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은 강했다. 이름도 앙증맞은 ‘작은소참진드기’는 알고 보니 살인병기였다. 이 진드기를 통해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받던 제주의 한 환자가 결국 지난 5월16일 숨졌다. 4명의 감염 의심 환자가 더 있단다. 살인진드기 바이러스에는 예방백신도, 해독제도 없다. 괜스레 의복과 방충망 등에 살포하는 약품 같은 진드기 기피제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젠 나의 살던 고향에 가려고 해도 기피제를 바르고 가야 하나.
그놈에 대한 기억은 질겼다. 몇 년 전 그놈은 함께 술을 마시던 나의 엉덩이를 두 차례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일로 얽힌 사이였다. 역시 이런 부류는 동행이 잠깐 자리를 뜬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고 싶다’ ‘나는 변태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의도는 분명했다. 뿌리쳤고, 억울했고, 눈물이 났다. 다음날 그놈의 직속 상관에게 항의했다. 반응도 비슷했다. ‘친밀감의 표시였다’ ‘별 뜻은 없었다’. 결국 무릎 꿇리고 사과는 받아냈지만 기억은 진드기 같다. ‘성폭행해서 그 사람을 목 졸라 죽여야’만 죄는 아니다.
그놈에 대한 기억은 점점 왜곡돼간다. 종합편성채널들은 그놈과 한통속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그놈의 시도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맞선 시민들의 항거는 북한이 사주한 무장폭동으로 폄훼됐다. 채널A는 지난 5월15일 시사 프로그램 을 통해 5·18 당시 “광주 폭동 때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장, 부조장들은 (북으로 돌아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는 탈북 인사의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냈다. 이틀 전 TV조선의 에 출현한 한 북한 특수부대 장교 출신도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라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다”라고 주장했다. 일방의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었다. 그놈들은 생존 본능만 있고 도덕은 없는 진드기다.
정부도 늘 그놈 편이다.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식에서 을 참석자 모두가 부르는 제창을 허용하지 않았다. 죽어간 시민들의 뜻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 한 자락도 듣기에 거슬린 모양이다. 그러나 대신 노래를 부르게 된 광주시립합창단도 합창을 거부하기로 했다. 분노한 일부 5·18 관련 단체, 광주 시민단체, 광주시의원들은 정부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별도의 추모제를 열었다. 광주는 여전히 질기게 그놈과 싸우고 있다.
결국 그놈이 해냈다. 역시 끝까지 발뺌하고, 버티면 이긴다. 오는 10월이 지나면 1672억원의 추징금은 합법적으로 그놈의 것이 된다. 지방세 3107만원을 3년째 내지 않아 최근 서울시로부터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 공개 예정 통보를 받았지만, 이 역시 가볍게 무시할 터다. 그러면서 올해도, 내년에도 연간 7억원 이상 비용이 들어가는 경호는 따박따박 받겠지. 어디 이 인간 진드기들을 퇴치하는 기피제는 없나? 있다면, 내 전 재산 ‘29만원’을 아낌없이 올인할 텐데.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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