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사 신임장 수여식조차 못한 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내보낸 모양새는, 고종 황제가 국운을 걸고 밀사를 파견하던 때의 미장센을 소환했다. 그러나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다음에는 희극으로’(카를 마르크스). 호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 <에이비시>(ABC)는 2024년 3월12일 ‘한국 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신임 외교사절이 형사 피의자로 소란스럽게 소개되는 순간이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중인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인 이 대사는 앞서 3월7일 공수처에 출석해 4시간 조사를 받았다. 공수처의 반대에도 법무부는 이튿날 그의 출국금지 조처를 해제했다. 그는 3월10일 신임장 복사본을 품고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윤 대통령이 3월4일 그를 호주대사로 임명한 뒤 엿새 만이었다. 이 대사가 한국을 떠나던 날, 더불어민주당은 인천공항에서 ‘이종섭 장관님 어딜 도망가십니까!’라고 쓴 펼침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외교 관행까지 깡그리 무시된 이 엿새간의 일들은 곧 ‘런종섭’ 사태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절반의 진실만을 담은 이름이다. 누가 이 대사를 내보냈느냐가 본질이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2023년 7월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임의로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에 대한 수사는 윤 대통령이 격노하는 바람에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의 혐의 내용을 빼게 했다는 의혹과 맞닿아 있다.
런종섭 사태는 4월 총선의 주요 변수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남태평양을 향해 날려보낸 부메랑이 북태평양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열대성 저기압은 태풍으로 발달할 수 있을까.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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