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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아

부글부글
등록 2013-04-25 17:25 수정 2020-05-03 04:27
MBC 제공

MBC 제공

박근혜 정부 출범 두 달이 됐어요. 60원은 아까우니 두 달 기념 중간 평가로 갈음할게요. 5대 국정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뛰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국정목표1: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목표1답게 나무랄 데가 없어요. 지난 두 달 동안 하루 13번씩 780번은 들은 거 같아요. 길거리에서 누가 ‘창조’라고 외치면 나도 모르게 ‘경제’라고 호응할 것만 같아요. 드디어 국정철학을 공유하게 됐어요. 아리송했던 뜻도 이젠 이해하고 있어요. 김창경 한양대 교수가 큰 도움이 됐어요.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같이 끓인 ‘짜파구리’가 창조경제의 좋은 예”라고 정의해줬어요. 짜파구리를 처음 끓인 방송인 김성주가 창조경제의 씨앗을 심었다면, 이를 ‘먹방’으로 승화시켜 농심의 공장을 바쁘게 돌아가게 한 8살 윤후가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완성한 거예요. 이렇게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만 빼고 우리 모두 창조경제를 이해하게 됐어요.

‘국정목표2 맞춤형 고용 복지’. 여기선 ‘맞춤형’이 핵심이에요.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엄마에게 꼭 맞춘 ‘엄마가산점제’ 법안을 발의했어요. 여성이 엄마가 됐다가 재취업할 때 기업이 가산점을 주게 하는 제도래요. 아이를 못 낳는 남자들과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는 여성들이 들고일어났지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설마 다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데 재취업 엄마만 가산점 주고 끝내기야 하겠어요. 싱글여성가산점제, 난임·불임여성가산점제, 군대안갔다온남자가산점제, 군대갔다온남자가산점제, 청년가산점제, 노인가산점제 등 맞춤형 가산점제도가 나올 테니 우리 조금만 기다려보도록 해요. 참, 기자가산점제도 빼놓지 마세요.

‘국정목표3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에서도 새누리당의 활약이 두드러져요. 손인춘 의원은 지난 4월18일 국회사무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SBS 드라마 에 대해 “드라마에는 국회의원을 ‘쓰레기’ ‘세균 덩어리’로 표현하고, 여야 의원들이 룸살롱에서 술에 취해 시시덕거리며 국가 현안을 논하는 모습이 나온다”며 시정을 요구했어요. 픽션과 드라마를 헷갈리는 건지, 괜히 찔려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품격 있고 수준 높은 문화 콘텐츠를 보게 하려는 손 의원의 열의에는 박수를 보내요. 그런데 “의원, 보좌관 등이 주말과 밤낮없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느냐”고 했는데, 밤 10시에 하는 드라마는 어떻게 꼬박꼬박 챙겨봤는지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설명 부탁드려요.

‘국정목표4 안전과 통합의 사회’. 가정폭력·성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등 ‘4대악’도 빠른 속도로 척결되고 있어요. 이성한 신임 경찰청장이 “4대악 척결에 성과가 없으면 책임을 묻겠다”며 경찰들을 다그친 덕분이에요. 그중에서도 경찰들은 새로운 업무로 추가된 불량식품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학교 앞 문방구 주변에서 잠복근무·탐문수사·과학수사를 총동원하고 있대요.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많이 먹고 자라면 불량어른이 돼 사회 안전과 통합을 해칠 수도 있으니깐요. 그러고 보니 지금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저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어릴 적 쫄쫄이·달고나·쫀드기·오다리를 입에 달고 산 결과인가봐요. 청장님, 저 먼저 잡아가세요.

‘국정목표5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 구축’은 평가하지 않을래요. 애초부터 진심 아닌 거 알아요. 전쟁만 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젠 밤에 양말 벗고 편하게 자고 싶어요. 5대 국정목표에 대해 총평하자면,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다시는 중간 평가 따위 안 할 테니, 님도 국정목표 따위는 잊어주세요. 제발.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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