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예전에 던졌는데…, 저를 원망하시지 말기를~. 저 건드리지 마세요.”
2024년 6월25일 명태균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 직원이자 김영선 전 의원의 회계책임자인 강혜경씨가 페이스북에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2024년 11월이 된 지금 시점에서 강씨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김건희 여사 공천·국정·당무 개입 의혹의 핵심 제보자다. 하지만 저 때는 의혹이 불거지기 석 달 전이다. 강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2024년 6월께 명씨는 이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창원지검의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에서 자신의 혐의를 벗고자 강씨에게 ‘돈거래’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모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면서 추후에는 여론조사를 진행한 미래한국연구소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조직적인 증거인멸도 진행했다.
돈거래의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을 위한 여론조사였다. 명씨는 2022년 3월 대선 전 윤석열 당시 후보를 위해 81차례의 여론조사를 진행하며 3억7520만원을 썼다. 이 돈은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을 원했던 시의원 예비후보 ㄱ씨와 경북 지역 군수 예비후보 ㄴ씨로부터 일부 충당했다. 이들은 윤석열 부부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과 관계가 있던 명씨를 통해 공천받을 심산으로 돈을 건넸던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들은 그러면서 명씨에게 건넨 돈의 일부에 대한 차용증을 전 미래한국연구소 소장 김태열씨에게서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공천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이들에게 거센 상환 독촉을 받게 된 명씨는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경남 창원의창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명씨가 윤 대통령을 위해 해준 여론조사 대가로 공천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김영선 전 의원에게 돈을 요구했고, 김 전 의원은 선거보전금 일부(9600여만원)를 명씨에게 건넸다. 명씨는 이후 미래한국연구소를 통해 ㄱ씨와 ㄴ씨에게 각각 6천만원씩 돌려줬다. 이 돈거래를 수상하게 여긴 선거관리위원회가 수사를 의뢰하면서 창원지검의 수사가 시작됐다. 실제로 공천 대가로 돈을 주고받았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한겨레21이 확보한 ㄴ씨와 강씨의 2024년 4월2일 통화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이들은 2024년 2월께 검찰이 통신 조회를 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본인들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음을 파악했다. ㄴ씨는 이날 강씨에게 “우리 말이 맞으면 끝이라 (검찰 수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말이 틀리면 문제가 틀려진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대비해 강씨와 ‘입을 맞추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ㄴ씨는 “나랑 관계 있는 돈은 김 소장한테 받은 돈 이것밖에 없거든”이라고 말했다. ㄴ씨가 말하는 ‘이것’은 김 전 소장이 작성해준 차용증에 적힌 금액(6천만원 추정)으로 보인다.
ㄴ씨는 차용증을 받은 돈에 대해 ‘미래한국연구소 운영자금으로 빌려준 돈’이라 주장하려 입을 맞추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ㄴ씨가 명씨 쪽에 건넨 돈은 차용증에 적힌 금액보다 더 많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이 김 전 소장을 압수수색하면서 ‘빌린 돈으로 말을 맞추자’라는 취지로 ㄱ씨와 ㄴ씨가 작성한 메모 두 장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씨는 “미래한국연구소와 나는 관계없고 돈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씨는 미래한국연구소 등기에도 이름이 없다. 돈거래 장부는 주로 강씨가 작성했고, 수금책 역할은 김 전 소장이 담당했다. 명씨는 돈거래와 관련해 본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명씨는 자신의 미래한국연구소 물건을 다른 사람을 통해 옮기라고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명씨는 윤석열 후보를 위한 여론조사를 하게 하는 등 실질적으로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를 쉽게 말해 ‘손절’하려 했던 셈이다.
미래한국연구소는 2023년 4월30일 폐업했다. 미래한국연구소의 집기류를 옮겨둘 장소가 필요했다. 이 집기류는 명씨의 동업자인 강아무개씨가 보유한 경남 창원시 의창구의 한 사무실로 옮겨졌다. 이 건물을 창원 신규 국가첨단산업단지(창원국가산단) 발표 두 달 전인 2023년 1월 강씨에게 매매한 공인중개사 ㄷ씨는 “평범한 집기류”라고 했지만, 명씨와 관련해 여러 정보가 담긴 물건들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기류는 2024년 8월 정도까지 이 건물에 있다가 9월께 치워졌다. 명씨 등을 수사하는 창원지검이 2024년 10월 초 뒤늦게 압수수색을 나왔을 때 집기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명씨가 사전에 검찰 압수수색을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명씨는 ‘제3자’에게 물건을 옮길 것을 요구했다. 2024년 5월께 김 전 소장은 명씨의 동업자 강씨로부터 전화를 받아 ‘물건을 치우라’는 얘기를 듣는다. 김 전 소장은 “해당 물건은 명씨가 자기가 총선 때 쓰겠다고 했던 거라서 내가 가져다놓았을 뿐이지 처분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라고 전했다. 명씨 물건인데 자신더러 물건을 치우라는 게 말이 안 됐다고 김 전 소장은 생각했다. 그런데 김 전 소장은 2024년 8월 명씨와 자신이 함께 아는 지인을 통해 집기류를 또 치워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명씨는 김 전 소장을 포섭하려 했다. 뉴스토마토 등에서 명씨를 통한 김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 보도가 나왔던 2024년 9월 중순 명씨는 김 전 소장에게 메시지로 두 차례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김 전 소장은 “지인을 통해 명씨로부터 두 차례 연락이 왔다. ‘왜 강혜경 꾐에 넘어가냐’라며 (명씨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명씨 지인이) ‘소장님도 협조가 돼야 한다. 법적으론 대표로 돼 있지 않냐’라고 말하더라”라며 “돈거래 관리를 했던 강씨에게 책임을 몰자는 모의를 나와 하려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소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던) 그때도 (명씨는) 강혜경이가 이렇게 모든 걸(녹취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을 거다. 자기들이 강씨랑 강씨 남편한테 가서 협박하고 뭐 하고 하던 게 그렇게 하면 묻어질 줄 알았을 것”이라며 “명씨는 ‘강혜경이가 왜 판을 키우냐, 그냥 깨끗하게 정치자금으로 그냥 그 처벌을 받으면 되는데’ 하면서 합리화를 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녹취가 계속 나오면서 덮을 수 없이 판이 커져버린 것”이라고 했다. 명씨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강씨에게 혐의를 몰고 증거를 인멸하려 했지만, 오히려 강씨의 방대한 통화 녹음 파일 공개로 명씨 자신을 비롯해 윤 대통령 부부의 치부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됐다는 얘기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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