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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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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에 휩쓸리는 민주당

복귀한 윤석열 총장 “탄핵” 목소리… ‘팬덤 정치’ 우려
등록 2021-01-01 17:20 수정 2021-01-03 10:12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12월25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긴급회의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12월25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긴급회의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년 12월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돌아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월24일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하고 징계를 청구한 지 한 달 만이다. 법원의 ‘징계 2개월 집행정지’ 결정(12월24일)에 따른 결과이고, 앞서 ‘직무 배제 집행정지’ 결정(12월1일)도 있었다. 아직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본안소송)이 남아 있긴 하지만, 윤 총장의 임기(2021년 7월24일)를 고려하면 사실상 징계 취소다.
법원 결정이 나온 지 16시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차질 없이 검찰 개혁을 완수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윤 총장 복귀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검찰 개혁은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
애초에 ‘윤석열 징계=검찰 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법원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속하는 ‘검찰총장 진퇴’의 정당성까지 판단하도록 상황을 키운 것(‘정치의 사법화’)도 그들이다.
임기 1년 반 남은 문재인 정부가 악수에서 벗어나 검찰 개혁을 비롯한 개혁 과제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개혁을 추진하는 민주당에 대한 평가와 법원 결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정부·여당이 개혁 과제를 완수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_편집자
40%.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 평가하는 비율이 대선 득표율(41.1%)을 밑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2월 셋째주(15∼17일) 전국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34%에 그쳤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가 나타난다.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추월한 조사 결과도 있다. 8개월 전 21대 총선에서 180석의 공룡 여당이 된 민주당은 왜 이런 위기를 맞이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2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2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백척간두에 선 검찰 개혁

우선 민주당이 ‘지지자 정치’에만 매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이 아닌 민주당 지지자를 향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원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한 뒤 민주당에서 분출하는 ‘윤석열 탄핵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12월29일 열린 화상 의원총회에서 김두관·김경협·민형배·황운하·이학영 의원 등은 윤 총장 탄핵을 주장했다. 의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초선인 김남국·김용민·김승원·장경태 의원 등이 탄핵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의 거센 탄핵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주장이다. 김두관·김용민 의원 등은 그 다음날(12월30일)에도 윤석열 탄핵론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한 데 이어 지도부도 ‘제도 개혁’으로 검찰 개혁을 해나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강경파 의원들은 ‘180석’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윤 총장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의원은 법원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한하는 내용의 이른바 ‘윤석열 방지법’(행정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경파의 목소리만 부각되면 ‘팬덤 정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민주당에서 친문 강경파 그룹이 스피커 역할을 하다보니 민심을 냉정하게 읽지 못하고 악화된 민심을 오히려 자극하는 언행을 반복한다”고 짚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도 “(지지자 정치는) 진영논리와 파당주의로 흘러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여당답지 않게) 자기들의 주장만 세게 하는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21대 총선에서 획득한 180석의 의미를 민주당이 과도하게 해석해 국회 운영에서 일방주의나 독주에 빠졌다는 분석도 있다. 21대 총선은 민심과 국회 의석 분포 사이의 고질적인 불비례성을 해소하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된 선거였다. 그러나 거대 양당(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이 제도를 무력화해버렸다. 그 결과 21대 총선에선 민심과 의석 분포의 불비례성이 이전 총선보다 더욱 악화한 결과가 나왔다.

21대 총선 결과와 민주당의 오해

특히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33.4%의 정당득표율을 얻었지만(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아 시민당이 받은 정당득표율이 민주당의 정당득표율) 민주당과 시민당은 그보다 훨씬 높은 60%(300석 중 180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박명림 교수는 “21대 총선은 최악의 불비례 선거였다. 민주당이 이 선거 결과를 과도하게 해석해 국회 운영이나 개혁에서 일방주의로 나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을 향한 표심 자체도 잘 가려서 읽어야 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민주당 강경파들은 21대 총선에서 획득한 180석의 의미가 개혁하라는 민심의 명령이라며 독주하려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성하지 않은 탓에 (반사이익으로) 많은 의석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일방주의로 나가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김남국(왼쪽부터), 신동근, 김종민, 김용민 의원이 2020년 12월25일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긴급회의를 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 이낙연 대표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김남국(왼쪽부터), 신동근, 김종민, 김용민 의원이 2020년 12월25일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긴급회의를 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 이낙연 대표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 사법화’는 민주당의 자승자박

‘정치의 사법화’ 문제도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우리 사회에서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폐해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직접선거로 선출돼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대통령과 입법부가 추진하는 핵심 국정과제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에 최종결정권을 쥐여주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윤 총장 징계 문제도 그렇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정치의 사법화는 결국 정치권이 자승자박하는 것이다. 입법부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인 만큼 극단적인 싸움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개혁 세력이 맞느냐는 의구심도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미적거리고, 재벌 개혁 법안에 해당하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은 후퇴시킨 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민주당이 개혁이나 진보적 가치에 대해 진짜 의지가 있었다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1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이란 게 ‘가짜 의지’로 비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안에선 억울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윤 총장 징계 무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징역 4년 선고 등 검찰 개혁을 어렵게 하는 법원의 판단과 검찰 수사 등에 ‘법조-보수언론-보수정당’이라는 보수기득권 연합이 작용했을 거란 생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대통령, 국회, 지방정부·지방의회 3대 선출권력을 모두 장악한 세력답지 않은 인식이란 비판이 나온다.

박성민 대표는 “거대 여당이자 최근 3대 선거에서 모두 이긴 집권여당에 걸맞지 않은 비주류 의식 또는 피해의식을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박명림 교수도 “그런 과도한 인식을 하기보다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찰 개혁, 비정규직 문제 해결, 재벌 개혁, 선거제도 개혁 등 우리 사회에 개혁 과제가 많은 만큼 민주당이 소명의식을 갖고 임해주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지지층 비판 두려워하지 말아야

남은 임기 중 개혁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느냐의 핵심은 ‘일방적인 개혁’에서 ‘합의 수준을 높이는 개혁’으로의 궤도 수정이다. “민주주의에서 개혁이라는 건 그 개혁의 성과를 모든 국민이 향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야당과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드는 개혁을 해야 한다.”(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정부·여당은 지지층에게 비판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또 힘으로 밀어붙이며 ‘협치’를 ‘협조’로 보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오만과 독선의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꺾어지는 모습을 보일 때 악화된 민심을 달랠 수 있다.”(유창선 평론가)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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