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4월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마친 뒤 배석자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6년 4월1일 밤 9시께(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연설 예정 시각을 약 12시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짤막한 글을 올렸다. “전임자보다 훨씬 덜 급진적이고 훨씬 더 지적인 이란의 새 정권 대통령이 좀 전에 미국에 휴전을 요청해왔다!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통행이 재개되면 (휴전을) 검토하겠다. 그 전까지는 이란을 철저하게 파괴해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
이란의 ‘새 정권 대통령’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개전 첫날 폭사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건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다. 그가 부친보다 ‘덜 급진적’이고 ‘더 지적’이란 평가는 전무하다. 현직 이란 대통령은 2024년 7월 대선에서 당선된 개혁파 정치인 마수드 페제시키안이다. 이란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의 말을 따 “이란은 휴전을 위한 조건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침략자(미국과 이스라엘)가 징벌받고 이란의 전쟁 피해를 전액 배상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에게 휴전을 요청한 건 대체 누군가?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을 언급한 직후 국제유가는 1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각국 주식시장도 반등세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종전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졌다. 하지만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2725단어로 이뤄진 대국민 연설문을 약 18분30초 동안 낭독했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사상 유례가 없는 군사적 성공”부터 과시했다. 그는 “이란의 해군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공군은 파괴됐다. 테러 정권을 이끌었던 지도부는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휘통제 체계는 초토화됐다. 이란의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발사 능력도 극적으로 취약해졌다. 이란의 무기 공장과 로켓 발사대는 산산조각 났다. 극히 일부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핵심적 전략 목표가 거의 완수됐다. 미국의 군사적 목적은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완수될 것이다. 향후 2~3주 안에 이란을 아주 강력하게 타격할 것이다.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이란의 군사능력이 약화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란은 여전히 이스라엘과 미군기지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페르시아만) 연안 6개국을 겨냥한 보복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3월27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의 미군 공중조기경보기(E-3)가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게 대표적이다. 개전 이후 한 달 동안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란 쪽 피해가 크긴 하지만, 이스라엘과 걸프 연안국의 피해도 쌓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알리레자 탕시리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 장례식이 열린 2026년 4월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 수많은 추모객이 운집했다. AP 연합뉴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3월26일 미국 국방부가 해병원정대 약 5천 명과 육군 82공수사단 병력 약 2천 명에 더해 보병과 기갑부대 등 약 1만 명을 추가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 정도 병력으로는 전면적 지상전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의 심장부인 하르그섬 등을 겨냥한 제한적 군사작전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지상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지상군을 투입하면 전쟁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지상군 투입 없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하나뿐이다.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고 공격을 멈추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쪽으로 기울고 있을까?
“정권 교체는 애초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다. 정권 교체를 말한 적도 없다. 하지만 정권 교체는 이뤄졌다. 기존 지도부가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도부는 덜 과격하고 훨씬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일정한 기간 안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전력망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연설에서도 기존 위협을 반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시한으로 내건 이란 전력망 공격 유예기간은 4월6일 종료된다. 이란 쪽의 거듭된 부인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선 “이란이 석기시대로 되돌아간 수준이 돼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우리는 떠날 것”이라며 “(이란과) 합의를 하든 안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란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전쟁을 중단할 수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이유가 뭘까?
3월28일 예멘 시아파 무장세력 ‘안사르 알라’(후티 반군)가 이스라엘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에 나섰다. 야흐야 사리 후티 반군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이스라엘의 주요 군사 목표물을 겨냥해 탄도미사일 일제사격으로 첫 군사작전을 수행했다. 이번 공격은 이란과 레바논·이라크·팔레스타인의 ‘저항 전선’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저항 전선에 대한 공격이 중단될 때까지 우리의 군사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식적인 참전 선언인 셈이다.

2026년 3월27일 이란의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 활주로에 세워져 있던 미군 공중조기경보기가 두 동강이 났다. AFP 연합뉴스
후티 반군의 가세는 확전 가능성을 키우는 불길한 조짐이다. 원유를 비롯해 전쟁이 불러온 세계적 공급망 교란도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후티 반군 쪽은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침공 직후부터 홍해로 통하는 바브엘만데브해협에서 상선을 공격하는 등 해협 봉쇄를 시도한 바 있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이 막히면 인도양에서 수에즈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이어지는 해상수송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힌 상태에서 바브엘만데브해협마저 막히면 공급망 교란의 파급 효과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단적인 사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란 침공 이후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봉쇄됐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산유량을 급격히 줄이지 않았다. 아람코(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사우디 쪽은 개전 이후에도 하루 평균 약 7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이 가운데 약 200만 배럴은 자국 내에서 정유하고, 나머지는 아라비아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서쪽 얀부 항구로 옮겨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통해 수출했다. 2024년 기준 사우디산 원유 수입 1위는 중국(약 479억달러), 2위는 한국(약 295억달러), 3위는 일본(약 287억달러)이다. 동북아 3국이 바브엘만데브해협 봉쇄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중동에 갈 필요도 없었다. 중동산 원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맹국을 돕기 위해 나섰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기 위한 지원 요청을 거절한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여과 없이 내비쳤다. 그는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들이 해협 개방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맹국에 두 가지를 제안했다. 그는 천연스레 이렇게 말했다. “첫째, 미국산 원유를 수입하라. 미국엔 충분한 원유가 있다. 둘째, 이제라도 용기를 내라. 미국이 요청했을 때 응당 그렇게 해야 했다. 당장 가서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하고, 보호하고, 활용하라. (미국의 공격으로) 이란은 사실상 파괴됐다. 어려운 문제는 미국이 해결했으니, 나머지는 아주 쉬울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초기인 2026년 3월2일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공습 직후 뿌연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3월10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호르무즈해협은 해상으로 세계 각국에 수송되는 △원유 38% △액화석유가스(LPG) 29% △액화천연가스(LNG) 19% △정유제품 19% △비료 등 화학제품 13%의 통로다. 개전 직전인 2월1~27일 하루 평균 129척의 상선과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적인 이란 침공 직후 해협이 봉쇄되면서 인도 등지에선 조리용 액화석유가스 품귀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걸프 연안 국가는 요소·인산이암모늄 등 세계 비료시장에 공급되는 원료의 3분의 1가량을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수출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비료 원료 수출길이 막히면서 브라질 등 농업대국은 대체 공급망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비료 부족은 농산물 생산량 저하로 이어져 식량위기를 부를 수 있다. 빈곤국을 중심으로 정치적 혼란이 빈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어찌됐건, 이번 전쟁이 끝나면 호르무즈해협은 자연스럽게 개방될 것이다. 그냥 자연스레 그리될 것이다. 이란 쪽도 전후 재건복구를 위해 원유를 수출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 수출이 재개되면 기름값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주가도 빠르게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특유의 낙관론도 빼놓지 않았다. 다만 ‘낙관’의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향후 2~3주’를 시한으로 제시했지만, 명확한 ‘출구전략’은 내놓지 못했다. 국제유가는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각국 주식시장도 급락세로 돌아섰다.
장기간 위협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이란이 실제 호르무즈해협을 ‘무기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후 해협에 고액의 통행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3월18일 알자지라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전쟁 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항구적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새로운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당연히 해협 양안 국가들이 당사국으로서 이 과정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만간 전쟁이 끝나더라도 호르무즈해협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한다. 무모한 전쟁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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