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멱살이라도 잡고 끌고 왔으면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인디 부모가 짜잔해서(‘못나다’의 전라도 사투리) 그렇게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어요. 그랬는디 지금에 와서는 자랑스럽소.”
2024년 10월14일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자택에서 만난 김길자(84)씨는 44년 전 그날을 여전히 후회하면서도 최근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냈다고 했다. 그는 한강 작가가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쓴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사망 당시 16살)군의 어머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회를 묻자 김씨는 “집에서 혼자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뉴스를 잘 안 보는데 그날(10월10일)따라 뉴스를 틀어놨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이 나오더라”며 “김대중씨가 노벨평화상을 탈 때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건 우리와 관련된 거니까 너무 놀랐다. 너무 좋아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텔레비전 속 한강 작가의 사진을 보고 ‘소년이 온다’가 출간되기 전 만났던 여성 작가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고 했다. 벌써 10년도 훌쩍 지난 일이라 기억이 선명하진 않다. “아이고, 우리는 그동안 백번 천번을 투쟁해서 5·18을 세계에 알리려고 했지만 잘 안됐어요. 그랬는디 이제 한강 작가 덕에 외국에서도 5·18뿐만 아니라 재학이를 알 수 있으니까 너무나 감사허요. 우리 아저씨(남편)가 이것을 보고 갔어야 했는디 너무나 안타까워요.”
문군이 세상을 떠난 뒤 지난 40여 년은 김씨 가족에게 긴 투쟁의 시간이었다. 특히 폭도로 몰린 문군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2022년 세상을 떠난 문군의 아버지 문건양씨는 2014년 ‘소년이 온다’가 출판되자 수십 권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김씨 집에 있는 책에는 문건양씨가 한줄 한줄 빨간 줄을 그으며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소년이 온다’는 1장 ‘어린 새’, 2장 ‘검은 숨’, 3장 ‘일곱개의 뺨’, 4장 ‘쇠와 피’, 5장 ‘밤의 눈동자’, 6장 ‘꽃 핀 쪽으로’,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등 7개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1장에 주인공 동호와 주변인,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강 작가는 문군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속 동호를 탄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채식주의자’보다 ‘소년이 온다’가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5·18 때 문군은 동호처럼 주검을 임시로 보관했던 상무관과 옛 전남도청을 오가며 희생자 수습을 도왔다.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집에 들어오라”는 동호의 작은형처럼 김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문군을 야단치고 구슬렸지만 끝내 귀가하지 않았다.
김씨와 문건양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문군은 월요일이었던 1980년 5월19일 학교에 가며 군인들을 봤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21일 형과 함께 외출했던 문군은 다음날 목이 쉰 채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건양씨가 “어디서 뭐 했냐”며 야단치자 문군은 “잘못된 것은 고쳐져야죠”라고 대꾸했다. 문군은 23일 다시 집을 나갔다. 김씨 부부는 걱정했으나 도청에서 문군을 봤다는 동네 사람의 말에 안심했다.
“엄마, 창근이가 죽어갖고 들어왔어.”
5월25일 전남도청으로 아들을 데리러 갔던 김씨에게 문군이 했던 말이다. 양창근군은 문군의 동산초등학교 동창으로, 어릴 적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어 김씨도 몇 차례 봤던 친구였다. 1980년 문군은 광주상업고등학교(현 동성고), 양군은 광주숭의실업고등학교(현 숭의과학기술고)로 진학하며 사이가 멀어졌지만 문군은 양군의 주검을 한눈에 알아봤다. 김씨는 “‘가자’고 그러니까 재학이가 ‘창근이도 죽었는데 나만 살자고 집에 가면 되겠냐’고 했다”며 “그때는 계엄군이 쳐들어와서 설마 사람을 죽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래, 네 말이 맞다. 내 자식만 살자고 데리고 가면 되겠냐’는 생각에 애 아빠하고 그냥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다음날 계엄군이 재진입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김씨는 다시 도청으로 문군을 데리러 갔다. 문군은 “엄마, 계엄군이 쳐들어와도 학생들은 손들고 나가면 괜찮다고 해요. 걱정 마세요”라고 안심시켰다. 자녀를 이기지 못했던 김씨는 할 수 없이 돌아섰으나 이때가 문군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문군은 학교 친구 안종필군과 함께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외신기자 노먼 소프가 이날 아침 7시30분 진압작전이 끝난 뒤 찍은 사진에는 문군과 안군이 나란히 2층 복도에 엎드려 숨져 있는 모습이 담겼다. 집에서 입고 나간 교련복 차림이었다. 이들의 곁에는 빵조각이 떨어져 있어 갑자기 총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문군과 안군의 총기는 보이지 않아 비무장 상태로 추정됐다.
같은 날 가족들은 옛 전남도청 쪽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불안감을 느끼고 오전 내내 도청, 시청 등을 뒤졌지만 문군을 찾지 못했다. 2주일이 지난 6월9일께 군부대를 통해 계엄군이 신원 미상의 교련복 차림 고교생을 망월동 묘역에 매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임시 무덤을 파보니 합판으로 대충 만든 관에 생전 입던 옷차림 그대로 문군이 누워 있었다. 2남1녀 중 막내인 문군은 중학생이 돼서도 부모 사이에서 잠을 자는 집안의 귀염둥이였지만,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바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관짝에 수의도 입지 않은 재학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졌다”고 회상했다.
김씨를 비롯한 5·18피해자와 유족들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이 책(‘소년이 온다’) 한 권으로 온 세상에 난리가 났는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며 “이제는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어디 오다가다 총 맞아서 죽은 것도 아니고 저도 무엇인가 생각이 있어서 도청에서 끝까지 있다가 도청에서 사망한 것이 나는 진짜 너무나 자랑스럽소. 우리 재학이가 왜 도청에 나갔는지 이제는 사람들이 다 알 거요.”
“재학아, 이제 하늘에서 편히 있거라. 친구들도 만나고 아버지도 만나고 재미있게 지내거라. 이제는 세상 사람들도 다 안다.”
문군의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씨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광주=김용희 한겨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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