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임기 단축 개헌 등 퇴진 요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겨레21을 비롯한 다수 언론의 보도로 ‘김건희-명태균 게이트’가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2024년 10월31일 더불어민주당이 명태균씨에게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언급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을 공개한 일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날 조국혁신당의 ‘3년은 너무 길다 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라. 스스로 퇴진하지 않으면 답은 탄핵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날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도 “탄핵의 사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 넘칠 지경이다. 탄핵된 두 번째 대통령이 되기 전에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어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홍준표 대구시장도 “우리 당 일부 중진들이 배신하고 야당과 야합하는 걸 보면서 (…) (박근혜) 탄핵 전야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혁신당은 10월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원내 정당 가운데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요구 집회를 열었다. 또 11월2일 보수의 중심지 대구에서 전국 순회 탄핵 촉구 집회를 시작했다. 11월6일엔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 중간 평가 토론회’를 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1월 말까지 혁신당의 탄핵소추안 초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11월6일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장유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센터 소장은 윤 대통령의 17가지 정치 분야 실정(실패한 정치)을 발표했다. 정치 분야 외에도 경제 분야 17가지, 사회 분야 13가지, 외교·안보 분야 10가지 등 모두 57가지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발표됐다. 혁신당의 황운하 의원은 “오늘 발표된 윤 대통령의 실정은 혁신당의 탄핵소추안 작성 때 그 자료가 된다”고 밝혔다.
정치 분야 17가지 실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부정 △왜곡된 과거사 인식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대응 문제 △법률안 거부권 남용 △시행령 통치 △검찰의 수사·기소권 남용 △채 상병 사망의 진실 은폐 및 구명 로비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양평고속도로 불법 특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공수처 무력화 △감사원의 퇴행 △국정원 개혁의 퇴행 △언론 탄압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 △국민의힘 당무 개입 △명태균-김건희-윤석열 게이트 등이었다.
그러나 아직 다수 야당인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에 대해 매우 신중하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11월3일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과 명씨 사이의 대화가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면서도 “탄핵 관련 부분은 (…)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민주당 지도부의 진성준 정책위 의장은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은 국회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해서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국민의힘이 박근혜 탄핵 학습 효과가 있어서 쉽게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장외투쟁과 특검법 처리를 통해 여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민의 높은 분노를 체감해야 국힘 의원이든 윤 대통령이든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정치학)도 “현재로서는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 모두 쉽지 않다. 국민의힘에선 임기가 그대로 간다고 보는 사람이 압도적일 것이다. 그래서 먼저 특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단계가 바뀌어야 행위자들의 계산이 달라진다. 탄핵이나 개헌을 해도 행위자들이 다치지 않고 이익이 더 커져야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은 정치권 전체에 매우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태극기 집회의 본격화로 진보-보수 간 대립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탄핵 정국으로 간다면 박근혜 탄핵 때와 달리 진보-보수 집회가 격돌할 가능성도 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박근혜 탄핵 경험이 보수 정치인들의 계산을 복잡하게 만든다. 당시 탄핵 동참으로 보수 세력이 궤멸되고 참여한 의원들이 당내에서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핵에 참여하는 것을 더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국회의 소추도,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인용 결정도 모두 쉽지 않다. 현재 6명의 헌법재판관의 성향은 보수 4명-진보 2명으로 평가된다. 공석인 3명의 재판관을 국회에서 여당 1명-야당 2명으로 추천해도 보수 5명-진보 4명이 된다. 헌재가 국회와 국민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해도 어떤 결론이 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결정하더라도 헌재의 인용 여부는 불투명하다. 현재의 6명 재판관으로는 결정하기도 어렵다. 최종적으로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거나 인용되지 않아도 모두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부담으로 인해 나온 대안이 임기 단축 개헌이다. 불을 붙인 것은 10월31일 진보 시민사회 원로들의 국회 기자회견이었다. 이들은 “탄핵은 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지속시키거나 헌재를 통과하지 못할 우려가 있고, 여권의 필사적인 저항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권을 신속하게 종식시키기 위해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2년 단축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부영 전 의원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탄핵과 달리 개헌은 국민이 참여해서 직접 결정한다. 국민 주권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11월1일엔 국회에서 ‘임기 단축 개헌 연대 준비모임’이 출범했다. 민주당과 혁신당 의원 20여 명이 참여했고,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도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이 모임의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여당에 선택의 폭을 열어주는 것이다. 한동훈 국힘 대표나 윤 대통령도 개헌이라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 야당인 개혁신당의 허은아 대표도 11월4일 “임기 단축 개헌으로 새로운 공화국을 준비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역사 앞에 이행해야 할 마지막 의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 국민의힘은 틈을 보이지 않는다. 11월4일 한동훈 대표는 “어떤 이름을 붙인 헌정 중단이든 국민과 함께 국민의힘이 막겠다”고 말했다. 김상훈 국힘 정책위 의장도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은 이재명 방탄을 위한 정쟁몰이이며, 요건도 되지 않는다. 극단적 정쟁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 단축 개헌은 탄핵보다 나은 점이 있다. 모두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일단 국회에서 합의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또 개헌 과정과 그 이후의 대선 등 정치 일정도 계획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나 국힘의 수용성도 좀더 높아질 수 있다. 최종 결정도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국민투표로 하므로 정치적 정당성도 더 크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탄핵보단 임기 단축 개헌이 좀더 나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탄핵은 사회에 주는 타격이 크다. 윤 대통령도 탄핵되는 것보다 임기를 단축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덜 불명예스러울 것이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임기 단축 개헌이 추진된다면 윤 대통령이 따라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기 단축 개헌 역시 논란을 안고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행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돼 있다. 이승만, 박정희처럼 헌법을 바꿔 임기를 연장하는 독재자를 막으려는 조항이다.
서복경 대표는 “임기 단축 개헌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법률은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지만, 헌법은 상위 규범이 없고 국민투표로 결정하므로 다툼이 있을 수 없다.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헌법에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태호 교수는 “소급해서 법적 지위를 바꾸는 것이니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러나 헌법 개정자인 국회의원의 3분의 2, 국민 과반수가 동의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공동체의 이익이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이익보다 더 크다면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 전문가도 있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헌법 128조 2항에 단축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고, 차기 대통령부터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과거 소급입법 개헌 사례가 있었지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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