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뒤집어주면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 2002년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 부산을 찾아 호소했다. 아직 ‘지역주의’ 기세가 등등한 시절, 자신의 정치적 고향에서부터 개혁의 새바람이 시작되도록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부산 시민들을 향해 압도적 지지를 호소한 그는 이어 대구→대전→수원→서울로 이어지는 ‘경부선 상행선’ 유세를 펼쳤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선거운동 첫날 자정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출발해 대전→대구→부산을 잇는 ‘경부선 하행선’ 유세를 펼쳤다. 서울시장으로 정치적 성장을 이룬 점을 강조하며 유능한 경제대통령 이미지까지 노린 선택이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 일정은 그 자체로 각 후보 선거캠프 지략의 총체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선거운동 첫날 대전에서 지지를 호소한 뒤, 같은 날 세종→충남→전북을 잇따라 방문했다. 중원에서 ‘국민대통합’을 강조하는 동시에 경쟁 후보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충청권 지지율 추격 추세를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2017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구→대전→수원→서울 순으로 유세를 펼쳤다. 민주당의 험지이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첫 일정을 시작한 것은 전임 대통령 탄핵 정국 속 펼쳐진 선거에서 ‘국민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었다.
2022년 2월15일 0시, 제20대 대통령선거 공식 레이스가 시작됐다. 당락이 갈리는 것은 지금부터다. 이 시간부턴 선거운동 동선과 캠페인 로고송, 텔레비전 광고는 물론 후보의 숨소리 하나까지 모두 ‘메시지’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 1·2위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경쟁을 시작한 만큼 이번 대선 선거운동 기간, 유세 현장의 전쟁은 더욱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부산에서 출발해 대구→대전→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전통적 동선과 궤를 같이한 것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출발점을 부산으로 정한 것은 비교적 취약 지역인 부산·울산·경남의 민심 공략이라는 전략적 포석과 함께, 이 후보가 이번 선거운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경제성장이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부산항에서 물류가 도착해 경부선을 타고 죽 올라오듯 경제 도약의 의미를 일정으로 담았다”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이와 반대로 첫날 서울→대전→대구→부산을 잇는 ‘경부선 하행선’으로 움직였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는 “경부축은 21세기판 실크로드인 아시안하이웨이로, 아시아 32개국에서 14만㎞ 노선이 구축되면 자동차로 부산에서 출발해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갈 수 있는 꿈의 길이 열리게 된다. 윤 후보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과 비전을 염원한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첫 이틀을 호남에 집중 투자했다. 정의당에서는 “비호감 진흙탕 대선을 호남의 진보 개혁 정신으로 바로잡고 녹색·복지 대통령 시대로의 대전환을 이끌겠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선거 첫날 경북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야권 단일화 요구가 높은 상황에서 ‘보수의 심장’인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정면돌파에 나선 것이다.
선거운동의 배경음악이 될 로고송이 유세 현장의 흥만 돋우는 게 아니다. 각자의 선거전략에 따라 기존 노랫말을 후보에게 맞게 개사하거나 캠프에서 자체 제작한 노래도 있다. 윤 후보 쪽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책을 짚으려 윤수일의 <아파트>를 로고송 중 하나로 선택했고, 이 후보 쪽은 슬로건인 ‘나를 위해 이재명’을 각인하는 동명의 노래를 제작했다.
‘노무현의 <상록수>’처럼 후보의 인간미를 극대화할 텔레비전 광고도 선거운동의 주요 요소다. 재정이 넉넉한 거대 양당은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반면 선거 예산이 빠듯한 정의당은 라디오 광고를 제작하는 데 그쳤고, 국민의당은 온라인 광고를 준비 중이다.
한편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월15일 안철수 후보의 유세 버스에서 운전사와 지역 선대위 관계자 등 2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추정)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2월16일부터 각 후보 선거 유세 현장에서는 고인을 애도하는 뜻을 담아 로고송이나 율동 등을 잠정 중단하고 ‘조용한 유세’를 펼쳤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첫 3일간 선거운동 동선
2월15일 부산→대구→대전→서울
0시 부산 영도구 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
“위기 극복의 총사령관이자 경제 살리는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되겠다.”
낮 12시 대구 동성로
“저는 좋은 정책이면 좌파·우파냐, 김대중·박정희 정책이냐를 가리지 않는다.”
2월16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송파구 잠실새내역
낮 12시 강남역 11번 출구 앞
“세상을 바꾸라고 준 힘을 사적 보복에만 사용하는 무책임함, 이런 것은 우리 공동체를 망치는 죄악”
오후 7시 잠실새내역 7번 출구 광장
“부동산 문제, 민주당이 부족했다고 질책하고 계신 것 잘 안다. 시장을 존중하겠다. 시장이 부족하다고 하면 (공급을) 늘리겠다.”
2월17일 서울 노원구 노원역→중구 청계광장→성동구 왕십리→마포구 홍대
오전 10시 노원구 롯데백화점 앞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합리적으로 풀어 여러분이 좋은 주택에서 행복하게 살 길을 열겠다.”
낮 12시30분 중구 청계광장
“이 촛불광장에서 우리 시민들이 든 그 가냘픈 촛불로 쫓겨난 정치세력이 단 5년 만에 다시 복귀하고 있다.”
로고송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이찬원의 <진또배기>, 모모랜드의 <뿜뿜>, 김수희의 <남행열차>, 소찬휘의 <티어스>(Tears), 유정석의 <질풍가도>, 라붐의 <상상더하기>, 민주당 선대위가 자체 제작한 <나를 위해 이재명>, <비 위드 유>(Be with you) 등.
광고
‘이재명의 편지’. 2월15일 공개한 첫 텔레비전 광고. “이재명을 싫어하시는 분들께”라고 시작하는 ‘셀프 디스’ 콘셉트의 광고. 민주당 선대위는 “흠이 많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지만 대부분 약자 편에 서서 일하다 생긴 상처라고 진심 어린 호소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
첫 3일간 선거운동 동선
2월15일 서울→대전→대구→부산
오전 10시 서울 중구 청계광장 출정식
“부패하고 무능한 더불어민주당 정권을 정권교체로 반드시 심판하자.”
오후 5시10분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백화점 앞
“제 주변과 측근의 부정부패도 단호하게 읍참마속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2월16일 광주→전주→청주→원주
오전 9시50분 광주 송정매일시장
“광주의 역내 GDP(지역내총생산, GRDP)가 전국 꼴등(실제로는 2020년 17개 광역시도 중 15위)이다. 수십 년 민주당 독점정치가 광주·전남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오후 6시10분 강원도 원주 문화의거리
“부정부패를 법에 따라, 공정한 시스템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가지고 (여권에서) 자기들에게 정치 보복한다고 호들갑 떨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2월17일 안성→용인→성남→서울 송파구→서초구→종로구
오전 10시 경기도 안성 중앙시장 앞
“민주당 정부는 평소에 아주 친기업적으로 갖은 알랑방귀를 다 뀌다가 선거 때 되면 노동자와 기업을 갈라치기한다. 노동자를 위하는 것같이 코스프레해서 선거공작을 한다.”
오후 1시 경기도 성남 야탑역 1번 출구
“(이재명 후보가) 인구 100만의 성남을 이렇게 운영했는데 5천만 대한민국을 운영하면 나라 꼬라지가 어떻게 되겠나. 증인들이 원인을 모르고 죽어나가는 이런 세상에서 경제가 발전하고 민생이 안전할 수 있나.”
로고송
영탁의 <찐이야> <찰랑찰랑>, 마마무의 <힙>(HIP), 윤수일의 <아파트>,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2021년 국민의힘이 개최한 로고송 공모전에서 수상한 <될꺼니까>, <에브리바디 파이팅>(Everybody Fighting) 등.
광고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아이 편과 국민 편’. 2월15일 두 편의 텔레비전 광고를 공개. 윤 후보가 정권교체 적임자임을 강조. 국민의힘 선대위는 “국민이 왜 윤 후보를 불러냈고, 대선 후보로 지금까지 이끌어준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
첫 3일간 선거운동 동선
2월15일 익산→전주→광주
오전 11시 전북 전주 롯데백화점 앞
“촛불이 염원한 개혁과 진보를 밀고 갈 후보, 김대중·노무현 정신 이어갈 후보는 저 심상정 하나 남았다.”
오후 6시 광주 유스퀘어 앞
“대선이 이대로 치러진다면 시민의 삶은 더 나빠지고 국격은 추락할 것이다. 역사적 퇴행 단호히 막아낼 심상정에게 힘을 실어달라.”
2월16일 영암→목포→여수
오전 11시30분 전남 목포 동부시장
“이재명 후보는 보수로 가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실용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재벌을 위한 것.”
오후 3시30분 전남 여수 폭발사고 대책위 방문
“여수산단을 비롯해 노후 산단 안전 특별법을 제정하고, 건설안전특별법을 만들겠다.”
2월17일 울산
오전 10시30분 울산 현대중공업 앞
“제1야당 후보는 반노동자 인식을 넘어 노동혐오로 나가고 있다. 집권여당은 노동자들의 표는 다 자기 표인 양 노동정책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오후 1시30분 울산 남구 신정시장
“양당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돼도 5년 내내 정쟁은 격화되고 민생은 공중으로 날아가버릴 것이다. 정권심판도 개혁도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심상정에게 표를 모아달라.”
로고송
이무진의 <신호등>, 유정석의 <질풍가도>, 에이핑크의 <미스터 츄>(Mr.Chu), 그리고 <간 때문이야> <오로나민씨> <캐논 변주곡> 등.
광고
2월15일 라디오 광고 공개. “차별받지 않는 나라, 기후위기 걱정 없는 나라,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나라,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 보통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나라”를 강조.
첫날 선거운동 동선
2월15일 대구→구미→김천→안동→영주
오전 10시20분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방명록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제2의 과학기술 입국으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
오전 11시20분 구미역 중앙시장
“대한민국은 야구로 친다면 9회말 투아웃 상황이다. 홈런 칠 수 있는 4번 타자가 기호 4번 안철수다.”
2월16일 선거운동 중단
2월17일 선거운동 중단
로고송
이한철의 <슈퍼스타>, 에일리의 <하이어>(Higher), 유정석의 <질풍가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국민의당 선대위가 자체 제작한 <4번 타자 안철수> <안철수 갈매기> <안철수신제가치국평천하> <동행> 등.
광고
온라인 광고용으로 영상 제작 중. 해군 군의관으로 군복무, 컴퓨터 백신 무료 보급, 1500억원 사회 기부, 코로나19 봉사활동 이력 등을 제시하며 “믿을 사람, 바른 사람 안철수”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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