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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청년들은 왜 ‘진보’를 멀리할까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무력감에 ‘관성적 선택’, 점점 깊어지는 악순환…선택 효능감 회복이 ‘열쇠’
등록 2026-03-20 13:27 수정 2026-03-23 18:14
2026년 3월16일 한 시민이 대구 중구에 있는 서문시장을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26년 3월16일 한 시민이 대구 중구에 있는 서문시장을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흔히 대구를 ‘보수의 심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수식어는 대구 정치의 본질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문제는 보수 일색의 이념적 편향이 아니라 선택이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정치의 작동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치는 다양한 대안이 경쟁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궤도를 반복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런 점에서 대구는 ‘보수의 도시’이기보다는 ‘정치적 선택이 작동하지 않는 도시’에 가깝다.

이런 구조는 선거 과정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구에서 선거는 후보를 비교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정당이 공천한 후보를 유권자가 추인하는 절차에 가깝다. 일당 우위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누가 나와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혔고, 이는 대구 유권자가 정치적 판단을 위해 고민할 필요성을 지워버렸다.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서적 규범’

실제 인터뷰에서도 ‘공약을 꼼꼼히 살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어차피 공약을 봐도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굳이 찾아볼 이유가 없다”거나 “인물이나 정책보다 어느 당의 깃발을 꽂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왜 그 정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그냥”이라는 대답은 정치적 선택이 합리적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흐름을 확인하는 추인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이런 환경에서 정치적 선택은 많은 경우 개인의 소신보다는 사회적 관계와 관성에 의해 결정된다. 부모의 선택과 성향, 지역 분위기, 주변의 시선이 결합하면서 정치적 선택은 하나의 기본값처럼 작동한다. 대구 유권자 중에는 보수적 신념 때문에 보수정당을 선택하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보수정당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보수로 규정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도 상당수 있다.

이런 관성은 정치적 언어와 인식의 재생산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대구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규정하면서도 그 의미나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 같은 표현이나 특정 정당에 대한 강한 동일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는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부모 세대의 정치적 언어와 인식이 일상 속에서 내면화된 결과에 가깝다. 부모 세대에게 특정 정당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지가 아니라 지역의 생존과 연결된 집합적 경험이었다. 그 정당을 놓는 순간 대구가 소외되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오랫동안 축적됐다. 이런 인식이 다음 세대로 전이돼 청년들에게 일종의 ‘정서적 규범’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 효능감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인식 속에 청년들은 자신의 선택이 대구의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도, 정치가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도 확신하지 못한다. “어차피 대학을 졸업하면 떠날 거라 지역 정치에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부모님도 설득 안 되는데 지역을 어떻게 바꾸냐”는 인터뷰 응답은 그런 무력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와 내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동시에 약해지면서 정치적 선택의 의미도 점점 사라진다.

진보 진영에 거리감을 두는 이유

청년들의 정치적 무력감은 단순히 투표에 대한 거부나 무관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의 환경과 정서가 변화하지 않으리라는 인식은 공동체로부터의 심리적·물리적 이탈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청년이 대구를 떠나고 싶어 하고, 지역을 벗어나는 것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고려한다. 정치가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청년들은 각자도생과 지역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청년들의 조용한 탈출은 지역 정치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더욱 약화하고, 남겨진 이들의 무력감을 심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대안을 찾기보다는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을 반복하거나 아니면 아예 무관심으로 숨어버린다. “맹목적 지지는 문제”라고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그 당이 이긴다”고 체념하는 모습은, 대구 정치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견고한 구조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번 조사에서 청년들이 대구의 보수성을 ‘이념’이 아닌 ‘지역 문화와 관성’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정치는 자신들이 바꿀 수 없는 대상이라는 생각이다.

대구 청년들이 진보 진영에 거리감을 두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진보 가치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는, 대구의 정치 지형 안에서 진보를 선택하는 것이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 판단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정서적 요인도 작동한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당연한 환경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가족이나 주변 관계에 긴장과 불편을 수반한다. 주변 분위기는 특정 선택을 ‘안전한 것’으로 만들고, 다른 선택에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나 ‘장벽’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실효성에 대한 판단과 정서적 거리감이 결합하면서 청년들에게 진보는 ‘선택해도 바뀌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관계의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이념이 아니라 선택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정치적 조건에 있다. 청년들에게 대구는 ‘나의 선택이 결과를 바꿀 수 없는 도시’라는 믿음이 굳어진 곳이다. 정치가 이처럼 선택 없는 절차로 굳어질 때 도시의 활력도 함께 멈춘다. 다양한 대안이 경쟁하고 치열하게 검증되는 과정이 생략된 정치는 지역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위기에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

대구 정치의 변화는 “어차피 안 된다”는 이 견고한 체념의 믿음이 깨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정치 효능감은 교육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의 투표가 지역의 권력 지도를 바꾸고, 그 결과가 나의 삶에 작은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때 청년들은 지역 정치의 주체로 돌아올 것이다.

거대한 체념에 균열이 생기려면

결국 필요한 것은 다양한 정치세력 간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개혁과 서로 다른 선택이 실제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이다. 승자독식 구조를 완화하고 유권자의 다양한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비례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선택이 결과로 이어지는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어차피 바뀌지 않는다”는 거대한 체념의 벽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대구 정치의 변화는 이념의 교체가 아니라, 선택의 효능감을 회복하고 청년들에게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이는 단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소영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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