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식에서 최근 연이어 터져나온 군 부실급식 문제와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최근 군내 부실급식 사례들과, 아직도 일부 남아 있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의 폐습’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한 뒤, 숨진 부사관의 분향소가 차려진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은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고 문 대통령은 동행한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철저한 조사뿐 아니라 이번을 계기로 병영문화가 달라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추념사와 조문의 말에서 주목할 부분은 ‘문화’와 ‘철저한’ 그리고 ‘조사’에 대한 의지다.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일선 행정 권력에 맡기지만 않겠다는 것을 천명했다. 바로 그 일선 행정 권력이 이번 사건에 책임져야 하는 구조이자 밝혀져야 할 구조의 고리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한다.
통치를 방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것은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고 조문하는 ‘상징 정치’와 다른 차원이다. 대통령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려는 일선 행정에 대해 “거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했다. 또한 이번 사건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개인의 불운’이 아니기에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그 책임의 한 축이 국가임을 언급함으로써 이번 사건을 구조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어떤 사건이 구조적이라는 말은 그 사건이 일회적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사고가 아닌 사건은 구조 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문화’라는 말 자체가 그 구조가 행위자들에게 내재화됐기 때문에 ‘반복’적이고 ‘만연’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담한 딸의 죽음 앞에서 유족은 군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걱정했다고 한다. 군이 바뀌지 않으면 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반복이 필연인 구조적인 사건임을 누구보다 유족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대통령 역시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
사건이 구조적이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사건 실체가 개별적인 가해와 피해, 피해와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사건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자와 피해를 입고 억울하게 숨진 사람,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발생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해와 피해, 피해와 죽음 사이에 다른 행위자들과 그들의 행위가 고리로 연결돼 전체 사건을 구성한다. 이 고리들이 작동해 ‘사건’을 일으키고 은폐하며 급기야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목소리를 냈을 때 왜 곧바로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는가? 왜 정의는 지연되고 억압됐는가? 왜 수사 과정에서 사건은 축소되고 은폐됐는가? 이 과정에 누가 어떻게 개입했는가? 누가 책임을 방기했는가? 이 고리들의 역할과 책임을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유족은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고 대통령은 그것을 약속했다.
연구가 아니라 ‘진실 너머’로 갈 때대통령이 약속한 ‘철저한 조사’를 다른 말로 ‘진상 규명’이라고 한다. 우리는 사회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 세월호 참사부터 얼마 전 있었던 평택항의 산업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이선호씨 사건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진상 규명을 요구해왔다. 역사적으로는 한국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이나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밝혀야 할 진실이 여전히 있다고 말한다.
진상 규명이 이처럼 끝도 없어 보이는 이유는 진상 규명에서 말하는 ‘진상’의 의미가 “어느 놈이 진짜 범인이냐?”를 찾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진상 규명은 탐정놀이가 아니다. 진상 규명은 감춰진 진짜 범인이 있다는 것을 넘어 구조나 조직 전체가 정의 실현이 아니라 사건 발생과 은폐/억압의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때문에 어떤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면 진상 규명에 필요해지는 것은 ‘수사’를 넘어서 ‘연구’가 된다.
사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사의 의미가 연구로 나아가기는커녕 수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뱅뱅 도는 사건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 진상 규명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당대의 진실과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담론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실’을 놓고 다투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건은 역사화되지 못하고 연구가 아니라 음모론의 늪에 빠지게 된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라는 저 유명한 미국 드라마 의 카피처럼 말이다.
이런 음모론은 얼핏 보면 감춰진 것을 들춰낸다는 점에서 구조를 다루는 것 같다. 흔히 구조는 현상 너머에 존재하기에 은폐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저 너머’를 강조하는 음모론은 사건을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숨겨진 권력의 (음모) 문제로만 본다. 시민이 접근하지 못하는 은폐된 실제 세력/권력이 있으며, 그 권력이 은밀하게 세계를 조작하고 사람들은 조작된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오히려 음모론은 지금 여기 구조를 은폐한다.
음모론의 주장과 달리 구조는 은폐된 것이 아니라 드러나 작동한다. 프랑스 68혁명의 구호를 빌린다면 구조는 살아 움직이며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은 저 너머에 있는 세력이 아니라 여기 있는 구조가 어떻게 연결돼 공모하며 작동했는지를 ‘철저히’ 따지는 일이다. 저 너머에 있는 ‘놈’을 잡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자’들이 어떻게 서로 엮여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면서 각각에게 책임을 물으며 그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그 분석에 기반해 작동할 때 통치는 권위와 신뢰, 정당성을 획득한다.
지난번 이 지면에서 ‘한강 사건’을 이야기하며 일선 행정 권력에 대해 한국 일반 시민은 극도로 불신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일선 행정 권력이 무엇이라고 말하면 일단 해결 의지를 불신하고 본다. 오히려 ‘저 너머’에 돈 가지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공모와 음모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 이 제도가 작동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저기 숨어서 조작하는 세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세력이 작든 크든 말이다.
이처럼 일선 권력에 대한 불신(의 경험)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음모론이 싹을 틔우고 번져가기가 매우 쉽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 너머’에 누군가 있고 그‘놈’ 때문에 내가 원하는 정의가 억압되고 실현되지 못한다고 말이다. 일선에서 권력의 공모로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일수록 음모론자의 말에 넘어가는 것은 그들의 경험에서는 대단히 ‘합리적’인 일이다. 통치는 음모론에 넘어가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적 ‘합리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그 비합리적 합리성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이 합리성에 주목할 때 보이는 것이 일선 행정의 작동 방식이다. 일선 행정은 ‘사건’ 자체를 싫어한다. 사실 ‘무플보다는 악플’이라는 말처럼 사건을 좋아하는 정치와 달리 일선 행정에 가장 좋은 일은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일선 행정이 순기능을 발휘하면 맡은 일을 촘촘하게 잘 관리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게 한다. 일선 행정, 즉 관료제의 핵심은 일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음’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관료제는 사건이 벌어지면 정반대의 두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하나는 재빠르게 개입해 사건을 잘 해결해 다시 아무 일도 없는 세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도 가능하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건 자체를 축소하고 은폐하면서 억압하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일선 행정에 대한 경험은 유감스럽게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없던 일’ ‘별것 아닌 일’로 치기 위해서는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와 그 피해를 회복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나서는 책임감 있는 일선 행정 담당자가 오히려 억압된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또 문제없이 작동한다면 행정조직 전체가 애초부터 사건을 별일 아닌 것으로 취급한다. 조직 자체가 사고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일선 행정 전체에서 사건에 대한 억압이 반복된다.
일선이 이렇게 구조화되면 시민은 통치를 절대적으로 불신하게 된다. 일선 행정 문제가 아니라 통치 문제로 받아들인다. 통치가 사람들 삶의 문제를 돌보지 않고 방치한다고 여기거나, 통치가 무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뜩이나 한국은 오랫동안 정치가 통치를 압도해 통치는 방기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통치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대신 음모론 정치가 판치게 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이 이런 몸살을 앓고 있다.
“사건이 있었다”는 선언은 좋은 시작이다. 그러나 통치는 선언을 넘어 사건이 실제로 해결되는 선례를 반드시 만드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일선 행정의 움직임을 다른 방향으로 구조화할 수 있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축소하고 은폐하거나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면피’가 아니라,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 만일 사건이 벌어지면 신속하게 개입해 조사하고 해결해 ‘아무 일도 없는 세계’로 신속히 복귀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대통령의 약속이 ‘철저히’ 지켜지도록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에 대한 대통령의 약속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일선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음모론의 덫에 빠지지 않고 진상이 밝혀지고 사건이 해결되는 좋은 선례 하나를 남기는 일이다. 이 선례를 통해 사람들은 제도를 통한 통치가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문제 해결 가능성을 믿게 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이번 ‘선언’으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고 이후 조사가 ‘수사’ 문턱을 넘어 군대 내 성폭력 방지를 넘어 성평등한 정의로운 군대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연구’로 넘어가는 선례가 돼야 한다. 정의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분과 유가족이 가장 바라는 일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통치란 무엇보다 시민이 그 사회의 ‘가능성’을 믿게 하는 행위 아닌가? 정치에 압도당한 통치를 재작동시켜야 한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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