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외교로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해양 방류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냈다. 일본이 자국 내 연구 결과를 IAEA에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내부 논의만 하고 있다. 국제법에는 각국이 육상 오염원에 대한 해양오염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일본을 상대로) 국제 소송과 가처분 소송도 해야 될 것이고.”
2023년 7월12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화했다. 이 말은 누가 했을까. 한-일 회담 결과에 반발하는 어느 야당 의원이 한 발언이 아니다. 2020년 10월26일 국회 외교부 종합감사에서 지금은 국민의힘 대표가 된 김기현 의원이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이 오염수 방류에 사실상 찬성한 지금, 김기현 당대표의 입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과 동시에 각국은 각국의 주권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다. 오염수를 방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려는 누구나 갖는 생각이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뜻만으로 관철할 수 없다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2023년 7월1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김기현 대표)
소신은 팽개쳤다. 안전도 팽개쳤다. 국민도 팽개쳤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본다. 일본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통령에 호응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싸늘한 여론 뒤집기에 나섰다. 한국갤럽이 6월27~29일 전국 만 18살 이상 1007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오염수 방류가 걱정된다’는 응답은 78%였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여론보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택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80%에 이르는 우려 여론을 무시한 채 “정치 오염물 뱉어내는 그 입이야말로 오염수보다도 더욱 위험한 오염구”(7월10일 최고위원회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본 정부만큼이나 오염수 방류 홍보에 열성적인 모습도 보였다.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6월30일)에서 횟감 생선이 담긴 수조물을 손으로 떠먹은 게 대표적이다. 5선 김영선 의원은 같이 간 의원에게도 수조물 마시기를 권했고, 이에 류성걸 의원이 같이 마셨다. 6월23일에는 원내대표단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 ‘횟집 회식’을 하며 안전성을 강조했다. 미래세대가 살아갈 해양생태계 위협 문제를 ‘지금 당장 회를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식의 가벼운 논의로 치환해버리는 행보였다.
왜 이러는 걸까.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실질적인 공천권을 윤석열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걸 다 알지만 줄을 설 순 없는 상황이니, 눈에 띄기 위한 액션을 보내는 것”이라며 “지지층에 잘 보이려는 뜻도 있지만 대통령에게 2024년 총선을 잘 부탁하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에서 당직을 맡은 한 인사도 “국민 보라고 저렇게까지 하겠나. 결국 대통령 보란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이런 당내 분위기의 배경을 시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문화방송(MBC)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전 최고위원)과 보좌진의 대화가 담긴 음성 녹취를 공개한 건이다. 이 녹취에는 당 지도부가 왜 대통령실 눈치를 살피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태 의원은 2023년 3월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좌진에게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당신이 공천 문제 때문에 신경 쓴다고 하는데 당신이 최고위원 있는 기간 마이크를 잘 활용해서 매번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오늘 이렇게 (발언)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보고가)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라 말한다.
이런 대화가 오간 이후인 3월13일, 당시 최고위원이던 태영호 의원의 발언은 윤 대통령의 외교 행보를 강하게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바뀐다. 그는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구상권 포기를 밝힌 것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구상권 포기 결정은 대국적, 대승적 결단입니다. ‘빈손 외교’ ‘굴욕 외교’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는 것이 비정상적입니다”라고 찬양했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국민의힘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지금 바로 그분, 그 사람에게 충성하지 못해서 이 난리냐. 지금 국민의힘의 모습을 보면 좀 한심한 생각이 든다. 권력에 아부해서 공천받고 떡고물이라도 나눠가지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왕정도 아닌 민주공화국에서 ‘충신이다, 윤핵관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유치한 얘기다.”
유승민 전 의원이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있기 전인 2022년 12월12일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출연해 한 말이지만,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유 전 의원은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서도 의원들의 ‘비판 실종’을 우려했다. 그는 “12년 전 원전 폭발 때의 방사성물질로 인한 해양오염이 수산물 수입 금지의 근거였는데, 12년이 지난 지금의 오염수 방류는 문제가 없다고 우리 정부 스스로 말한다”고 비판했다.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비판을 “반지성주의 선동”이라고 공격하는 등 윤 대통령 방어에 나서고 있다.
최근 차관 개각 논란에 대해서도 당내에선 침묵 일색이다. 당 최고위원회는 ‘문재인 생체실험설’ ‘4·15 총선 부정선거’ 등 가짜뉴스를 퍼뜨린 유튜버(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를 차관급에 기용하는 극우화 행보도 방어했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논란에 대해 “공인이 되기 이전의 정치적 발언의 자유와 공인이 되고 나서 언행에 대해서는 판단 기준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정치적 발언의 자유라는 것은 공직에 들어가기 전에는 누구에게나 폭넓게 보장되는 것”이라고 MBC 라디오에서 말했다.
현재 당의 최고위원회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철저히 방어한다. 게임 룰을 바꿔 윤심을 반영한 결과다. 2023년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은 일반인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않는 ‘100% 당원투표’로 게임의 룰을 바꿨다. 유승민 전 의원,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을 주저앉혔다. 윤 대통령이 룰 변경을 사석에서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윤심’을 등에 업고 스타성이 약한 김기현 의원이 대표에 올랐고, 김병민·김재원·조수진·태영호 최고위원,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으로 최고위가 구성됐다. ‘윤심을 알아서 헤아리는’ 최고위가 구성된 셈이다.
‘윤심 공천’ 우려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연일 ‘검사 공천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민심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공천해야 하고 그 뜻에 있어서는 (윤 대통령과) 서로 간 차이가 없다. 윤 대통령과 일대일 회담을 굉장히 자주 해왔다. 내 기억으로 일대일 형태로 열 번 이상은 만난 것 같다”고 설명한 것에 유승민 전 의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김기현 대표가 그렇게 말한 것 자체가 굉장히 큰 모순이다. ‘내가 용산에 여러 번 갔는데 검사 공천 같은 거 없다더라’라는 말 안에 깔린 게 대통령이 공천 다 한다는 거 아닌가. 당에서 해결해야 될 일을 왜 용산에 가서 물어보나. 엉뚱한 데 가서 답을 찾는 것이다.”(6월26일 KBS 라디오)
2020년 제21대 총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관리위원장(공관위)을 맡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막말 논란 정치인’ 등을 배제한 공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후 당 최고위로부터 6개 선거구 공천에 대해 재논의할 것을 요구받았다. 당시 황교안 전 대표는 공관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했다가 사실상 공천에 개입해 갈등이 커졌다.
2021년 총선 공천 과정을 기록한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21세기북스)을 펴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공천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의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한다. “아직 우리 정치는 ‘잘하는 의정활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정의조차 안 된 수준이다. 여야 합의로 유능한 전문가들을 기용해 의정활동에 대한 지침, 좋은 사례와 나쁜 사례, 바람직한 의정활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부터 하루빨리 정립해야 한다. 그 개념 정리조차 안 된 상태에선 공천으로 인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 정도를 제외하면, 인지도가 있는 국민의힘 인사들은 제22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지금 같은 공천 제도 속에서는 충성경쟁을 계속 양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당에 영입한 사람, 공천권이 연계돼 있으면 소신대로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20여 년간 여의도에서 일해온 국민의힘 한 보좌관도 “(김채환 원장 기용은) 지금은 외곽 인사라고 보고 넘어갈 텐데, 이런 분위기가 점점 주류가 되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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