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망설였고 무서웠지만, 제 양심에 따르기로 결정했어요.”
제보자가 연락해온 것은 2016년 어느 휴일 오후였다. 그는 느닷없이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검열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작품성이 아니라 ‘광주’가 문제였고, 책에 줄을 쳐가면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골라내 사실상 사전 검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중요한 책인데, 그래서는 안 되잖아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이 주관하는 2014년 세종도서 선정·보급 사업 심사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5·18 광주’를 다뤘다는 이유로 선정에서 배제됐다는 얘기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 뒤인 2024년 10월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준희 진흥원 원장은 당시 세종도서 선정 과정에서 ‘노벨상 작가’ 한강의 작품을 탈락시킨 것을 사과했다. 다만 사상적인 면을 문제 삼아 배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정부가 한강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작품을 검열해왔다는 점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국가의 출판문화 진흥을 담당한 최일선 조직 수장이 모르쇠로 문제를 회피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양심의 세계를 다뤄 세계 최고의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 텍스트와 작가가 여전히 국가적 외면과 부정의 맥락 속에 놓여 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10월10일(한국시각) 한국 작가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작가의 집 앞으로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 유튜버, 시민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절판된 책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천정부지로 값이 뛰었다. 서점에 책이 없어 인쇄소는 24시간 기계를 돌렸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모든 순간이 특이사항, 역대급 판매”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압도적인 슬픔’에 관한 고통스러운 소설이 1분에 200권 가까이 팔려나갔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다수 언론도 “국가적 쾌거” “국가적 경사”라고 기뻐했다. 국가 권력이 불편해했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그를 대하는 공식적인 태도가 달라졌다.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 동호는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며, 왜 죽은 이들 관에 태극기를 덮는지 궁금해한다.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면, 동호의 혼란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소년이 온다’의 광주와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주. 한강 작가의 작품은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뿐만 아니라 비주류와 비가시적 존재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온갖 고통과 폭력에도 존엄한 주체로서 스스로 갱신하고 죽거나, 죽기보다 어려운 살기를 결단하는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작가는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에도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살상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 속에서 고요히 있는 쪽을 택했다. 기자회견을 마다했고, 돼지를 잡아 떠들썩한 마을 잔치를 하겠다는 아버지를 만류했다. 아들과 직접 운영하던 작은 책방 문은 잠시 닫았다. 이후 스웨덴 공영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한강은 “세계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조용히 있자고 (아버지에게) 말했다”고 답했다. ‘전쟁 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는 “양심에 관한 탁월한 작품을 쓴 작가다운 선택이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사회도 폭력과 양심의 문제를 성찰하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명세에 견주면 ‘인기 작가’가 아니었다. 한강의 소설은 불편했고, 폭력의 반대편에서 ‘문학’의 본령과 닿으려 했고, 이런 까닭에 정치·사상적인 탄압과 낙인찍는 저열한 공세에 시달렸다. 세계 출판계에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영어로 공동 번역한 페이지 아니야 모리스는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한강은 몇 번이고 검열에 맞섰으며 매번 더 강하고 흔들림 없는 작품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떨쳐냈다”고 말했다.
권력에 ‘찍힌’ 작가였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이 문체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한강 작가가 포함돼 검열이 정부 차원의 조직적 행위였음이 드러났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축전 보내기를 거절했다는 사실도 특검팀 활동으로 확인됐다. 2023년 ‘성교육 도서’의 유해성을 문제 삼아 경기도교육청이 각급 학교에 관련 공문을 내려보냈을 때도 타깃이 됐다. 경기도 한 고등학교는 공문을 빌미 삼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유해도서로 분류해 폐기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의 한 사서교사는 “(노벨상 수상으로) 비로소 ‘소년이 온다’를 부담 없이 교육 자료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며 웃었다. 이 교사는 “2023년에도 역대 대통령과 언론인 손석희 등의 이름을 적시해 ‘현대정치사 인물과 세월호 관련 도서 보유 현황’을 확인하는 공문이 내려온 적이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학교 독서 감상문대회 지정 도서로 선정했을 때도 ‘편향된 사상을 가진 책이 아니냐’는 민원 전화를 받았다. 한강 작가 역시 ‘페미니스트 작가’라며 공공연히 낙인찍는 사람도 있던데,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교육 자료 활용이 자유로워져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교육 현장에서 한강 작가의 책이 올가미에서 풀려날지는 알 수 없다. 벌써 인터넷에는 “노벨상은 노벨상, 유해도서는 유해도서”라는 얘기가 나돈다.
50대 중견 출판기획자 겸 작가인 윤혜자씨는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을 듣고 곁에 있던 여성 문학인과 얼싸안고 울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 작가로서 끊임없이 줄기차게, 솔직하게, 아름답게, 시적인 문장으로 힘 있는 소설을 써왔다. 이견 없는 수상”이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심아무개씨는 독서모임에서 기념 티셔츠를 맞춰 입기로 했다. 그는 “여성의 입으로, 여성이 느낀 걸 쓰는데 그 자체가 어찌 페미니즘이 아닐 수 있겠나”라고 밝혔다. 20대 회사원 강수빈씨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좋아하는데, 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됐다가도, 눈밭에 구르는 사람이 됐다가도, 심지어 소설 속 조그마한 새 한 마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겪어본 적도 없지만 너무 아프다. 인간의 뇌는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데 그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전했다. 30대 자영업자 김다정씨는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땐 ‘육식=남성=폭력’이란 도식이 거북했지만 결혼한 뒤 아버지가 주인공 영혜의 입을 강제로 벌려 고기를 먹이는 장면을 다시 읽으면서 이건 정말 한국인이라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여초 커뮤니티’ 회원들도 “좌파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전라도 출신인 한국 여성…진짜 뜻깊다” “진짜 모든 수식어가 최고”(이상 2024년 10월10일, 여성시대) 등 의견을 나누며 기뻐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부정적 반응도 동시에 터져나왔다. ‘좌파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전라도 출신 한국 여성’이기 때문에 ‘최악’이라는 얘기였다. “5·18이랑 페미니즘이라… 역대 최악의 조합이네” “광주사태 거짓선동 소설”(이상 2024년 10월12일, 네이버 기사 댓글) 등의 의견도 다수였다. 일부 언론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작가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칼럼이 나왔다. 못마땅함과 질시의 외줄타기를 하는 의견부터 극우주의에 물든 왜곡된 역사 인식까지 다양한 견해가 분출됐다.
‘노벨상 수상 작가’를 ‘아버지의 딸’ ‘남편의 아내’ ‘오빠와 남동생의 누이’로 환원하는 담론도 낡아빠진 수레바퀴처럼 삐걱거리며 굴러갔다. 그의 가족 관계가 가십처럼 언론에 의해 소비됐다. 맨부커상과 노벨상이 아니더라도 이미 중견 작가로서 문학적 성취를 의심받지 않는 한강 작가의 이름 앞엔 이번에도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작가 한승원씨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아버지의 집필실이 있는 전남 장흥에서는 군수가 부녀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의 고향 광주에서 강기정 시장은 문학관 건립 등을 포함한 ‘대형 프로젝트’를 정부에 건의하며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작가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건물을 바라지 않는다고 강경한 뜻을 밝혀야만 했다. 윤조원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는 “가부장제의 권위를 뚫고 나오는 언어를 만들어낸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는 기사에 그 아버지의 인터뷰가 인용되는 것을 보는 아이러니가 있다. 상을 받은 건 딸인데 부녀문학관을 건립하겠다고 한다. 가부장적 서사와 상상력 안에서 작가의 성취를 포장하고 가부장의 언어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 작가가 전 배우자, 아버지와 찍은 가족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렸다. 오빠의 신춘문예 당선작도 소환됐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던 작가의 마음을 돌린 건 배우자의 결정적 한마디였다는 보도까지 잇따랐다. 아이에게 세상의 즐거움을 알려주자며 작가를 설득한 ‘낭만적이고 다정한 남편’ 이미지를 강조하는 ‘가족 판타지’가 연거푸 인터넷을 장식했다. 출판사 쪽에서 기사 정정을 요구하자 ‘한강, 안타까운 근황…남편 언급에 “오래전 이혼했다”’(뉴시스, 10월15일) ‘한강, ‘딩크’ 생각 바꿔준 문학평론가 남편과 이혼’(매일경제, 10월15일) 등의 기사가 반복됐다. 가족 이야기라면 차라리 홀로 방에서 아기를 낳고 탯줄을 잘랐던 어머니,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한강의 ‘언니’에게 어머니가 ‘죽지 마라 제발’이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는 이야기가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 체험은 ‘흰’을 비롯해 여러 작품으로 확장되지만 ‘언니’와 어머니는 ‘노벨상 국면’에서 남성 가족 이야기가 샅샅이 채굴되는 가운데 눈길을 받지 못했다.
한국 사회의 위계적 학벌 체계, ‘명문대 모교’라는 족보에도 작가의 이름이 재기입됐다. 한강 작가가 다녔던 연세대는 신촌캠퍼스에 “자랑스러운 연세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는 파란 펼침막을 여러 개 내걸었다. 연세대 교수 회의에서 명예박사 수여, 교수 초빙,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고도 알려졌다.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연세대 공식 입장은 ‘결정된 게 없다’는 쪽이었다. 다만 “(작가가 동의한다면)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거나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격식에 맞는 자리로 초대하는 일 등은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했다.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줄곧 질문해온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약자·소수자에게 눈길을 준) 작가의 성취를 진정 기리고자 한다면 아직도 후미진 장소에서 휴식해야 하는 학교 청소노동자들, 연세대를 상대로 시간강사 퇴직금과 주휴·연차 수당 지급 소송을 제기한 ‘저주토끼’ 정보라 작가를 떠올려야 한다. 한국 사회는 정녕 소외되고 죽어가는 것들의 편에 선 한강, 정보라 작가와 소통할 준비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가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관한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브로 되돌아간다”며 애도하는 여성의 정치적이고도 저항적 행위에 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표현한 점도 높이 샀다.
한림원의 설명은 충분하고 정확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고은 시인, 황석영 작가 등 전통적으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원로 남성 작가들을 제치고 한강이 수상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여전했다. ‘한강 대신 늙은 남성 작가만 주목’(한국일보, 10월12일 인터넷 기사 제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엉겁결에 눈길이 쏠린 황석영 작가는 오히려 담백했다. “한국문학이 걸어온 길 위에서 거둔 빛나는 성과”라며 “나도 몇 발짝 더 내디뎌 좀 더 좋은 작품을 쓰다 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동아일보, 10월12일 3면) 다수의 전문가가 한강은 ‘한국문학의 세례’를 받았고 어느 날 돌연 등장한 독보적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인하대 명예교수)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한겨레 첫 번째 특별 기고문에서 “(황석영 작가도)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황석영은 한강에 비해 분명히 낡았다”고 평가했다.(10월14일 1면) 김 교수는 “‘왜 황석영이 아니고 한강이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고, 그에 대한 답변의 형식도 갖춰야 했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 여성들은 한강의 작품을 격동 속에 읽고 ‘그 절실함의 강도를 모를 것’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그런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한강의 문학적 토양을 이뤘다고 거론되는 ‘문단 원로’ 가운데는 후배 작가를 낙인찍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알고도 외면하거나 크고 작게 간여한 이들까지 포함됐다.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왜 한강을 황석영 뒤에 줄 세우느냐”고 말했다. “문단 ‘어른’이 선배들을 먼저 호명하고 ‘한국문학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이 반복된다. 한강 작가를 두고 ‘빨갱이’라고 하거나 ‘블랙리스트’ 얘기를 먼저 하는 것 또한 (정권에) 저항하는 진지 구축을 위해 긴 역사 동안 축적돼온 뻔한 논법이다. 통속적이다. 지금까지 심화된 이론과 지적인 담론의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심화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신체화된 경험의 서사를 사적이라며 계속 평가절하해왔던 문학적 지식 규범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이자 작가 김도훈은 “한강에게 쏟아지는 헛소리들에서 ‘인자 오십 갓 넘은 여자가’라는 함의가 분명하게 읽힌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이게 바로 여성혐오”라고. 다수 여성 독자는 이번 ‘사건’을 한국 여성이 처한 독특한 위치와 감각이 세계인의 공통 감각과 만나게 된 중요한 계기로 봤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한강=페미=최악’이라는 공식은 기존의 젠더 질서와 폭력의 구조를 보여주는 문학적 재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반지성적 백래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양윤의 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는 “노벨상마저 이데올로기 공격거리가 되는 현실은 곧 약육강식의 논리, 육식주의자 시선의 논리”라고 말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의 고기가 되는 것에 저항해 한 사회의 지식 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지(앎)의 차원’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소년이 온다’ 역시 역사의 트라우마, 알려지지 않은 ‘미등록소’라는 의미를 보여준다. 한강 작가가 보여주는 ‘시적 문체’ 또한 희생자의 내면을 옮겨 쓰는, 전사의 문체로서 연약한 개별자의 목소리를 경험하고 메시지를 공명하게 한다. 부드러운 문체, 여성적 서정성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굉장히 강렬한 소설이다. 여성, 소수자, 약자의 문제로 공명하지만 보편적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됐을 때도 강렬한 전율을 경험하게 한다.”
‘채식주의자’는 2004년부터 연작이 발표됐고 2007년 책으로 묶여 나왔으며 10년 가까이 지난 2016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 시작했다. 한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과 ‘페미니즘 리부트’로 인한 페미니즘 도서 시장 확대가 시기적으로 일치했다. 이때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현상’을 이룬 책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었다. 양 교수는 이 두 작품이 ‘책을 든 여자’라는 중요한 시대적 특성과 만난다고 봤다.(‘책은 여성을 꿈꾼다’, 계간 ‘작가들’ 참고)
문학평론가 겸 편집자 박혜진 민음사 부장은 “문학의 영토가 좁아지고 있지만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응원을 받은 듯하다”고 말했다. “2016년에 동시에 사랑받은 ‘채식주의자’와 ‘82년생 김지영’ 모두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조남주 작가와 스타일, 세계관, 언어도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고통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몸으로 느끼는 구체적 상황으로 이끌어낸 작품으로 (주인공 여성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정신문화를 만들어나간다. 여기에는 보편적인 울림이 있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문학을 둘러싼 논란과 논쟁은 동반될 수밖에 없지만 작품 중심으로 전개되느냐 아니냐는 차이가 있다. 부디 작품 이야기를 중심으로 논쟁이 건설적으로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강의 소설을 읽을 때 스스로 타자가 되고, 새가 된다는 독자의 말에서는 고통스러운 공감과 함께 한강 문학의 진수를 맛본 희열도 느껴진다. ‘소년이 온다’의 동호, ‘작별하지 않는다’의 인선이 초를 밝힐 때 독자들은 그들과 함께한다. 그리고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자신의 것을 포함해―초를 밝힐 것.”(한강, ‘흰’ 가운데)
한강 작가는 10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첫 공식행보를 보였다. 한강 작가는 수상 소감을 통해 문학 독자와 출판계 종사자, 서점인들, 동료, 선후배 작가들에게 다정한 감사 인사를 남겼다. 또한 “올해는 글을 써온 지 꼭 삼십 년이 되는 해”라며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고 일단 그 시간 동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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