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들은 왜 ‘위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임태훈의 더불어민주연합행, 용혜인의 두 번째 위성정당행, 류호정·배복주의 신당행
“정치 공간·현실의 한계 느낀” 시민사회 운동가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등록 2024-03-22 22:21 수정 2024-03-24 22:52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2024년 3월4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지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2024년 3월4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지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을 앞두고 민주·진보 진영은 여러 상흔을 안게 됐다. 하나는 더불어민주당이 창당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일부 진보정당이 참여하면서 시민사회 운동의 정당성과 진보정당의 정체성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선거를 앞두고 국회로 달려가는 행태가 맞느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또 하나는, 진보정당은 왜 3지대에서 거대 양당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가다. <한겨레21>은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했다가 공천에서 배제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의 대변인, 진보정당에서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등으로 당적을 옮긴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과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등의 이야기를 통해 이 문제를 짚어봤다.

선거를 위한 일시적 전선일 뿐

임태훈 전 소장은 오랜 시민사회 운동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가 법적 권리로 인정받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군 내부 갑질 등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장병 인권 문제, 군 내부 부조리 등을 꾸준히 고발했다. 하지만 임 전 소장은 시민사회 몫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에 추천됐다가 양심적 병역거부 이력이 ‘병역 기피’로 낙인찍힌 채 퇴출됐다. 이는 더불어민주연합이 ‘시민사회 운동의 정치 반영’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선거를 위한 일시적 전선 형성’에만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에 선 임 전 소장은 어떤 뜻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했을까.

“위성정당 참여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고, 그것 역시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기존엔 시민사회가 가진 정치 플랫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플랫폼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 정당정치·계파정치에 줄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연합의 의미는 그래도 투표 형식의 선출 방식을 통해 시민사회 운동가가 제도권 정치로 나아갈 중간 플랫폼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좌절됐지만 필요한 시도였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 전 소장은 2024년 3월18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사회 운동이 제도권 정치로 나아가는 데 현실적인 벽이 존재하고, 이 둘을 이어주는 매개가 필요했던 점이 위성정당 참여에 대한 비판보다 우선했다는 설명이다.

진보당도 서로 다른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연합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를 설명했다. “진보당은 야권 총단결로 ‘거부권 정권 심판’ ‘진보적 국회’를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더불어민주연합이란 건 특정 시기에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일시적 연합이다. 사실은 다당제가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정치 활동 방식이라고 본다.” 정혜규 진보당 대변인이 3월19일 이렇게 말했다.

새진보연합은 ‘민주당을 진보적 방향으로 견인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위성정당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2023년 11월부터 꾸준히 ‘22대 국회에서 개혁과제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연합정치를 해야 한다’고 해왔다. 2024년 1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느냐 혹은 병립형으로 퇴행하느냐’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키기 위해 비례연합정당을 함께 구성하자. 그리고 비례연합정당은 공동 정책을 만들어 22대 국회에서 비례연합정당에 함께한 정당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국민에게 보여드리자’라고 투명하게 제안했다. 연합을 통해 진보정당들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더 진보적 방향으로 견인하는 길이 열린다면, 우리는 그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일관된 입장이다.” 신지혜 새진보연합 대변인은 3월21일 이렇게 말했다.

2024년 1월20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 류호정 전 의원이 오른쪽 끝에 서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월20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 류호정 전 의원이 오른쪽 끝에 서 있다. 연합뉴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정치에 있다는 시민들

이런 해명에도 민주당 위성정당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건,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개별 주체가 ‘정치인 혹은 정당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보다 국회 입성을 우선시한 것 아니었느냐’는 시각 때문이다.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이 비판받는 지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4년 전에 이어 또다시 민주당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가 된 용혜인 새진보연합 의원, 민주노총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을 받았지만 개혁신당이라는 보수정당으로 가서 경기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 출마한 류호정 전 의원, 개혁신당 내분의 중심에 섰다가 결국 새로운미래에서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비례대표 후보 13번을 배정받은 장애인 인권운동가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등이 그런 경우다.

정의당 공동대표를 지낸 나경채 녹색정의당 양경규 의원 보좌관은 이들에 대해 비판이 나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류호정 전 의원이 표방한 페미니즘 정치가 과연 개혁신당에서 실현 가능할까요? 배복주 전 부대표가 해온 장애운동·여성운동이 새로운미래에서 그 가치를 확산할 수 있을까요? 차별금지법에 대한 민주당의 일관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 판단한 임태훈 전 소장의 위성정당 참여는 안타깝고, 중도층 표심을 의식해 기본소득 공약을 사실상 지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는 기본소득당(현 새진보연합) 대표(용혜인)는 자신을 배반하는 정치를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판의 대상이 된 이들은 현실 정치의 자장 안에서 오랫동안 장벽에 막혀왔음을 토로했다. 임태훈 전 소장은 “군인권센터는 시민단체 가운데 그나마 모금이 되는 편이었지만, 다른 단체들은 후원금을 모은다는 게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은 ‘시민사회의 이런 활동을 지지해달라’고 하는 편보다 ‘정치인 누구를 후원해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후원이 잘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정치에 있다고 보고 시민들이 거기에 돈을 낸다”고 말했다.

배복주 후보도 이렇게 말했다. “시민사회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방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당성이) 많이 훼손된 상황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이후 시민사회 전체가 크게 흔들려 내상이 컸습니다. ‘위성정당 참여가 정당한가’만 놓고 보면 부적절해 보이지만, 시민사회로선 정치적 공간이 없습니다.”

 

새진보연합 용혜인 의원이 2024년 3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정치의 새판을 모색하는 정당 개혁 대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용 의원은 이번에도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연합뉴스

새진보연합 용혜인 의원이 2024년 3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정치의 새판을 모색하는 정당 개혁 대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용 의원은 이번에도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연합뉴스


제3지대 정당의 한계

실제로 3월15일 발표된 한국행정연구원의 ‘2023년 사회통합실태조사’도 임 전 소장과 배 후보의 주장을 방증한다. 시민단체에 대한 기관 신뢰도는 ‘믿지 않는다’는 쪽이 56.4%, ‘믿는다’는 쪽이 43.6%로, 신뢰보다 불신이 13%포인트가량 많았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는 국회에 대한 신뢰(24.6%)보단 높지만 중앙정부 부처에 대한 신뢰(53.8%), 대기업에 대한 신뢰(54.5%)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정치적 공간이 없다고 느낀 건 이제 갓 정치인으로 발을 디딘 시민사회 운동가뿐만 아니라 이미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린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정의당에 있었던 류호정 전 의원과 배복주 후보는 ‘정의당이 제3지대로서의 무게를 갖지 못하던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한계를 느껴왔음’을 이야기했다. “정의당이 ‘양당 체제를 극복하자’고 해왔는데, 선거철만 되면 ‘민주당과의 연합’ 얘기가 나온다면 그게 무슨 양당 체제 극복이고 정의당의 당론인가 싶었습니다. 민주당의 도움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정당이라면 제3지대 독립정당이 아니라는 생각이었고, ‘개혁신당’ 이름이 정해진 것도 없을 당시 제3지대에서 일단 양당 체제를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야 한다고 봤습니다. 양당에 의탁해서 권력을 얻으면 결국 양당의 허락을 받아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고 그 과정에서 양당의 극단적 주장에 편승해 또 같이 싸워야 하는 게 정치 현실입니다.” 류호정 전 의원이 말했다.

“정의당에 있을 때 가장 답답했던 건 ‘대중과 만나는 접점’, 유연함의 문제였습니다. ‘시민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인데 그 부분에서 외로웠습니다. 정치인은 희망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희망을 만드는 데 한계를 느낀 겁니다. 진보정당으로서, 제3지대로서 그동안 정의당의 위치보다 좀더 대중적인 제3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배복주 후보의 설명이다.

결국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는 낮아졌고, ‘위성정당 논란’으로 진보 진영 내부는 분열했다. 시민사회 운동을 연구해온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되려는 시민사회 활동가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정치권으로 보낼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 제대로 정치에 나아갈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민사회 활동가가 정치인이 되는 건 당연히 필요합니다. 사회문제 현장에서 토론하고 합의하고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법을 바꿔 변화를 만들겠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연합이 그런 시민사회 운동의 정치 반영을 진정성 있게 생각해 만들어졌나요? 그렇게 보기엔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형성 과정이 너무 짧았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정치권으로 나갈 충분한 시간 있어야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정치학)도 시민사회 활동가의 정치 참여는 비판할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사회 활동가에서 정치인이 되려는 이들에 대한 비판은 (‘정치는 썩은 것’이라는 식의) 정치혐오에 기반한 생각”이라며 “시민사회 운동도 ‘정치적 공간’이 있어야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그냥 국회의원을 바꾸면, 권력을 동원하면 사회가 바뀌리라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군인 인권, 장애인 인권, 이주노동 등 사회 이슈를 글로 배운 게 아니라 사회 현장에서 토론하고 설득하고 합의하고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지금 국회엔 필요합니다.” 공석기 교수의 말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