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아(31)씨에게 손문숙(48)씨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어깨까지 닿는 빠글빠글한 머리를 하고 가슴 파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명찰 위치도 예사롭지 않았다.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은 가슴 한쪽에 이름표를 달았는데, 문숙씨 혼자 가슴 가운데 맨살에 붙이고 있었다. ‘신기한 사람이네.’ 지아씨가 품은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호감으로 커졌다. ‘다른 사람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물어보고,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말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쌍방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는 문숙씨의 섬세하고 신중한 태도에 마음이 끌렸다. 문숙씨도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지아씨를 좋게 여기고 있었다.
2017년 5월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가정폭력 피해 성인 자녀 집담회가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줬다. 지아씨는 참여자로, 문숙씨는 여성인권단체 활동가로 참여했다. 2017년 6월22일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30주년 행사가 열린 날에 문숙씨는 파격 변신을 하고 나타났다. 쇼트커트 머리에 눈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왔다. 지아씨에게 당시 문숙씨는 정말 예뻤다. “너무 제 취향 저격이어서. 그때 더 반했죠.” 2024년 9월28일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지아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숙씨가 “그렇지,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쑥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
지아씨는 그날 쉼터 행사와 뒤풀이까지 마친 뒤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 10시께였다. 메시지가 왔다. “홍대 쪽으로 올래요?” 문숙씨였다. 집에 가는 5호선 열차 막차시간을 고려했을 때 지아씨에겐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지아씨는 타던 열차에서 내려 2호선 열차로 갈아탈 수 있는 충정로역으로 이동했다. 환승 통로는 왜 이렇게 긴지. 2호선 열차 탑승 구간으로 막 뛰어갔다. 지아씨가 빨리 오길 바라는 문숙씨 마음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단둘이 만난 문숙씨와 지아씨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로부터 6일 뒤, 문숙씨가 밤에 지아씨에게 연락했다. “마음을 말하는 걸 조심스러워하지 않는 편인데….” 지아씨는 그 마음에 대해 듣고 싶다고 답장을 보낸 뒤 집에서 하던 과제를 바로 중단하고 문숙씨가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두 번째 데이트까지 마친 지아씨와 문숙씨는 마침내 연애를 시작했고, 그 뒤로 한집에서 쭉 함께 살며 2024년으로 “8년차 부부”가 됐다.
같은 학교 선후배 관계인 조삼식(34·가명)씨와 김경수(37·가명)씨는 같이 알고 지낸 친구 소개로 2013년 교내 학생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2주 정도 ‘썸’을 타면서 삼식씨는 의젓하고 진득한 경수씨 모습에, 경수씨는 자신감 넘치는 삼식씨 모습에 매료됐고 둘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저는 좀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이거든요. 그때마다 형이 중심을 잘 잡아주는 편이어서, 제가 형한테 많이 의지했어요. 형의 그런 성격 덕분에 제가 이 형을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삼식씨가 남편 경수씨를 바라봤다. 경수씨는 멋쩍었는지 남편 삼식씨를 보지 못하고 탁자 위에 있는 컵을 만지작거렸다.
2024년 10월1일 한겨레21과 만난 경수씨와 삼식씨 손에는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같이 살면서 어떤 점이 좋은지 물었다. “우선, 자취할 때 혼자 해야 했던 집안일이 반으로 줄었고요.(웃음) 또 집에 와서 같이 밥해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돕고, 술도 같이 마시고, 시간 날 때 뮤지컬이나 연극도 보러 가고. 퇴근하고 집에 와도 쓸쓸하지 않아요. 자취할 때만 해도 집은 그냥, 정말 잠만 자는 곳이었는데, 지금 삼식이랑 같이 사는 이 집이 제겐 정말 소중한 가정이에요.” 경수씨가 말했다. 그러자 삼식씨가 옆에서 “맞아요, 맞아요”라며 맞장구쳤다.
서로 사랑해서 연인이 되고, 애정 관계를 바탕으로 같은 집에 살며 서로 돕고 일상을 공유하는 지아·문숙씨, 삼식·경수씨, 그리고 이후에 등장하는 박유안(24)·민다정(35·가명)씨의 생활은 보통의 부부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들을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주민등록상 성별이 같다는 이유에서다.
2019년 열린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처음 대면한 다정씨와 유안씨는, 유안씨가 귀엽다며 첫눈에 반한 다정씨의 열렬한 구애로 사귀기 시작했다. 둘이 한집에서 오순도순 함께 산 시간도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유안씨는 스스로 인식하는 성 정체성에 따라 남성으로 살고 싶어 성확정 수술을 받았다. 다정씨를 만나기 전의 일이다. 다정씨도 유안씨가 트랜스남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둘의 연애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결속을 방해하는 건 한국 사회다. 다음은 2024년 10월2일 한겨레21과 한 인터뷰 중 두 사람이 나눈 대화다.
“같이 생활한 지 2년째였나. 제가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이렇게 물었어요. 다정님은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원래 결혼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살았다고 하더라고요.”(유안씨)
“일단 결혼할 수 없으니까, 법적으로. 그래서 그냥 별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다정씨)
“나보고 (법적) 성별정정을 하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잖아.”
“뭐 그렇게까지. 본인이 (법적 성별정정을) 원했잖아. 내가 물어보기도 했었잖아. 정정하면 결혼 못한다고.”
“그러게. 물어봤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나한테 법적 성별정정을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진 않았잖아.”
“그땐 그게 더 절실했던 거 아냐?”
“그랬지.”
다정씨는 유안씨 선택을 존중했다. 유안씨가 유안씨답게 사는 걸 다정씨도 바랐다. 유안씨는 2020년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꿔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법원은 2021년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유안씨의 법적 성별이 달라졌을 뿐 부부의 일상이 달라진 건 아니다. 다정씨의 규칙적인 생활과, “늘 새로운 걸 찾아 헤맨다”는 유안씨의 왕성한 호기심은 서로에게 삶의 자극이 되고 있다. 특히 다정씨는 이 집의 주 요리사다.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마파두부와 같이 유안씨가 좋아하는 음식들과 된장찌개, 참치마요덮밥 등 유안씨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요리를 뚝딱 만든다.
이처럼 동성부부는 이성부부와 마찬가지로 가정을 이루고 생애를 함께 만들어가지만, 삶의 보호자는 될 수 없는 법과 제도 안에서 살고 있다. 법적 부부가 아니라서 급여 생활자의 연말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한쪽이 사망했을 경우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신고조차 할 수 없다. 유산상속도 어렵고, 사망한 한쪽의 혈연가족에 의해 장례 절차에서 배제될 수 있다. 또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유족연금을 받지 못하고, 의료기관에서마저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수술이나 입원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검사 결과나 치료 경과를 듣지도 못한다. 다정씨는 “유안이가 자주 아픈데, 같이 병원에 가면 그 보호자 문제 때문에 유안이를 곁에서 보살피지 못하는 일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늘 유안씨 곁에서 건강을 살피는 동반자임에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유안씨가 입원한 응급실에도, 병원 병동에도 들어갈 수 없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조항은 현행법에 없다. 민법은 혼인 상대방의 성별을 이성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민법 내 약혼 규정에도 오직 ‘당사자’라는 표현만 나온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도 혼인신고는 이성 간에만 가능하다는 규정은 없다.
그런데도 동성부부의 혼인신고는 구청에서 수리되지 않는다. 동성혼을 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법원 해석의 영향이 크다. 법원은 민법 여러 조항에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전제로 혼인한 당사자를 부부, 남편과 아내, 부 또는 처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는 점,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근거로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법원은 그동안 동성혼을 사실혼 관계(혼인 의사가 있는 두 당사자가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법률혼으로 인정되지 않는 혼인 형태)로도 보지 않았다. 20년 전인 2004년 7월23일 인천지법이 선고한 판결이 대표적 사례다. 1980년부터 2001년까지 20여 년간 동거한 동성커플 중 한 명(원고)이 상대방(피고) 책임으로 사실혼 관계가 파탄 났다며 상대방 명의로 돼 있는 공동 형성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동성 간 사실혼 유사의 동거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여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수는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현재 우리 사회의 혼인 및 가족관념에 의하면 혼인이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남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의미하고 아직 그 의미에서 변화를 찾을 수 없다”며 “동성 간 사실혼 유사의 동거관계는 객관적으로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 실체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 관념상 가족질서적인 면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봤다. 이성애를 근간으로 하는 여성과 남성의 결합,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가족의 기본단위로 상정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판결로 볼 수 있다.
10년 전인 2014년 5월21일 동성부부인 김조광수·김승환씨가 구청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불복하며 자신들의 혼인을 인정해달라는 신청을 했고, 2년 뒤인 2016년 5월25일 서울서부지법이 이를 각하(법원에서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소를 종료)한 이유에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반영돼 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가 남녀 간 결합을 혼인으로 인정하여 그에 따른 존중받는 지위와 법적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녀 간 결합을 통해 혼인을 이룬 당사자는 혼인 및 공동의 자녀 출산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 그와 같은 혼인, 출산, 자녀 양육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다시 만들어지고,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이 “혼인의 본질”이라고 했다. 서울서부지법의 이 판단에는 혼인을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일로 볼 뿐 개인의 권리로 보지 않는 시각이 담겨 있다.
하지만 2015년 6월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결혼은 가정과 사회의 토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결혼은 행복의 평화로운 추구에 본질적인 중요한 개인의 권리 중 하나”라며 “결혼을 할 것인가,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자기결정 행위”라고 보고 동성혼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이 2017년 2월 발행한 ‘혼인의 헌법적 보장’ 보고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혼인은 공동의 자녀 출산 및 양육을 전제로 하는 공동체라고 설명하는 견해도 있으나 무자녀 혼인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를(자녀 출산과 양육을) 혼인의 본질적 개념요소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오늘날 혼인의 실질을 파악해본다면, 두 사람이 애정과 신뢰에 기반을 두어 상호 부양 및 책임 의무를 갖고 인생의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자유로운 의사 합치에 의해 결합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승현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장은 “가족에 대한 인식과 구성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다양해지고 있지만, 법원은 여전히 이성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원칙으로 보고 그 외 가족 형태, 동성부부를 비롯해 1인가구,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부부 등은 ‘예외’로 인식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따른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혼인의 실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혼인이 평등하지 않은 현실 때문에 한국에 사는 동성애자들은 혼인을 ‘내 삶에서 불가능한 일’로 여긴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경수씨와 삼식씨는 2023년 4월 미국 하와이주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두 사람의 신혼집 거실 벽면에는 미국에서 받은 혼인증서 액자가 세워져 있었다. 증서엔 ‘신랑’과 ‘신랑’ 이름, 각 신랑의 부모 이름, 두 사람의 출생지, 결혼식 날짜와 장소, 주례를 맡은 사람 이름, 혼인신고 접수 날짜 등이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법적 효력은 없지만, 동성혼을 법제화한 국가에서는 효력을 발휘한다. 의료기관에서 보호자로 인정받고, 한쪽이 취업비자를 받고 출장을 간다면 다른 한쪽도 배우자 비자를 발급받아 같이 갈 수 있다.
“트친(‘트위터 친구’의 줄임말) 한 분이 동성 배우자랑 결혼해서 미국에 사는데, 오랜만에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났어요. 결혼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신선하더라고요. 그동안 ‘내 인생에 결혼은 없겠구나’ 하며 완전 문을 닫고 살았는데 ‘나도 결혼할 수 있겠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그때(2020년)가 형이랑 7년을 만났는데 이 관계가, 뭔가 방향 없이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뗏목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가족으로 묶일 수 없으니까, 아무런 보호도 못 받고.”(삼식씨)
삼식씨는 용기를 내서 경수씨에게 청혼했다. 삼식씨가 처음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뜬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경수씨였지만, 삼식씨가 제시한 새로운 길을 함께 걷기로 했다. 삼식씨의 프러포즈에 화답한 경수씨의 편지에는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하자는 말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고,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삼식씨는 이 말이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2022년은 지아씨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법무법인에 입사한 해이면서 동시에 문숙씨와의 부부 생활 5주년이 되는 해였다. 지아씨가 사건 수임을 할 수 없고 법원에도 못 가는 수습 기간 6개월이 그동안 미룬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적기였다. 두 사람이 다니는 직장 모두 둘을 부부로 인정하고 지지했다. 경조사 휴가 사용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경조사 휴가를 쓰더라도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무언가’를 직장에 제출하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번뜩 떠오른 것이 혼인신고서였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결혼이란 무엇인지 생각했다. 결혼은 그들에게 “관계의 진화”였다.
“결혼을 생각했을 때, 일단 첫 번째로 우리 관계가 유한할 수 있다는 점을 서로 인정했어요. 그런 관계라면, 우리에게 결혼은 서로를 더 잘 돌보고, 서로를 더 세심하게 사랑하겠다는 약속일 수 있겠다 생각했죠.”(지아씨)
둘은 2022년 6월29일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예상했던 결과대로 불수리 통지를 받았다. 그래도 신고하고 싶었다. “우리 존재를 기록에 남기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문숙씨가 말했다.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22년 1월부터 2024년 8월까지 동성 간 혼인신고는 43건이 접수됐다.(법원행정처는 다만 2014~2021년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모두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 혼인신고’라는 이유로 불수리됐다.
그런데 동성 간 혼인신고 자체를 아예 받지 않으려는 구청도 있다. 나중에 불수리 통지를 하더라도 신고 접수 자체는 가능하고,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상 행정기관은 민원 신청을 받았을 때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접수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삼식·경수씨가 2024년 10월2일 송파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할 때 구청 공무원들은 신고 자체를 가로막았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신고이므로 접수도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한 공무원들의 표정과 말투, 눈빛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부가 도움을 요청한 변호사가 구청에 도착해 접수 거부 행위의 부당함을 설명한 뒤에야 두 사람은 구청 도착 뒤 무려 4시간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불수리 통지서를 받았다. 삼식씨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 사람들에게 결혼하려는 이유를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다. 동성부부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동성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동성부부가 법적 부부에게 적용되는 혜택만을 위해 결혼을 원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왜 굳이 결혼하려고 하느냐며 못마땅해한다. 동성부부들은 이런 현실이 답답하다.
“사람들은 동성부부한테 서로 진짜 사랑하냐, 그렇다면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관계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지를 증명하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가 왜 증명해야 하죠? 이성부부에게도 이렇게 증명을 요구하나요?”(문숙씨)
“동성애자에게는 처음부터 결혼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없잖아요. 결혼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처음부터 할 수 없는 것은 완전 다른 문제죠. 그리고 혜택을 노리고 가족을 만든다고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가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유안씨)
한겨레21이 만난 세 쌍의 부부가 이번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한 이유는 ‘결혼’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동성혼이라는 결합 형태에 특권을 달라는 요구도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찾는 일이다. 결혼은 두 사람을 가족으로 묶는 여러 매듭 중 하나일 뿐이다.
“결혼으로 묶이지 않으면 삼식이와 제 관계가 가족으로 인정을 못 받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결혼할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것이지, 결혼 자체가 목표는 아니에요.” 경수씨의 말이다. 지아씨는 “저희는 운 좋게도 가족들, 주변 사람들, 직장이 우리 부부 관계를 존중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다른 직장을 다녔다면 이런 호의를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삶의 선택이 제한돼서는 안 된다는 큰 취지에서 소송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유안씨는 “혼인평등이 비단 우리 부부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구나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정책팀장은 “이번 혼인평등소송이 가족의 본질과 실체를 따져 묻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동성부부가 가족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단지 혼인 당사자의 성별이 확장되는 것을 넘어선다”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공동생활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국가가 이를 보장하고 지원하는 것이 개인의 기본권이 돼야 한다. 혼인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어떤 ‘자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결정을 지지하고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 보장할 것인가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혼인평등 실현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원고인단 부부는 언젠가 실현될 수밖에 없는 미래를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소송이 큰 파장을 만들어 사회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만들지 못해도 (혼인평등은) 언젠가 실현될 거예요, 당연히.”(문숙씨)
“동성혼 법제화의 의미가, 단순히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낙인을 걷어낼 수 있는 시작이라고 봐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경수씨와 ‘평생 가려운 등을 긁어줄 수 있는 남편’이 되기로 약속한 삼식씨의 말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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