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둔 2023년 1월19일 오후, 인천 동구 송현시장에 ‘구 관계자들이 시장을 방문할 예정’이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이 끝나자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제일 바쁜 날에 찾아온다는 건,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란 거지.” 한 식당 사장이 말하자, 건너편 반찬가게 사장은 “맞아요, 맞아”라며 맞장구쳤다.
이날 구의원 가운데 가장 먼저 송현시장을 찾은 이는 김종호 구의원(정의당)이었다. 상인들이 반기지 않는 다른 의원들처럼 ‘어묵 먹고, 악수하고, 사진 찍는’ 게 전부인 방문은 아니었다. 장을 보던 지역주민 양은모(58)씨가 김 의원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양씨는 “내가 한번 연락한다는 게 못했다”며 김 의원에게 말을 건넸다. “장애인 운동 바우처(이용권)를 받았는데 동구에는 그걸 쓸 수 있는 곳이 없더라. 다른 구로 가야 하는데 성인 장애인이 솔직히 다른 구에 다닐 수가 없다. (아이가) 코로나19로 살도 찌고 집에만 있기 힘든데 해결 방법을 알아봐달라.” 김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더니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김 의원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경로당도 찾았다. 화투를 치던 어르신들이 김 의원에게 익숙하게 반말로 인사를 건넸다. “저번에 와서 화투 쳤나? (우리가) 부업으로 전단용 휴지 포장할 때 왔지, 참.” “올해는 결혼 좀 해.” 신수옥(87) 할머니는 “(김 의원이) 구의원 (계속) 시켜달라고 오는 거겠지”라면서도 김 의원을 살갑게 챙겼다. “(투표용지에) 이름이 너무 많잖아. 내가 (김종호 이름) 다 찾았지. 그래도 (2022년 선거 전에는) 떨어지더라.” 김 의원은 “(경로당 거실에) 왜 보일러가 잘 안 들어오지, 이건 제가 알아볼게요”라고 말하며 경로당을 나섰다.
“그래도 떨어지더라”라는 어르신의 말대로 김 의원은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두 차례 낙선했다. 그는 2010년 인천에서 지역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첫 선거(당시 3인 선거구)에 나갔지만 떨어졌다. 그 뒤 4년간 주민과 밀착된 활동을 벌였다. 인지도가 높아졌다. 2018년엔 22%를 득표했지만 ‘3인 선거구’가 ‘2인 선거구’로 바뀌어 또 패했다.
2022년 6·1 지방선거에 이르러야 그는 삼수 끝에 기초의원에 당선됐다. 2018년보다 못한 16%를 득표(3위)했지만, 인천 동구 가선거구가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 지역’에 포함돼 ‘4인 선거구’가 된 덕분이다. 한 선거구에서 1명을 뽑으면 소선거구제, 2~4명을 뽑으면 중선거구제, 5명 이상을 뽑으면 대선거구제라고 부른다.
물론 김 의원이 당선된 건 중대선거구제 덕‘만’은 아니었다. “저는 (당 이름이 아닌) 제 이름을 알려야 하잖아요. ‘당을 떠나서 이 사람이 잘하겠구나’ 평가를 받아야지만 당선될 수 있어요.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이랑 가까워서, 더불어민주당이면 ‘윤석열 대통령 견제’, 국민의힘이면 ‘지방정부도 국민의힘’ 프레임으로 홍보했어요. 소수정당 후보들은 이 사이에서 치고 들어갈 게 없으니, 그냥 자기가 열심히 해야 하는 거예요.” 그는 “3인 선거구 이상이면서, 15% 정도의 득표력은 갖고 있어야 (당선될 만한)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소수정당이어서 인지도를 높이기 힘들자, 민원을 듣고 실무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주민 밀착형 정치를 해왔다. 인천의 대표적 원도심인 동구엔 노년층이 많이 살아, 실무적으로 도울 일이 많았다. 가령 2017년 전후 재개발로 아파트가 지어진 뒤 원도심 주민들은 감정평가액보다 높은 분양가를 감당하기 힘들어 쫓겨날 뻔했다. 김 의원은 주민들이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기자회견을 하도록 돕고, 원도심 주민들이 공공임대처럼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살다가 8년 뒤 분양 여부를 선택하도록 인천도시공사와 협의했다. 주민과의 대화도 없이 거주지역 100~200m 앞에 ‘동구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건립’이 발표됐을 때는, 앞장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 의원은 ‘중대선거구제’가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출 가능성을 높여준 대표적 사례다. 6·1 지방선거 당시 인천 동구 가선거구를 포함한 30개 선거구가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 지역’으로 선정됐다. 기존 ‘2~4인 지역구’를 ‘3~5인 지역구’로 확대해 중대선거구제의 효과를 실제 가늠해보려 했다. 기존 기초의원 선거에선 2인 선거구가 많았던 탓에 거대 양당이 공천으로 사이좋게 한 자리씩 나눠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선거제도 아래에서 소수정당은 기초의회 진출이 어려웠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12월30일 낸 ‘제8회 동시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의 효과와 한계’ 보고서에서 “시범실시 지역을 포함하여 소수정당이 당선된 지역의 대부분은 3~4인 선거구로, 2인 선거구에서는 소수정당 후보의 당선율이 낮다”며 “기초의회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3인 이상 선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2인 선거구는 양대 정당의 의석 독점을 높인다”고 제언했다.
그럼에도 이번 시범실시를 놓고 ‘중대선거구제 실험은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과적인 수치만 보면 양당 후보 독식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를 보면, 시범실시 지역 선거구는 서울(8곳), 경기(6곳), 인천(4곳), 대구(2곳), 광주(3곳), 충남(7곳) 등 30곳으로 당선자 109명 가운데 소수정당 후보는 4명(인천 동구 가, 광주 광산구 다·라·마)에 불과했다. 3.6%만이 소수정당, 나머지 96.4%는 양대 정당으로 양당 독식이 여전했다.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시범실시가 결정돼 소수정당 후보들이 출마를 준비하기 힘들었던 한계도 작용했지만, 그렇더라도 미미한 효과였다.
이에 대해 소수정당 소속으로 중대선거구 시범실시 지역에서 당선된 기초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이 문제였다’고 입을 모았다. 광주 광산구 마선거구에서 당선된 한윤희 구의원(정의당)은 “2인 선거구였을 땐 민주당에서 그 수만큼 공천해 어려웠는데, 3인 선거구로 바뀌자 3명을 후보로 냈다”며 “만약 4인 선거구면 (한 정당에서) 4명 다 낼 수 없고 몇%까지 낼 수 있다, 이런 단서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중대선거구제라도 소수정당에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 라선거구에서 당선된 김명숙 구의원(진보당)도 “2인 선거구일 때 민주당 후보 2명이 다 당선했고 이번에도 3인 선거구에서 후보 3명을 냈는데, 그나마 저는 오랫동안 지역 활동을 많이 해와서 2위로 당선될 수 있었다”며 “(중대선거구제는) 양당 독점과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막고 소수정당이나 다른 정당들도 진입하게 하자는 것이 취지인데 이런 복수공천으로는 다당제 실현, 다양한 생기 있는 의견 반영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 덕에 전통적인 보수 텃밭 대구에서 기초의회에 진입할 수 있었던 정경은 대구 수성구 의원(더불어민주당)도 “4명을 뽑는다니까 선거에 국민의힘 후보 3명, 무소속 후보 3명, 나까지 7명이 나왔다”며 “중대선거구제가 정말 취지를 살리려면 한 당에서 후보를 몇 명 이상은 못 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하자, 정치권도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나섰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국회에서 전문가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양당정치 말고 유의미한 선택지가 많이 주어져야 대표성, 다양성이 증진될 수 있다”면서도 “중대선거구제를 실시 중인 기초의원 선거를 보면 대다수가 양당 소속이다. 다당제가 목표라면 현시점에서 중대선거구제가 대안인지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도 “일본과 대만이 이런 선거제를 채택했다가 1990~2000년대 들어 개혁했다”며 “사표를 줄이는 장점은 있지만 당내 파벌정치와 고비용 선거 등 문제점이 더 많다”고 밝혔다.
의원들의 셈은 제각각이다. 정치개혁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인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같은 정당이라도 지역구가 어디인가. 인지도가 있나, 신인인가. 이해관계에 따라 논리도 바뀐다.
기초의원이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현재로선 단언하기 쉽지 않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기초의원 선거 시범실시 결과 등을 참고하는 건 가능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비례대표제 개편, 공천 개혁, 국회의원 수 확대, 신생 정당 등장 여부 등 선거구 외에 선거에 영향을 끼칠 요소가 있는 탓이다. 선거 역사를 보면 중대선거구제가 제5대 참의원 선거, 제9~12대 국회의원 선거 때 실시된 바 있지만, 1988년 4월 이후엔 소선거구제가 지속됐다.
김종호 구의원은 ‘당연히’ 중대선거구제 찬성론자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찬성하는 정치학자들은 ‘승자독식 소선거구가 사표를 낳는다’ ‘다수 시민이 자신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정책·가치·이념에 따라 정치적 대표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지 자체가 적다’와 같은 근거를 들기도 한다. 김 의원이 생각하는 중대선거구제가 필요한 이유는 더 현실적이다. 현장에서 그가 본 소선거구제의 폐해는 국가 현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입법부’ 국회의원이 ‘동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기초의원도 있고, 시의원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잖아요. 저는 각각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민 밀착형 정치는 구의원이 맞는 것 같아요. 주민들이 국회의원, 구청장은 만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국회의원이 ‘쪽지 예산’ 해서 지역구 예산을 따오면 펼침막 걸고 칭찬받는 식이잖아요. 국회의원은 나라 살림에 관여하고 법을 만드는 고유의 역할이 있잖아요. 소선거구제에서 지역에만 매몰되면 국회의원,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공약이 다 비슷해지는 거예요.”
김 의원은 “기초의원들 보면 자영업 하면서 아르바이트하듯이 도전하는 분도 있다”며 “우리 정치에서 기초의원·광역의원이 국회의원 하부조직처럼 역할을 하다보니 그렇다”고 꼬집었다. 소선거구제에서 ‘동네 민심’에 매몰된 국회의원들은 ‘지역 표밭 다지기’에 열중한다. 보좌관, 지역 유지 등 ‘내 사람’을 시의원·구의원으로 세워 표 관리에 이용한다. 공천만 되면 당선되는 마당에 거대 양당 후보들은 주민을 바라보기보다 당 지역위원장인 전·현직 국회의원을 바라본다. 국회의원 하부조직처럼 예속된 기초의원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흔든다. 다양성과 정치적 대표성 확대는 어려워진다.
김 의원과 같은 소수정당 기초의원들의 말대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양당의 복수공천 자제를 유도해야 할까. 한국과 미국의 정치행태(Political Behavior)를 연구해온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는 “정치인들이 위성정당도 만들었는데 복수공천을 자제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선거구제 얘기를 하는 건 아주 심하게 말하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욕 안 먹고 복수공천으로 위성정당과 비슷한 효과를 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 교수는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반영할 수 있는 신생 정당의 탄생 기반을 닦는 게 먼저라는 지적도 했다. “중대선거구제만 도입하면 다당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정당 설립 요건 완화로 새 정당들이 탄생하고 다당제가 자리잡은 상태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이뤄져야 한다. 지방자치제가 중앙정치에 종속된 문제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거구’보다 ‘공천 고리’를 끊는 게 더 중요하다.” 거대 양당이 다당제를 유도하자고 해놓고 복수공천을 하고, 비례대표제를 하자고 해놓고 위성정당을 만드는 식이라서다. “정당 간 정파적 양극화 심화를 깨는 게 정치적 과제라면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고, 비례대표 수를 늘리고, 대신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다 알고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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