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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올인’· 이해 못할 유임…공공성·경제민주화 지켜질지 지켜봐야

[이재명 정부 첫 내각 인선]‘AI 3대 강국’ 위해 빅테크 기업인 중용·
철도기관사 노동장관 지명 ‘파격’… 현역 의원 후보자 절반 채워 ‘안정’ 도모
등록 2025-06-26 18:48 수정 2025-06-28 08:12
2025년 6월23일 이재명 정부의 장관급 내각 인선이 발표됐다. 윗줄 왼쪽부터 배경훈(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현(외교부), 정동영(통일부), 안규백(국방부), 권오을(국가보훈부), 송미령(농림축산식품부). 아랫줄 왼쪽부터 김성환(환경부), 김영훈(고용노동부), 강선우(여성가족부), 전재수(해양수산부), 한성숙(중소벤처기업부), 윤창렬(국무조정실장). 연합뉴스

2025년 6월23일 이재명 정부의 장관급 내각 인선이 발표됐다. 윗줄 왼쪽부터 배경훈(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현(외교부), 정동영(통일부), 안규백(국방부), 권오을(국가보훈부), 송미령(농림축산식품부). 아랫줄 왼쪽부터 김성환(환경부), 김영훈(고용노동부), 강선우(여성가족부), 전재수(해양수산부), 한성숙(중소벤처기업부), 윤창렬(국무조정실장). 연합뉴스


한 장의 사진이 있다. 2023년 6월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사옥에서 5명의 남성이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이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디플정) 위원장,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배경훈 엘지(LG) 에이아이(AI·인공지능)연구원장이 모인 이날 행사의 이름은 ‘초거대AI추진협의회 발족식’이었다.

며칠 뒤 윤석열 정부는 국내 초거대 인공지능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첫 사업으로 44개 공공기관과 81개 중소·스타트업에 네이버클라우드, 케이티(KT) 등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의 초거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채택했다. 초거대 인공지능 개발에 거액을 투자한 국내 빅테크가 ‘돈 나올 희망’인 기업간거래(B2B) 시장에서 판로를 찾지 못하게 되면서 정부가 나선 것이다.

 

민간 협의회 멤버, 고스란히 정부 안으로

사진 속 인물과 기업들은 2년 뒤인 2025년 6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됐다. 6월23일 이재명 대통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배경훈 전 엘지 AI연구원장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를, 국무조정실장에 윤창렬 전 엘지글로벌 전략개발원장을 지명했다. 앞서 청와대에 신설된 AI미래기획수석에는 하정우 전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이 임명된 터였다.

“(집권하면) 장관은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일을 잘하는 분을 모시겠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이념 타령할 형편도 아니고 우선 먹고살고 봐야 한다. 업계 출신이 많아지면 좋겠다.” 2025년 4월 후보 신분이던 이재명 대통령이 정규재, 조갑제 등 보수 인사들과 만난 식사 자리에서 했다고 전해진 이야기다. 6월23일 11명의 장관 인선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실행해냈다.

장관 인선에 즈음한 6월20일 과기정통부와 디플정은 국세청, 국민권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등 공공 영역의 ‘초거대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 지원 사업’의 수행기업 공모에 나섰다. 초거대 인공지능 서비스 제공 능력이 있는 기업에 재정이 본격 투입되는 것이다.

엘지 AI연구원장 취임 당시 ‘모든 문제를 다 ‘딥러닝’(기계 스스로가 인간의 뇌처럼 심층 학습할 수 있는 수준을 뜻함)으로 해결한다’는 소신을 밝혔을 정도로 ‘인공지능에 진심’인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는 6월24일 “이재명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세계 3대 강국 실현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6월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사옥에서 열린 ‘초거대에이아이(AI)추진협의회’ 발족식에서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회장, 배경훈 엘지(LG) AI연구원장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 제공

2023년 6월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사옥에서 열린 ‘초거대에이아이(AI)추진협의회’ 발족식에서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회장, 배경훈 엘지(LG) AI연구원장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9일 만에 주요 부처 11명의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내각 인선을 서두르고 있다. 6월23일 인선 발표 당시 “중동 분쟁 등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흐르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지고 있다. 청문 절차 등이 빠르게 진행돼 당면 위기에 내각이 신속히 대응할 수 있기 바란다”는 뜻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전했다.

이날 발표된 장관 인선 명단은 배경훈(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성숙(중소벤처기업부), 조현(외교부), 정동영(통일부), 안규백(국방부), 권오을(국가보훈부), 송미령(농림축산식품부·유임), 김성환(환경부), 김영훈(고용노동부), 강선우(여성가족부), 전재수(해양수산부)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인선도 이날 발표됐다.

 

열차 운행하다 지명 소식 들은 김영훈

‘빅테크 기업인들의 전진 배치’는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던 엘지와 네이버 출신들이 새 정부의 인공지능 전략을 이끌 경우 성과가 커질 것이라는 업계의 기대감이 크다. 반면 빅테크를 규제해야 할 정부 요직에 빅테크 출신이 배치되는 ‘세계적 추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마티아스 슈필캄프 ‘알고리즘워치’(독일) 이사는 6월25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제4회 사람과디지털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여해 “기업은 정부를 이용하고 정부는 기업을 이용해 기업이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일하도록 놔두는 상황은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6월24일 “에스케이(SK)텔레콤·엘지유플러스 출신인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와 네이버 출신인 한성숙 중기부 장관 후보자가 우려스럽다”며 “해당 후보자들이 출신 기업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 있는 통신 공공성 강화, 경제민주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인사들인지 엄정히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번 1차 조각에서 ‘기업인의 전진 배치’만큼이나 눈에 띈 것은 ‘노동계 출신의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철도기관사 김영훈씨는 인선이 발표된 6월23일에도 밤 9시까지 새마을호 열차를 몰아 ‘장관 임명 소감’을 노동 현장에서 밝히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그는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라는 주권자들의 명령을 하루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파격’ 뒤에는 12명의 국무총리·장관 후보자 중 절반을 민주당 현역 의원으로 채워 ‘안정’을 추구했다. 앞서 지명한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해 통일부 정동영(5선), 국방부 안규백(5선), 환경부 김성환(3선), 해수부 전재수(3선), 여가부 강선우(재선) 장관 후보자가 모두 민주당 현역 의원이다. 국가보훈부 장관에는 대선 기간 영입된 한나라당(국민의힘) 출신 권오을 전 의원이 지명됐다.

 

폐지 위기 여가부, 성평등가족부로 부활 기대

폐지 위기에 몰려 무려 16개월 동안 비어 있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강선우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초대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강 후보자는 소감문을 통해 “나의 오늘과 내일을 누군가에게 말씀하시고 싶을 때, 그 곁에서 낮은 무릎으로 몸을 기울여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장관으로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관리법 등 농업개혁 4대 입법을 ‘농망법’이라 부르며 거부해온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깜짝 유임’에는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강훈식 실장은 “이재명 정부의 가치와 지향에 동의해서 열심히 활동할 분이라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쓰겠다는,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사”라고 말했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임명 철회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6월23일 발표한 장관 후보자 11명 중 여성은 강선우·송미령·한성숙 3명이다. 40대는 2명(강선우(47)·배경훈(49)), 50대는 4명(전재수(54)·김영훈(57)·한성숙(58)·송미령(58))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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