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민 최고위원(사진)이 당대표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뻔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으니 정치적 체급을 키우는 게 시급했을 거다. 사건의 특성상 여성 후보를 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니 남성인 박주민 의원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아닌가 했다. 한참 검언유착을 말하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갑자기 부동산 장관이 된 듯 행동하는 것도 이런 정치 일정과 무관치 않을 거다. ‘금부분리’(금융과 부동산의 분리)를 하겠다는 서울시장 후보 탄생을 경계하는 이가 박주민 최고위원을 설득한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했다. 주택담보대출 없이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실수요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출마선언문을 읽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현장으로 가겠다거나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열겠다는 게 새로운 얘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말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게 요즘의 여당이다.
이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피플파워’란 말을 쓴 일도 있다. 정권 초기엔 제법 기분이라도 냈는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 이후 개혁은 없어졌다. 그나마 밀어붙인 선거제도 개혁은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됐고 ‘검찰개혁’은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만 관심사다.
이 상황이 고약한 건 개혁은 핑계였고 결국 유불리가 본질이란 인식의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휴지 조각이 된 선거법 개정도, 천하의 역적(?)이 된 ‘우리 윤 총장’도, 유리할 때는 삼키고 불리할 때는 뱉는 감탄고토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재보선 원인 제공 정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은 그냥 없는 걸로 치는 분위기가 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최근 여당의 행보는 최소한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이전 같은 엄청난 일을 부동산 대책 말하듯 했는데, 정말 추진할 의지가 있어서 꺼낸 얘긴지 아니면 다른 부수적 효과를 노린 것인지 헷갈린다. 의지가 있다면 지방 소외가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현실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행정수도 이전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정치판에 진심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애도와 기자에게 폭언을 하는 이해찬 대표의 목소리엔 분명 진심이 있었다.
잘해보려다 안 된 것과 애초부터 할 마음이 없었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개혁이란 명분이 결국 특정 정파의 이익을 보장하는 핑계에 불과했다는 게 사실이 되면 국민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각자도생만 남는다. 이렇게 ‘피플파워’를 냉소하게 되는 와중에 치르는 전당대회의 가장 큰 의제가 또다시 대권을 둘러싼 ‘차기’들의 득실 문제라면 우리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환경·젠더·노동·안전·연대·공정의 가치를 주류로 강화하겠다는 박주민 최고위원의, 사실은 별 대단한 것도 아닌 주장이 갑자기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아가는 판을 볼 때 성적은 좋을 것 같지 않지만 전당대회가 박주민 최고위원 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 개인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용만 할 게 아니라 대의를 근거로 움직이고 설득하는 정치의 효용을 보여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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