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탁자 위엔 와인과 빵이 놓였고, 복도엔 화환이 늘어서 있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는 이들 사이로 최승호가 걸어간다. 그를 발견한 한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방송(MBC) 사장을 지낸 김종국이다. 이날은 그의 출판기념회 행사였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 MBC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종국이 말했다. “백종문 부사장은 지금 (인터뷰)하지 마.” 한참 실랑이하던 최승호가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용히 읊조린다. “잘들 산다.”
2017년 공개된 영화 <공범자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어떻게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인들을 탄압했는지 추적 관찰한다. 최승호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해고된 뒤 이 영화를 만들었다. 백종문은 MBC 미래전략본부장 시절 “최승호와 박성제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된 인물이다.
이 영화가 나온 2017년, 시사주간지 <시사인> 조사에서 MBC는 시민이 가장 불신하는 매체 1위(22.4%)에 올랐다. MBC의 신뢰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임명된 사장이 물러난 이후 오르기 시작했다. 6년 뒤인 2023년, MBC는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1위(18.7%)가 됐다. 권력을 성역 없이 감시하고 비판할 때 신뢰도는 올라갔다. MBC는 윤석열 정권 이후 정부와 가장 극적으로 대립한 언론사였다. 15년 전에도 그랬다. 2009년,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매체 1위는 MBC(19%)였다.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할 때였다.
“기시감이 들었죠. 이동관이 등장할 때부터 데자뷔라고 느꼈어요.” 2024년 7월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정영하가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으로서 역대 최장인 170일 파업을 이끌었다. 2012년 파업 도중 해고당했고, 2017년 12월 복직했다. “2012년 파업 직전의 상황은 또 1992년 파업 전 상황과 데자뷔였거든요. 공정방송과 관련해 다져놓은 것들이 무너지는 상황이었어요.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못하게 막았고….” 정영하의 눈빛이 파업 당시로 돌아갔다.
1992년 MBC 파업은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이었다. 1990~1991년 MBC 노조집행부였던 안성일과 김평호가 <피디(PD)수첩> 불방과 관련해 항의하다 해고됐다. 1991년엔 회사가 보도국장 인사를 노조 추천 없이 일방적으로 단행했다. 1992년 노조는 보도국장 추천제와 공정방송 관련 조항을 두고 회사와 수십 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안성일 위원장과 김평호 사무국장, 두 사람을 복직시키는 게 목표였고, 두 번째는 불공정한 보도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을 만들기 위한 그런 싸움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2012년과 똑같은 싸움인 거죠.” 2024년 7월10일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난 최승호가 말했다. 1992년 당시 파업은 52일 동안 이어졌고, 공정방송협의회 관련 조항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성과가 있었다.
2012년 1월 MBC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이 시작되기 전 상황도 비슷했다. 이명박 정권은 한국방송(KBS)을 시작으로 언론 장악에 나섰다. 사장을 정권에 우호적인 인사로 교체하고 인사 등을 통해 내부를 장악한 뒤 보도를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KBS와 와이티엔(YTN), <연합뉴스>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변해갔다.
MBC는 2009년까지만 해도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을 적극적으로 다뤘지만, 한쪽에선 MBC 장악을 위한 움직임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의해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인사로 교체됐다. 20년 넘게 이뤄져온 관행이 무너진 것도 이때부터다. 방문진법이 만들어진 1988년 이후 관행적으로 방문진 이사 2명은 MBC 노사 몫이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방통위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방통위원장은 이명박의 멘토로 불리던 최시중이었다.
“이전에는 방문진 (이사회) 9명을 구성하면서 노조 의견도 들었어요. 법률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속기록엔 있었거든요. 이해당사자인 MBC 사쪽과 노조의 이야기를 반영해주자는 것이 입법 취지에 녹아 있었던 거죠. 그런데 최시중씨가 처음 그걸 무너뜨렸어요. 방통위 안에서 노조 몫을 인정하지 않은 거죠.” 정영하의 말이다.
정권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방문진이 구성된 뒤인 2010년 2월, 당시 MBC 사장이던 엄기영이 먼저 자진사퇴했다. 그러고 들어온 사람이 김재철이었다. 김재철은 취임 이후 야금야금 MBC 조직을 자기 세력화하기 시작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나 피디들은 비제작 부서로 보냈고, 프로그램은 폐지했다. 당시 홍보국장으로 김재철을 보좌했던 인물이 현 방통위원장 후보자인 이진숙이다.
2012년 1월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목표는 ‘공영방송 MBC 정상화와 김재철 퇴진’이었다. 정영하와 최승호 등 6명이 해고됐고, 수십 명이 징계를 받았다. 노조는 여야가 새로 구성되는 방문진 이사회를 통해 김재철을 퇴진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점 등을 들어 170일 만에 파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김재철 해임안은 부결됐고, 대선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긴 겨울의 시작이었다.
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인 이호찬은 2012년 파업 전 ‘시사매거진2580’에 있었다. 그는 파업에 참여한 뒤 소속 부서로 복귀하지 못하고 경인지사로 발령이 났다. 3개월 넘는 기간 “업무지시도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로 매일 인천의 경인지사로 출퇴근을 반복했다. 이후엔 서울 신천의 아카데미에서 직무와 관련 없는 교육을 받았다. 취재하는 기자와 취재하지 못하는 기자가 나뉘었다. 이호찬처럼 파업에 참여한 많은 기자가 전국 곳곳으로 ‘유배’ 갔다.
“뉴스개발센터라면서 구로에 사무실을 내고, 무슨 센터라고 해서 광화문에도 사무실을 내서 보내요. 아무것도 없는 건물이거든요. 또 보도를 못하게 하고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영업하는 일도 시키고요. 내부적으로 자괴감이나 패배감이 많이 쌓이기 시작했죠. 사장의 인사권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어요.”(이호찬)
김재철은 2013년 물러났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안광한, 김장겸 체제에서도 이런 기조는 이어졌다. 이들은 사업개발센터 등을 급조해 ‘유배지’로 만들고 공정방송을 요구했던 기자나 피디, 아나운서 등을 몰아넣었다. 또 스케이트장 운영 등 직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도록 하거나 취재·보도와 상관없는 교육을 받도록 했다. 후에 ‘노조 탄압’ 혐의로 기소된 김재철과 김장겸, 안광한은 모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노사갈등은 노노갈등으로도 번졌다. 파업에 참여했던 MBC 기자 임명현은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2012년 파업 이후 MBC 경영진이 도입한 인사관리 정책의 핵심은 다수의 경력기자·피디를 채용해 현업에 투입했다는 데 있다. 경영진의 가학적 인사관리는 파업 참여자들 간의 연대를 저하하는 결과를 낳았고, 경력사원들과 파업 참여자들 사이에 깊은 갈등이 더해지면서 노사갈등이 노노갈등으로 전환됐다.” 2012년 이후 3년간 MBC 경영진이 선발한 경력기자는 68명이었다. 이후에도 경력기자 채용은 이어졌다.
보도나 콘텐츠의 질도 점차 떨어졌다. 이호찬은 부당전보 소송을 거쳐 2013년 ‘시사매거진2580’으로 돌아왔지만 제대로 된 보도를 할 수 없었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에서 풀려나왔을 때 제가 처음 인터뷰했거든요. 그런데 당시 부장이 ‘국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인터뷰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공정 보도가 안 된다’는 이유로 취재를 막았어요.” 결국 당시 방송은 방영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가 결정적이었다. MBC는 참사 직후 한동안 ‘전원 구조’ 오보를 계속 내보냈다. 당시 목포MBC에선 여러 차례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취재 내용을 본사에 보고했지만 반영하지 않았다. 당시 보도국장은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이진숙이었다. 김장겸은 참사 이후 편집회의에서 유가족을 “깡패”라고 지칭했다. 이후에도 세월호 관련 보도는 다른 언론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그마저도 정부 입장을 충실히 반영했다. MBC 기자들 스스로가 ‘보도 참사’라는 성명을 낼 정도였다.
2017년 12월, 최승호가 MBC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정영하 등 해고된 이들이 복귀했다. 비제작 부서로 밀려났던 이들도 하나둘씩 돌아왔다. 이로부터 5년이 더 지난 2022년에야 법원이 MBC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2022년 정영하 등 노조 집행부 상고심에서 공정방송을 이유로 파업한 것은 정당한 쟁의행위라고 판단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힘들었어요. 막상 우리끼리 다시 공정한 방송을 만들어보려고 했더니 생각이 다 제각각인 거예요. 내부적으로 갈등도 심했고 동료들에 대한 불신도 컸고요. 2~3년 정도가 지나면서 조금씩 공감대가 생겼어요. MBC가 계속 그런 의지를 내보이니까 제보도 들어오고, 현장에서도 좋은 아이템을 보도하기 시작했고요.” 이호찬이 말했다.
2017년 12월 사장에 취임한 최승호는 구성원들이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만들고 싶은 걸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정책을 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랫동안 억압돼 있었던 것이 제작 자율성과 보도의 자유였어요. 기자가 기획한 것이 보도가 안 됐다든지, 위에서 중요한 걸 막았다든지 이런 얘기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MBC는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발언 보도를 시작으로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갔고, 신뢰도는 점차 올라갔다. 그 결과 윤 정부 방송 장악 프로젝트의 마지막 퍼즐이 됐다. 윤 정부의 방송 장악 방식은 이명박 정부 때와 판박이다. KBS와 YTN을 장악했고, 다음 순서가 MBC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가 만료되는 2024년 8월이 분수령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원장으로 이진숙이 지명됐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 임명현은 “별로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MBC 장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의지를 알기 때문이에요. (방통위에서) 2명 체제로 방문진 이사회를 개편하려고 시도했는데,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 해임이) 법원에서 두 번이나 막히니까 현 이사들의 임기 만료까지 기다리는 건 불가피했던 것 같아요. 이 시점에서 이진숙씨를 임명한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죠.”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을 경험해보지 않은 젊은 기자들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ㄱ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이진숙씨가 방통위원장에 임명되면) 사장이 바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 첫 번째로 <피디수첩>이나 <스트레이트> 같은 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파업을 경험해본) 선배들은 사장이 바뀌면 정말 인사는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하더라고요.”
ㄴ기자는 콘텐츠 경쟁력을 걱정했다. “다시 그런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 자체가 내부 구성원으로서는 답답해요. 기자 직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직군이 있잖아요. 아직도 사장이 바뀌느니, 사업이 어떻게 된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건 회사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겁니다. 당장 <비비시>(BBC)나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회사들은 잘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계속 투쟁 전선으로 가는 게 답답한 거죠.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해 설계할 수 없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반에 대해 불안해한다는 것 자체가 퇴행적인 거예요.”
언론노조 MBC본부는 파업보다는 여론전에 집중할 계획이다. “내부적으로 파업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죠. 세대가 변한 것도 있고요. 아직 파업은 생각하지 않지만 계속 투쟁하고 저항은 해야죠. MBC마저 장악될 수 없다는 시민사회의 강한 지지가 있고 내부 구성원들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어요.” 이호찬이 말했다. 이들은 방통위에서 2명 체제로 방문진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의결할 경우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MBC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명박식’ 방송장악 역사가 12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반복되고 있다. 2024년, 다시 MBC가 위험하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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