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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외면해온 대가

등록 2021-01-01 11:04 수정 2021-01-17 01:01
2020년 12월29일 서울 동부구치소의 한 재소자가 구치소 내 상황을 알리는 문구를 쓴 종이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2020년 12월29일 서울 동부구치소의 한 재소자가 구치소 내 상황을 알리는 문구를 쓴 종이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의 여진은 계속된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검찰총장 탄핵론 때문이다. ‘대(對)검찰 강경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포지션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170석 완력으로 국회 의결을 강행해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수 있다는 우려에 꿈쩍하지 않는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나 특검으로 파면 사유를 찾아 헌재를 설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대로면 재보궐선거가 있는 2021년에도 정권과 윤석열 총장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 정직 2개월’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진 이후 인사권자로서 국민에게 사과했다. 갈등을 이대로 지속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김두관 의원 등의 행보는 대통령의 사과를 우스운 일로 만들어 레임덕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자중해야 한다.

여당 내 다수파는 검찰의 수사·기소 기능을 분리하는 ‘검찰 개혁 시즌2’로 방향을 틀었다. 윤석열 총장과의 힘겨루기로 퇴색된 검찰 개혁 명분을 제도 개혁으로 되살리겠다는 의도이다. 애초에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검찰 개혁의 중장기적 과제였다. 지금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주요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현실과 타협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검찰 개혁 시즌2’에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수순이다. 수의 선후를 바꾸면 묘수도 악수가 된다. 그런 점에서 “총장을 찍어내려다 안 되니 아예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란 냉소적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그나마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선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해 정권이 위기에 빠진 사례가 아니라, 힘이 없는 사람들의 피해를 근거로 들어야 한다. 같은 정파끼리만 이해하는 서사의 반복에 많은 사람이 지쳤다.

국민의 가장 큰 우려는 민생이다. 코로나19 시대의 민생은 곧 방역이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단일집단 최대 확진자가 나온 것은 정권의 무리수가 민생 피해로 이어진다는 서사의 근거가 되었다. “윤석열 찍어내기에 몰두하느라 법무부 초기 대응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대표적이다. 법무부의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의문을 거꾸로 돌려볼 필요는 있다. 윤석열 총장 징계 청구가 없었으면 상황이 달랐을까? 아닐 것이다.

구치소는 뚫리는 순간 집단감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애초에 잘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일일 평균 확진자가 1천 명을 넘는 국면에서 뚫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이전에도 과밀 상태였다. 확진자와 접촉자를 분리하고 격리할 조건이 되지 않는다. 죄지은 사람은 무조건 잡아넣고 좁은 공간에서 괴롭히는 게 교정·교화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이상은 세금 낭비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관념이 만든 비극이다.

요양병원은 비슷한 조건에서 또 다른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일부 요양병원의 어두운 면은 과거 <한겨레> 보도 등을 통해 잘 알려졌다. 사실상 공적 영역이 포기한 노인 문제를 감당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요양병원이 ‘현대판 고려장’에 가깝다는 자조도 나온다. 이런 점에서 요양병원과 구치소 집단감염 사례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단 안 보이는 데 처박아놓고 외면해온 대가를 코로나19로 치르는 것 같다. ‘책임자’를 찾아 비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제 ‘미봉책’으로는 모자란다는 교훈을 얻을 때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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