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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보낸 1년, 새로 시작한 348㎞의 새 여정

7조원 매출 올리고 7명 고용승계 거부하는 일본 기업
등록 2025-02-12 10:06 수정 2025-02-12 17:51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씨가 2025년 2월7일 오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열린 `가자 국회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 뚜벅이 출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씨가 2025년 2월7일 오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열린 `가자 국회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 뚜벅이 출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영하 5도의 차디찬 공기로 무장한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땅에 쌓인 눈이 세를 합쳐 달려들었다. 이제 곧 300㎞가 넘는 도보 여정을 시작해야 할 터였다. 출발을 앞둔 70여 명의 사람들이 시선을 한 군데로 고정했다. 시선이 멈춘 곳엔 9m 남짓의 옥상에서 확성기를 들고 있는 두 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이들이 처음 이곳에 올랐을 때도 그렇게 추웠다. 1년을 넘게 땅을 밟지 못한 두 노동자가 투쟁과 희망을 말했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70여 명은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최종 목적지는 ‘고용승계’다.

2025년 2월7일, 경북 구미 산단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찾았다. 해고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위해 국회로 가는 희망 뚜벅이 첫날이다. 2024년 말, 부산에서 구미까지 160㎞ 걸어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다시 앞장섰다. 한국옵티칼 해고 노동자 5명도 그 뒤를 따랐다. 불법파견과 부당해고 등에 맞섰던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과 힘이 되고 싶다며 서울에서 온 청년 등 60여 명도 대열에 합류했다. 첫날 목표는 구미역까지 약 12㎞였다.

한국옵티칼은 일본의 닛토덴코그룹이 2003년 경북 구미에 세운 자회사로, 엘시디(LCD)용 편광필름을 만들어 엘지디스플레이 등에 납품한다. 닛토덴코그룹은 1999년 경기 평택에 먼저 한국니토옵티칼이란 자회사를 세운 뒤, 2003년에 구미 제4국가산업단지에도 입주했다. 당시 50년간 무상임대 및 법인세·취득세 감면 혜택도 받았다. 설립 당시 220억원을 투자해 2022년까지 약 7조7천억원을 벌어들였다. 2017년엔 직원 수만 700여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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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한국옵티칼 생산동에 화재가 발생했다. 니토덴코그룹은 한 달 뒤 회사 청산을 통보하고 희망퇴직을 받았다. 190여 명이 퇴직을 신청하고 나갔다. 17명은 끝까지 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 사쪽은 이듬해 2월 17명을 해고했다. 이 중 7명이 지금까지 남아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2024년 1월8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 박정혜와 조직2부장 소현숙이 공장 철거를 막기 위해 급하게 집하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직 내려오지 못했다. “그날은 공장 철거 승인이 난 날이었어요. 새벽에 농성장에서 같이 자고 있다가 급하게 올라갔거든요. 그 뒤로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요. 빨리 (고용승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너무 답답하고 미안할 따름이죠.” 구미역을 향해 걷던 한국옵티칼의 또 다른 해고 노동자 이지영이 말했다. 한 시간 남짓 겨울바람을 맞은 이지영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2017년 회사에 입사했다. 일을 시작한 지 만 2년이 지나지 않은 2019년 첫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구조조정에도 크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2년, 회사가 다시 그를 불렀다. “다시 돌아왔을 땐 정년까지 일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쉽게 망하지 않는구나, 잘 해보자는 다짐이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났다고 또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거에요. 이번엔 못 나가겠더라고요. 본사는 책임도 안 지고 일본과 평택으로 물량은 다 빼서 도망간다는 게 너무 열받고 억울하더라고요.”

한국옵티칼은 2019년~2020년 두 차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1차 구조조정 때 316명이, 2차 구조조정 때 149명이 희망퇴직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니토덴코그룹의 중국 공장이 멈췄고 본사는 구미 공장 가동율을 높였다. 이지영을 비롯해 100명 넘는 직원이 채용됐다. 그런데 2022년 화재가 발생한 뒤 회사는 갑자기 청산을 하겠다고 했다. 노조 쪽에선 화재로 인한 재건 비용은 677억원 정도고, 사쪽이 화재 보험금으로 1천억원 이상을 수령했는데도 청산하겠다고 하는 건 위장폐업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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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조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체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사이 사쪽에선 노동자들이 공장 철거를 방해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전세보증금과 주택 등을 가압류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해고하고 전세보증금 가압류… ‘노란봉투법’ 있었으면?) 이후 금속노조에서 1년 동안 장기투쟁사업장에 지원하던 것도 끊기며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공장에 남아 투쟁을 이어가던 해고노동자들 몇몇은 가족과 생계를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싸움을 멈추고 떠나야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비롯한 `가자 국회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 뚜벅이' 참가자들이 2025년 2월7일 오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을 출발해 구미역을 향해 걷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비롯한 `가자 국회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가는 희망 뚜벅이' 참가자들이 2025년 2월7일 오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을 출발해 구미역을 향해 걷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해고노동자들의 요구는 지극히 단순하다. 평택에 있는 니토옵티칼로 고용을 승계하라는 것이다. 이제 남은 사람도 7명에 불과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 최현환은 “구미 공장 화재 이후 물량을 넘겨받은 평택(한국니토옵티칼)에서 30명을 신규채용까지 했는데, 7명 고용승계가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용승계라는 선례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는 현재 중노위 재심판정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최근엔 일본 오사카 노동위원회에도 구제신청을 했다. 이번에 희망 뚜벅이를 하는 이유도 국회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이유에서다.

5명의 해고노동자들은 3월1일까지 23일 동안 348㎞를 걷는다. 이지영이 박정혜와 소현숙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저희가 7명 다 같이 밥 먹는 게 꿈이거든요.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어서 같이 밥먹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조금만 더 힘내자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1년 넘게 조그마한 건물 옥상에서 화장실도, 바람을 막아주는 벽도 없이 버티고 있는 두 노동자는 언제쯤 내려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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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경북)=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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