윤운식 기자는 “마시고 토하지 않을 때까지 먹는 양”이라고 소신에 찬 답변을 했습니다. 입사 뒤 제가 10년 동안 지켜본바 주량이 소주 반잔을 넘지 못하는 그의 말에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군요. 장광석 디자인실장도 “더 이상 먹기 힘들어지면, 술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느낌”이라며 목구멍파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두뇌파’가 등장하면서 ‘주량’ 논의는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발전합니다. 박승화 사진팀장은 “판단력이 흐려지면 이미 주량을 넘었다”고 본답니다. 스트레스 해소용 음주는 하지 않고 기분이 좋을 때만 알코올이 당기는 ‘엽기적 음주 습관’을 가진 박 팀장의 주량은 소주 두세 병입니다. 정치팀 최성진 기자도 “필름 끊기게 되는 양”이 주량이랍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이해할 만합니다.

우연하게도 나잇살 먹은 총각 기자들은 모두 장마철 방바닥 긁는 소리를 냅니다. 어쨌든 ‘낭만파’라 칭하겠습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여섯 살의 임주환 기자는 “고꾸라지지 않고 마지막 고백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주류 섭취량”이 주량의 정의랍니다. 제가 그 고백의 대상이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임 기자보다 한 살 어린 임인택 기자는 “헤어진 애인 생각이 저 가슴 아래서 꾸역꾸역 치밀어오를 때”까지 마신 술의 양이 바로 주량이랍니다. 소개팅 주선도 못하는 못난 선배로서, 당분간 임 기자에게는 술도 사주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봅니다.

어떻습니까, 따져보니 주량의 정의가 참 다채롭지요? 김미영 기자처럼 “누가 묻느냐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사회지수”라는 보신적 답변은 무슨 파로 분류할까요? 신윤동욱 문화팀장처럼 섬세한 성품의 기자는 얼굴 빨개질 때까지 마신 술이 주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바이트 직전”이라는 타협적 대답을 내놓는다고 고백합니다. “한국에서 적은 주량은 모자란 정신력(소극적 태도)으로 해석되기도 해, 강한 정신력처럼 주량도 늘려야 하는 무엇이기 때문”이랍니다. 차라리 말술이 부럽습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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