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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이준석의 세대결합론은 거대한 착각이다

지난 승리 경험에 갇혀 유권자를 작업 대상으로 보는 재주꾼의 자충수

제1397호
등록 : 2022-01-15 15:51 수정 : 2022-01-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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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12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뒷줄 오른쪽)와 이준석 대표가 서울시 종로구 그랑서울 타워1에서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 대회인 2022 LCK 스프링 개막전을 관전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람은 쫄리거나 위기에 처하면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상황을 극복하려는 습성이 있다. 다이어트 스트레스를 먹는 거로 풀다가 요요 현상이 오고, 나쁜 여자(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려다 더한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이런 걸 두고 성격이, 혹은 습관이 팔자라고 하려나.

당대표 사퇴결의안까지 받을 뻔한 위기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품어 구한 건 윤석열 후보였다. 개연성 없는 ‘막장 화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안 그러면 둘 다 죽는다는 절박함이 이유였을 것이다.

기대 이상 이준석은 ‘열일’하고 있다. ‘윤주청’이라 불리는 윤석열 주변 청년보좌역들의 투기적 정책 투척(‘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과잉 행보(이마트에서 벌인 ‘멸콩쇼’), 아슬아슬한 발언(북한 선제타격론) 등을 빠르게 수습해줬다. 사흘 내리 아침 점심 저녁 생방송에 출연해 의미를 축소하거나 정리하는 식으로 논란을 끊어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듯, 당 내홍 당시의 신경질적이고 흥분된 어조에서 차분하고 언뜻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투로 돌아왔다. 젊은층의 지지율이 회복되고 있다며 ‘봐라, 내가 오니 다 된다’는 자신감도 감추지 않는다. ‘어게인 72.5(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에게 얻은 득표율)’를 내걸었다. 기세를 몰아 후보가 방문할 지역에 한발 먼저 가서 언론을 사전 ‘커버’ 치는 ‘기술’도 시전 중이다. 후보가 안 보인다, 후보 앞을 너무 가린다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드디어 운전대를 잡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준석이 준비한 비단 주머니는 이준석 자신이었다.

그가 자신이 적임자라며 만능처럼 내세우는 ‘세대결합론’은 간단하다. 국민의힘에 우호적인 2030 청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활약하고 그들의 부모 세대인 50대 이상을 ‘설득’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4050 세대를 포위하여 덮을 수 있단다. 나아가 그는 후보도 ‘메이드업’(made up)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말만 적게 하고 자신의 전략을 잘 따르면 된다고 말이다.

당내에서 기라성 같은 ‘꼴통들’과 힘겨루기 할 때는 그의 생물학적 젊음과 기획력, 순발력은 큰 자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은 다른 판이다. 지금 이준석은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고 대리하는지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유권자를 ‘작업 대상’으로 본다. 특정 세대나 그룹의 불만을 자극하면 지지율 확산의 불쏘시개가 된다고 믿는다. 착각이다. 하물며 2030 청년은 정어리떼가 아니다. 이준석의 신호에 우우 몰려다니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보였다면 ‘우연과 필연이 만난’ 결과를 오판한 것이다. 사람들은 정권교체라는 큰 물결 위나 곁에서 저마다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판단하고 실천한다. 머리 굵어지면 부모 말 듣나? 안 듣는다. 그나마 착한 아이는 ‘듣는 척’ 정도 해준다. 부모라고 예외일까. 혹시라도 이준석 주변 청년들이 부모 설득에 성공했다고 믿는다면 아마도 그건, 자식 기 안 죽이려는 부모의 ‘그런 척’이거나 원래부터 그런 생각의 부모였을 것이다.

이준석은 두 번의 짜릿한 성공을 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앞세워 남성 청년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고, 당대표 선거에서 여론을 업고 승리했다. 사람들은 화석처럼 굳은 제1야당에 건강한 균열을 내고 생명의 씨앗을 뿌리길 원했다. 가장 조건이 맞고 준비된 이가 이준석이었다. ‘시대정신’이었다. 기획이나 홍보, 작업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게다가 윤석열은 오세훈이 아니다. 이준석도 아니다. 이준석이 자신의 ‘성공 경험’을 지나치게 확신하고 그것을 윤석열에게 이식하려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뽑으려는 건 잘 포장된 대선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후보가 윤석열이 아니었다면 이준석의 재주와 믿음이 이렇게까지 ‘엇박자스럽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석열이 이준석을 품은 게 아니라 가둔 건 아닐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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