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010년 키워드]
**키워드 목록
① 상업주의
②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③ 소설 인터넷 연재
④ 도서정가제
⑤ 무비·스타 킬즈 북
⑥ 청소년 도서 시장의 발견
⑦ 1천만 부 어린이 책
⑧ 위험한 인문학 시장
⑨ 블로그적 글쓰기
⑩ 사라지는 20대
백원근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지난 10년간 한국 출판산업이 외형적으로나마 급속한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과당경쟁 구조가 정착되면서 과도한 상업주의에 빠졌고, 시장규모도 제자리걸음을 탈피하지 못한 채 매출 지상주의에 빠져 미래 비전을 상실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첫 10년간의 한국 출판 결산 성적이다.
2000년 이래 10년간(여기서는 편의상 2009년 통계에서 추산함)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국민소득은 2배 가까이 증가하고, 출판사 수도 1만6천 개에서 3만6천 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그나마 공신력 있다는 정부 쪽 출판시장 통계(문화산업 통계)를 보면, 2003년 3조3천억원의 시장규모가 2008년 3조6천억원 수준에 머무르며 시장 성장력의 한계가 뚜렷하게 대두됐다. 신간 발행 종수도 2000년의 3만5천 종에서 4만 종으로 거의 멈춰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의 발행 종수 성장률이다. 신간 3권 중 1권은 번역서로, 단행본 시장점유율의 절반은 번역서라는 공식에도 큰 변화가 없어 심각한 콘텐츠 생산력 부진을 증명했다.
출판사의 수도권 집중화, 무실적 출판사 증가율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10년 전 14% 정도이던 출판사의 주식회사 비율은 올해 20%로 소소한 성장에 그친 반면, 개인 회사는 아직도 72%나 된다. 일본은 개인 회사 5%, 주식회사가 65%인 점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종업원 수 5명 이하의 출판사가 66%나 되는 것이 우리 출판계 현주소다. 1인 출판사의 증가가 출판의 자유를 대변하는 것처럼 곡해될 수 있지만, 실상 산업적 기여도에는 의문부호가 찍힌다. 한마디로 한국 출판산업의 기업화 수준은 10년 전보다 나아진 게 거의 없고, 여전히 영세업체들의 경연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럼 출판의 ‘산업’적 실패는 인정한다 치더라도 ‘출판문화’는 지난 10년간 건재했을까? 산업적 실패보다 오히려 심각한 것이 출판문화의 극심한 추락이었다. 출판철학의 실종과 시장의 혼탁한 무질서만이 난무했다. 번역판 자기계발서인 (2005)로 대표되는 ‘대리 번역’ ‘이중 번역’ 논란과 희한한 ‘번역자 사인회’까지 여는 스타마케팅 의존 현상, 법적인 처벌 조항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고착화된 온·오프라인 사재기 문제, 베스트셀러 목록에 목을 매는 현상, 인터넷상의 서평 조작, 학습참고서 출판사들의 해묵은 채택 로비 적발에 이르기까지 버라이어티하다.
매출 지상주의의 문제점은 2005년을 전후해 급속히 확산된 ‘한국형 임프린트 시스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서양과 달리 한국에서는 자본력이 있는 곳에서 유능한 편집자 등을 억대의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해 별도의 브랜드 출판사를 산하에 수십 개씩 수직 계열화하는 형태로 변질됐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홈쇼핑 등에서의 파격적인 할인 판매가 2000년 들어 활성화되면서, 다른 유통 경로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한국형 상업주의 출판유통의 전형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서점 구매자에게만 경품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오프라인 서점을 무시한 출판사들의 해괴한 도서 마케팅, 끊임없는 인기 도서 모방 출판, 외국 작가에 대한 과도한 선인세 계약 경쟁, 민간 출판사처럼 수익성 중시 성향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대학출판부 등의 사례도 지나친 출판 상업주의의 폐단으로 지적된다.
<hr>문학 ‘상품’이 거래되는 조건을 만나다2001~2010년 키워드 ②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장편소설 뜨고 작품 낭독회 부활해
허윤진 문학평론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한 것은 한국 문학 출판의 지형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이전에 한국 문학 출판에서 중심이 된 장르는 단편소설이었다. 한국에서 단편소설이 주도적인 장르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개인-개인, 개인-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동적인 드라마보다는 개인과 세계가 합일된 서정적 상태를 선호하는 문화적 심성이 장르의 형성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서양 문학계에서 시가 지닌 문화적 힘이 상당히 약화된 것과 달리, 한국 문학계에서는 시가 문학 비평 담론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의 서정적 경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제도적 측면으로 보자면 근대 이후의 신춘문예 제도가 문학인을 배출하는 주요한 통로였고, 신춘문예의 소설 부문이 단편 중심이며 등단한 소설가가 작품을 게재할 수 있는 지면도 단편소설 위주라는 점 등도 장르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근대 이후로 서양의 문학 출판에서 중심이 되는 장르는 장편소설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서점을 몇 군데만 들러 문학 서가를 훑어보아도 장편소설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독자의 접근이 용이함을 알 수 있다. 서양 문학계에 여전히 뛰어난 단편소설이 발표되고 소설집도 출간되고는 있지만, 출판‘시장’의 측면에서 볼 때 단편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출판시장에서 소설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거래될 때, 상품이 ‘수출’되기 위해서는 모종의 국제 표준에 부합돼야 할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계기로 한국의 문학 출판계가 서양의 동종 업계와 활발한 ‘무역’을 하고자 했을 때, 서양의 편집자들은 단편소설 위주의 작품 목록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가들 역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국제 무대에 등장하려 했을 때, 장편소설이 없는 경우 소설가로 규정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언어라는 장벽이 자연스럽게 형성해주었던 일종의 내수시장이, ‘도서전’이라는 국제 출판 무역의 계기를 통해 해외 시장과 부딪치게 된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 출판계의 자기변모와 자기혁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후 문학잡지들에서 장편소설 연재 지면이 대폭 확대되고 출간 종수도 증가했으며, 문학 비평의 담론과 소비자의 취향 역시 장편소설 중심으로 재편된 것은 주목할 만한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소설과 근대 초기 소설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향유하던 현상이 사라졌다가, 최근 낭독회 형태로 부활한 것 역시 서양 문화권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작품 낭독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자국어 중심, 자국 문화 중심의 한국 출판계가 언어의 국경을 넘어 외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장편소설 중심으로 출판시장이 재편되는 현상이 노벨문학상으로 대표되는 서양 문화계의 ‘인정’을 열망한 결과는 아닌지, 문화의 허상적 보편성을 추수하는 대신 문화의 국지성과 특수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건강한 태도는 아닌지 앞으로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정신적 가치 구현과 결부된 문학작품을 휴대전화나 컴퓨터와 같은 ‘차가운’ 전자제품과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해 그것을 소비 가능한 재화로서 거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hr>그놈, 인터넷 연재는 멋있었다2001~2010년 키워드 ③ 인터넷 소설 연재 정착… 침체된 문학시장에 활기 불어넣었지만 어수선한 혼란도
박진 문학평론가
지난 10년간 문학계의 변화를 대표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뭐니뭐니 해도 인터넷 연재 방식의 출현과 정착일 것이다. 장편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소설 창작과 독서 환경뿐 아니라 출판 시스템과 문학 시장을 뒤바꿔놓은 획기적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인터넷 연재소설이 처음 눈길을 끈 것은 귀여니의 가 화제를 모았던 2003년 무렵이다. 이 시기에는 문단 제도 바깥에서 이뤄진 인터넷 소설 쓰기의 파격성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문학성이 뒷받침되지 못한 탓에 폭넓은 독차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일시적 현상으로 지나쳐갔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는 이미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대형 작가들의 장편소설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연재되면서, 바야흐로 인터넷 연재소설의 시대를 열게 된다.
네이버에 연재됐던 박범신의 (2008)와 황석영의 (2008)이 독자의 뜨거운 호응을 얻게 되자, 인터넷 연재는 곧바로 출판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2009년에는 온라인 서점과 문학 출판사들이 주축이 되어 웹진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앞다퉈 장편소설을 연재하면서,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과열 현상을 빚기도 했다. 인터넷 연재 방식은 장편소설의 창작부터 출판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출간 이전부터 독자의 관심을 끄는 사전광고 효과를 낸다. 장편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작가와 독자의 새로운 소통의 장이 되기에 앞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고, 원하는 작가와 출판 계약을 맺거나 전자책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띠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터넷 연재소설의 인기가 침체됐던 문학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분명하다. 2009년에는 공지영의 , 박민규의 , 백영옥의 , 김훈의 , 정이현의 등 인터넷에 연재됐던 장편소설들이 독자의 큰 사랑을 받았고, 2010년에도 박범신의 , 신경숙의 , 황석영의 , 은희경의 등이 이런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인터넷 연재 방식은 수상쩍은 과열 상태와 어수선한 혼란기를 거쳐 새로운 출판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보인다. 이와 더불어 2000년대 후반의 문학 시장은 장편소설 중심으로 눈에 띄게 재편됐다. 더 가독성 있는 문체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 장편소설들은 문학을 외면했던 다양한 독자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거액의 상금을 건 장편문학상들이 생겨나고 장편소설의 성공 여부를 기준으로 작가의 문학적 역량을 평가하는 등 문단 제도와 비평 담론 역시 시장의 움직임에 맞춰 변화해왔다. 이런 변화가 문학에 대한 자본의 점령인지, 이 시대 독서 문화와 독자들의 감수성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인지는 더 촘촘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hr>영세 출판사·서점, 몰락하다2001~2010년 키워드 ④ 도서정가제 파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파괴’법 되다
백원근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2002년 7월 말 ‘출판 및 인쇄 진흥법’이 제정돼 2003년 2월 말부터 시행됐다. 기존의 행정절차법에 가깝던 ‘출판사 및 인쇄소 등록에 관한 법률’을 전면 개정해 출판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출판산업의 종합적인 육성을 꾀한 점이 특징이었다. ‘규제’에서 ‘진흥’으로의 방향 전환이었다. 이에 따라 등록제이던 출판사 설립이 신고제로 규제가 완화됐고, 도서정가제 규정이 신설됐으며, 이른바 ‘사재기 행위’(출판사 등이 자사 발행 도서를 사들여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행위) 금지 규정도 만들어졌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이 도서정가제 관련 규정이었다. 기존의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사업자 간 협약에서는 도서의 정가 판매를 위반해도 처벌 근거가 없었으며, 인터넷 서점의 할인판매 공세가 거세지면서 오프라인 서점의 공멸이 우려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법에서는 발행일로부터 1년 미만인 신간의 경우에도 인터넷 판매시 10% 할인을 허용하고, 도서정가제 조항을 5년간 한시법(일몰제 방식)으로 도입하는 등 제도적 모순과 불완전성을 드러냈다. 이처럼 인터넷 판매에만 할인판매를 허용하는 등 역차별적인 독소조항으로 다수의 중소 서점이 문을 닫았다.
이어 2007년에 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도서정가제의 적용 범위가 도서 발행 뒤 12개월에서 18개월로 확대되고, 온라인 판매에만 적용되던 최저 10%의 할인율이 오프라인서점 판매에서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경품고시에 따라 판매 가격에 10% 마일리지 추가 적용이 가능하고(정가 대비 총액 19% 할인), 발행 뒤 18개월이 지난 도서와 실용서 및 초등학생 학습참고서는 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개악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책의 ‘가격’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2010년 7월부터는 기존에 폐지된 경품고시 조항을 옮긴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규칙이 출판·서점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행됐다. 출판·서점 단체들은 신간도서의 할인율을 최대 19%까지 허용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규칙이 모법의 10% 할인 제한 규정을 어겼고 헌법이 보장한 각종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9월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년 동안 출판시장은 ‘무늬만 도서정가제’로 인해 서점 수가 절반 이하로 줄고(현재 2천 개 미만), 할인판매로 급성장한 인터넷 서점의 매출액은 총액 1조원을 돌파하며 출판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공룡이 되었다. 현재 구간 도서의 경우 70% 할인까지 하는 등 도서정가제가 없는 국가보다 오히려 출판시장의 혼탁이 심해졌고, 거품 가격과 극심한 할인 경쟁으로 일부 인터넷 서점만 성장하며 대부분의 오프라인 서점들은 폐업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중소 서점만이 아니라 대형 서점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심지어 인터넷 서점들조차 버티기 어려울 만큼 심각해진 할인 경쟁으로 전국 대부분의 서점이 초토화되고 있다.
시장경쟁 논리에만 함몰된 흠결투성이의 도서정가제 운용으로 인해, 출판 생태계의 파괴는 물론이고 출판산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영세 출판사·서점의 시장 퇴출이 강제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현재와 미래의 독자, 즉 국민이다.
<hr>영상과 스타가 만들고 키우다2001~1010년 키워드 ⑤ 무비·스타에 포섭된 책…
2002년 선정 도서 밀리언셀러로, 연예인 책·영화 원작 등 베스트셀러로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지난 10년간 탄생한 베스트셀러는 이전 시기와 비교해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블록버스터 소설, 대형 학습만화, 자기계발서, 영어학습서 등은 과거에는 존재가 미약했으나 이제는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했다. 또 하나 영상과의 결합도 빼놓을 수 없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 영상매체가 베스트셀러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급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0년 하반기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철지난 시집과 동화가 한꺼번에 순위에 올랐다. 등 10여 권의 책이 주인공이다. 모두 드라마 에서 주인공 현빈이 읽었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동안 드라마 속에 등장한 책이 바람몰이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2005년 방영된 드라마 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 와 도 그랬다. 책 또한 자동차나 휴대전화처럼 간접광고(PPL) 상품이 되겠구나 싶었지만, 2010년 현재 가능성은 절반 이하다. 일상용품이 아니라(그렇다, 책은 일상용품이 아니다!) 책의 등장은 필연적 개연성이 필요하다. 또 영세한 출판 환경 때문에 실제 광고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2002년과 2003년 사이에는 텔레비전이 작정하고 책을 소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문화방송 선정도서가 베스트셀러를 휩쓸었다. 등은 모두 ‘느낌표’ 브랜드를 달고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외에도 한국방송 <tv>에서 주제도서로 삼은 책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원작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드라마 이 인기를 얻자 원작인 이 100만 부 넘게 판매됐다. 또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대규모 원작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 시리즈, 시리즈 등은 영화 덕분에 원작도 주목받았다. 순문학 계열의 소설인 나 의 때아닌 인기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반대로 책이 방송 프로그램을 원천 콘텐츠로 삼는 경우도 생겨났다. 동명의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들어 밀리언셀러가 된 나 <tv>을 비롯해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다큐멘터리 혹은 교육 관련 프로그램이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지만 동영상의 특성상 내용은 새롭게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콘셉트와 프로그램의 인기를 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흔히 ‘연예인 책’으로 불리는 스타의 책이 있다. 2009년 출간된 빅뱅의 와 이혜영의 등이 과거의 고백류 에세이와 차별을 두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이어트, 피부미용, 스타일 등 실용적 관심을 반영한 책과 스타의 이미지를 살려낸 연예인 책은 출판의 한 장르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때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등장하지 않고서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는 걸까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나 비디오가 등장했다고 영화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책이 영상을 새로운 출구 전략으로 삼는 법을 연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hr>청소년 눈높이에 맞추다
2001~2010년 키워드 ⑥ 청소년 도서 시장의 발굴… 독자층이 연령대별로 세분화돼, 세계문학전집도 새로 출간
박진 문학평론가
‘청소년문학’이라는 말은 2000년대 중·후반에 처음 등장해, 지금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출판계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전의 ‘청소년 권장도서’가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하향식’ 관점을 표방한다면, 청소년문학은 청소년 자신의 문제와 감수성을 충실히 대변하려는 변화된 관점을 바탕으로 한다. 청소년을 교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에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지향한다는 청소년문학의 기본 관점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문학의 등장과 급속한 성장 역시 실제로는 출판시장의 요구와 분리될 수 없다.
청소년문학이라는 다소 낯선 영역이 출현한 2005년 무렵은 아동문학 시장이 안정적으로 확장되면서 독자층이 연령대별로 세분화되는 시기였다.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과 초등학교 논술시장의 확대로, 당시 아동문학은 문학시장 전반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큰 매출을 기록했다. 출판사들은 이 흐름을 타고 아동문학 시장을 청소년층에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로서, 청소년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기획하고 만들어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로 생겨난 청소년문학상들은 청소년문학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큰 몫을 했다. 창비 청소년문학상, 블루픽션 청소년문학상(비룡소) 등 다양한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은 다소 모호한 청소년문학의 개념과 이미지를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더불어 창비·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 등 대형 문학 출판사에서 저마다 청소년문학 시리즈를 기획했고, 청소년용 고전을 집중적으로 번역·소개하기 시작했다. 사계절 1318문고, 시공 청소년문학, 비룡소 블루픽션, 푸른숲주니어의 마음이 자라는 나무, 푸른책들의 푸른도서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등 현재 출간되는 청소년문학 시리즈는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움직임은 문학전집 출판 붐으로도 이어졌다. 1960~7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가 80년대 들어 단행본 시대가 열리면서 눈에 띄게 위축됐던 전집 출판은 2000년대 후반에 와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2005년 홈쇼핑을 통해 대량 판매된 것을 신호탄으로 을유문화사, 펭귄클래식,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 시공사, 푸른숲 등이 한꺼번에 세계문학전집 출판에 뛰어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 무렵에 형성된 청소년도서 시장이 문학전집 시장과 맞물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기에도 불편하고 문장도 어색했던 세계문학전집이 동시대 감각에 맞게 새로 출간되고, 입시 때문이든 교양을 위해서든 청소년들이 세계문학전집의 독자로 재부상하는 상황은 기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느라 기획과 번역 단계의 허술함이 노출되고, 서로 다른 전집들 간의 차별성이 흐려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청소년도서에 대한 출판계의 집중 투자가 청소년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들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기울이며 청소년 독서문화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아직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hr>부모님의 열망 “만화 보면서 공부해라”
2001~2010년 키워드 ⑦ 1천만 부 어린이 책…
글 위주의 책과 병행하는 관심이 필요해
강은슬 아동문학평론가
우리나라 어린이 책 시장은 1980년대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단행본 출판에 참여하고 양서를 요구하는 고학력 학부모가 증가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해외 그림책 번역에 관심이 높아졌고, 후반부터는 급격히 팽창했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에도 이어져 의미 있는 국내 창작동화와 창작그림책의 출판이 느는가 하면 학습만화의 판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 그림책이 국제 무대에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최우수상 후보에 한국 출신 일러스트레이터가 언급되면서부터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매년 도서전에 참가하고 있으며, 2004년 웅진닷컴의 전래동화전집 중 한 권인 가 국내 최초로 볼로냐 라가치 픽션 부문의 명예상을 받은 이래 올해 (웅진주니어 펴냄)에 이르기까지 여러 책이 명예상을 받았고, 매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그림작가가 뽑히기도 한다. 2009년에는 주빈국으로 행사를 치렀다.
이제 우리나라는 해외 어린이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솔수북 펴냄) 같은 단행본에서부터 ‘WHY 시리즈’(예림당 펴냄)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는 그림책과 교육도서를 중심으로 저작권을 수출하고 있다.
어린이 책만큼 ‘재미’와 ‘교육성’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고민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푹 빠져 읽는 중에 인생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문학책과 읽다 보면 지식과 정보도 얻을 수 있는 비문학책이야말로 누구나 만들고 싶고 읽고 싶은 어린이 책이다. 결코 쉽지 않은 재미와 교육성 사이의 합의점을 독자들은 종종 학습만화에서 찾는다.
2000년대에 나오기 시작한 시리즈인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 ‘~에서 살아남기’(아이세움), ‘마법 천자문’(아울북), ‘WHY’(예림당) 등이 1천만 부 이상의 놀라운 판매량을 보였다. 그러나 만화는 항상 사랑받는 매체였고, 학습만화가 2000년대에 새롭게 등장하지도 않았다. 이미 1970년대부터 학습만화는 있었고 전집류 출판사들은 한국사·세계사 같은 분야의 학습만화를 만들었다. 이원복의 초판이 나온 것도 1981년이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학습만화의 판매가 두드러진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 책의 실구매자인 부모들은 독서의 목적을 인격 함양이라는 순수한 차원보다 학습과 대학 입시의 기초 세우기에 더 치중한다. 게다가 앞의 만화들은 사전 기획에 의해 필요한 주제를 모두 다루는 시리즈인데, 낱권으로 판매하니 전집류와는 달리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구입할 수 있다. 만화의 서사 구조도 다채로워졌다. 체계적으로 정보를 나열하는 기존 방식을 따르는 것도 있지만 ‘살아남기’나 ‘내일은 실험왕’처럼 교육적 의도를 이루면서도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만화는 이제 도서관에서도 수집한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만화에 빠져 다음 독서 단계로 나아가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만화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양이 적고 빨리 읽히도록 구성돼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캐릭터나 이야기에 매몰돼 정작 지식은 제대로 읽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글 위주의 책과 병행해서 읽도록 어른의 관심이 필요하겠다.
<hr>인문교양서에 희망은 없다
2001~2010년 키워드 ⑧ 위험한 인문학 시장… 일부 ‘잘 팔리는 책’이 위기를 은폐해
변정수 출판평론가
지난 10년간 인문교양서 범주에 속하는 도서의 시장은 지속적으로 축소 일로를 걸어왔다. 적어도 현장에서 체감되는 분위기는 매년 심각하게 악화돼왔다. 물론 해마다 ‘인문서 시장의 건재’를 유감없이 과시한 책들이 쉽게 눈에 띄긴 하지만, 다른 분야와는 사뭇 다른 인문교양서의 본질을 되짚어 곱씹어보자. 과연 특정한 책의 괄목할 매출과 일부 ‘잘나가는 책’들의 시장 독점의 결과 도출된 시장의 계량적인 규모만을 근거로 인문서 시장의 건재나 심지어 확대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령 2010년을 강타한 (마이클 샌델 지음, 김영사 펴냄)에 쏟아진 숱한 상찬들을 음미해보자. ‘정의’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정치·사회적 배경을 들먹이는 낯설지 않은 분석들은 견강부회로 보인다. 이 주제를 다룬 책으로 이 책이 유일하지도 않고 ‘정의’의 문제를 다룬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이 가장 뛰어나다고 볼 근거도 그다지 없다. 설령 이 책이 다른 책들을 압도할 만큼 빼어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렇다면 더더욱 이 책은 같은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다룬 책들이나 주제의 외연을 확대한 인접한 주제의 책들로 독자의 시선을 이끌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적어도 인문교양서로서 ‘좋은 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일 이 책의 성공에 관한 분석이 옳다면, 이 주제를 다룬 동서고금의 수많은 저작이 조금이라도 매출이 상승한 자취가 발견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움직임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시장에서 성공하는 인문교양서가 출현할 때마다 어김없이 뒤따랐던 주목들에서는 이와 유사한 혐의를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흔히 고전에 대한 관심을 새삼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되곤 하는 (고미숙 지음, 그린비 펴냄)의 경우, 2003년 출간 무렵 한두 해만 보면 그럴듯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책의 꾸준한 판매만큼 고전에 대한 ‘반짝 관심’이 지속되지는 못했다. 또는 2007년 출간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에코의서재 펴냄)이 독자로 하여금 이 책에서 접한 ‘천재들의 발상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의 저작을 읽도록 만들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는 인문교양서 시장이 건재하기(또는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이 표출된 것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본의든 아니든 날로 황폐해져가는 시장의 실체를 매우 효과적으로 은폐한다는 점에서 결코 온당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요컨대 ‘여전히 잘 팔리는 책’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잘 ‘인문교양서의 위기’라는 또 다른 현실에 대한 우려를 공연한 엄살로 둔갑시키고 마는 것이다.
인문교양서의 침체는 단지 시장 규모의 축소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양성의 훼손을 통해 독서문화의 질적 건강성이 회복 불가능할 만큼 악화됐으며, 그로 인해 다시 출판 다양성의 근간이 뿌리째 뒤흔들리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것이 문제의 진정한 본질이다. 지난 시절 인문교양서 독서 시장의 나침반 구실을 톡톡히 해내던 (민음사), (나남), (삼인) 등 계간지들이 2000년대 초·중반을 넘어서며 줄줄이 폐간됐던 역사가 던지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잡지시장’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잡지들이 기반하던 ‘시장’ 자체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hr>먼저 블로그에서 ‘통’하다
2001~2010년 키워드 ⑨ 블로그 글쓰기… 매체 형식이 글의 내용을 바꾸는 ‘당구공 효과’도
이택광 문화평론가
지난 10년간 한국 출판계에서 급부상한 현상 중 주목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블로그 글쓰기’일 것이다. 처음에 블로그는 개인의 일상사를 풀어놓는 일기장과 용도가 비슷했지만, 제도언론에 대한 불신과 인터넷 공론문화의 발달이 맞물리면서 ‘1인 매체’로 신속하게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 ‘파워블로거’ 중 단연 돋보이는 이가 바로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이현우라고 할 수 있다. 이현우가 주도한 것은 ‘블로그형 글쓰기’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었다. 이런 글쓰기 유형은 1990년대를 대표한 ‘게시판 글쓰기’와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다. ‘밀어올리기’나 ‘도배’ 같은 용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게시판 글쓰기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고 알리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일정한 주제의식을 갖고 특정한 독자 집단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다소 개인 주도의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주인장’이 관할하는 공간으로서 블로그는 게시판에 비해 훨씬 사적인 곳으로 받아들여지고, 방문자들도 이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넘어간다는 점에서 게시판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가독성 측면에서 블로그는 스타일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화체나 구술체가 각광받은 것도 손꼽을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글쓰기의 변화는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변화한 만화 장르의 변화에 비길 만한 일이다.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는 책이라는 매체로 묶이던 얌전한 방식을 벗어나서 ‘스크롤’이라는 새로운 동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블로그나 게시판을 막론하고 인터넷 글쓰기는 내려 읽어가는 방식으로 글읽기가 진행되는 효과를 감안할 수밖에 없다. 블로그는 이런 효과에 더 충실하다는 이점이 있다.
매체 형식이 곧 글의 내용을 바꾸는 ‘당구공 효과’를 우리는 지난 10년간 출판계에서 목격해왔다. 이 과정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만나고 댓글로 의견을 교환한 뒤에 책으로 묶인다는 점에서 기존 출판과 다른 제작 공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로쟈를 비롯해서 미네르바, 파란여우, 박가분이 모두 블로그나 게시판에 먼저 발표한 글들을 책으로 묶어낸 대표적인 블로거들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작가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과정을 겪는다. 과거처럼 직접 출판사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출판사 기획자들도 유명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판을 관찰하다가 좋은 원고나 생각이다 싶으면 출판을 제의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정하게 독자의 검증을 거쳤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이렇게 블로그에선 괜찮았는데 막상 책으로 묶으니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블로그 글쓰기와 전통적인 글쓰기가 조화롭게 만나도록 하는 일이 또 다른 출판의 고민거리가 된 것이다.
<hr>20대는 대체 어디로 갔나
2001~2010년 키워드 ⑩ 사라진 20대… 스펙의 노예가 된 청년, 소비자로 타자화해 등 돌린 출판계
변정수 출판평론가
책뿐 아니라 영화를 비롯한 거의 모든 문화상품의 시장에서 20대, 특히 20대 여성을 움직여야만 ‘대박’이 터진다는 공식은 이제 적어도 책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자기계발서가 당대의 움직일 수 없는 트렌드로 시장을 주도할 무렵만 해도 ‘20대 파워’의 뒷받침이 분명히 감지됐다. (진명출판사 펴냄)에서 (살림 펴냄)까지 이어지는 도도한 물결은, 대리 번역을 둘러싼 잡음 속에서도 스테디셀러의 지위를 유지한 (한국경제신문 펴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자기계발서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독서시장에서 20대들이 발휘하는 힘도 눈에 띄게 약화됐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20대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물론 20대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성공’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위협받는 현실 앞에서 ‘성공 신화’를 꼬드기는 자기계발서에 등을 돌렸을 뿐이다. 사실 복잡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자기계발서 시장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인문교양서 시장의 침체는 그저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문자를 읽고 의미를 해독해내는 능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의미의 ‘책’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문화적 배경이 이미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레디앙 펴냄)로 대표되는 ‘세대론적 담론’들이, 심지어 20대 저자의 (느린걸음 펴냄)조차 정작 당사자인 20대들로부터는 기대만큼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것’만이 문화상품으로서 책이 가지는 효용과 가치의 전부는 아니다. 예컨대 드라마의 시청자로서든() 또는 스타의 팬덤으로서든(), 가장 넓은 의미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파생상품으로서 만들어진 책들의 소비를 통해 20대는 분명히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본질적 의미의 독서시장은 형편없이 축소되는데도, 출판시장의 외연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설픈 세대론으로 모든 20대를 싸잡을 의도는 없지만, 대다수의 20대가 공유하는 문화적 환경이 지적 자극에 가장 예민한 시기를 온통 ‘점수 따는 기계’로 보낸 것으로 모자라 ‘스펙의 노예’가 되기를 강요당하는 정신적 감금 상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책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지혜를 얻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지만, 설령 그러지 못하고 그저 공허하면서도 불안한 일상을 다독여 달래기 위한 액세서리로 책을 소비한다고 해서 누가 감히 탓할 수 있을까.
이들을 독서시장의 독자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다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출판산업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출판시장의 소비자로 당장 소구해내는 일은 적어도 그보다는 쉬워 보일 법하다. 그래서인지 출판 기획과 마케팅의 과정에서 오로지 소비자로서만 손쉽게 대상화되고 타자화된다. 그렇게 지적 소외는 구조화되고, 20대는 독서시장에서 더욱더 사라져간다. 그들이 책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책이, 아니 실은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이들이 ‘당장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20대 독자에게서 등을 돌린 것이다!
<hr>‘국방부 불온도서’ 해프닝 기억하시나요
2001~2010년 그 밖의 키워드… 일본 소설 떴다가 지고, 이북이 이제 떠오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불도저가 운하도 만드는데, 출판계의 급격한 변화를 10개의 키워드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출판평론가·YES24 올해의 책 팀 등과 논의가 오가면서 나왔던, 담기에는 ‘거시기’하지만 떨어뜨리기에도 ‘거시기’한 키워드를 묶어보았다.
1. 공지영과 신경숙
에서 10월 2000년대 10년의 한국 문학을 정리할 때 거론된 인물은 김연수, 박민규, 김훈이었다. 김훈의 문장, 김연수의 스토리, 박민규의 재기는 2000년대 문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는 2000년대에도 공지영과 신경숙에 머물렀다. 1980년대 말에 데뷔한 1963년생 작가는 2000년대 건재했다.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만이 아닌 전 국민이 찾는 소설을 썼다.
의 신경숙은 (창비 펴냄)로 부활했다. 그가 다루는 소재는 데뷔 이후, 변함이 없다. 섬세한 눈길로 아프게 써내려가는 문장으로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한다. 2008년 출간된 는 2009년 백만 고지를 넘었다. 2010년에는 (문학동네 펴냄)를 펴내며 인기를 이어갔다.
펴내는 작품마다 30만~40만 독자를 끌고 다니는 한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공지영이다. 공지영은 1990년대 이후 ‘운동권 여자의 후일담’을 벗어나, 사회가 고민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을 써왔다. 2000년대 내내 그의 소설과 에세이는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했다. 2005년 (소담출판사 펴냄)은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했고, (푸른숲 펴냄)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히트했다.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등 에세이집은 부침 많은 그의 삶 또한 이 시대의 멘토로 역할함을 알려준다. 2008년 지승호의 인터뷰집 (알마 펴냄), 2009년의 소설 (문학동네 펴냄)까지 그의 베스트셀러는 다방면에 걸쳐 있다.
2. 일본 소설의 성장과 쇠퇴
2005년 이후 일본 소설은 그야말로 ‘터졌다’. 베스트셀러가 나왔다기보다 워낙 많이 시장에 풀렸다. 2005년 일본 소설의 신간 종수는 2004년보다 42% 많아졌다. 2005년 신간 종수는 1092종이었다. 거대해진 시장은 멈출 줄 몰랐다. 2006년 1274종, 2007년 1636종이었다. 1세대 무라카미 하루키, 2세대 ‘연애감성소설’의 에쿠니 가오니와 요시모토 바나나를 이은 2000년대 중반 제3의 물결은 ‘일본 장르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 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받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시장을 견인했다.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도 그간 묵혀둔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름 외우기 어려운 일본 작가’들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작가로도 삐죽이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 일본 문학 시장은 꺾이기 시작한다. 워낙 많이 출간되면서 길을 잃었다. 그래도 여운은 길다. 하향세를 걷지만 1천 종 이상이다. 2008년에는 1491종, 2009년 1327종이 출간됐다. ‘일본 소설 붐’은 ‘시작한 자’가 끝냈다. ‘일본색’을 지우고 한국에도 통용되며 일본 문학을 견인한 무라카미 하루키다. 2009년에 나온 1권(문학동네 펴냄)은 YES24 선정 올해의 책이었다. 그뒤 2·3·4권도 예약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노벨상이 거론되는 가장 세계적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일본색’을 찾기는 어렵다. 2005년을 정점으로, 무국적으로 시작해 무국적으로 끝난 ‘일본 소설’은 이렇게 수미상관이다.
3. 죽은 사람이 출판을 살렸다
(2005)을 펴내고 베스트셀러가 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은 (2007) 등으로 이어졌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의 정신과 상담 경험을 엮은 것이 이고, 그가 죽기 전 남은 자들의 마음을 보듬으며 펴낸 것이 이다. 2008년에는 랜디 포시의 가 출판계를 강타했다. 대학의 연례행사인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다 췌장암 선고를 받으며, ‘마지막 강의’는 말대로 ‘마지막 강의’가 되고 만다. 그의 책은 최고의 선인세를 기록하며 계약을 맺었고 2008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0년에는 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책을 쓴 오츠 슈이치는 1천 명이 넘는 말기암 환자를 옆에서 돌본 호스피스로 그 경험을 녹여 ‘후회하지 말고 살라’는 교훈을 던진다.
죽은 사람이 출판계를 살렸다. ‘죽음’을 옆에서 본 이들의 자기계발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며 운명을 달리했다. 뒤를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몸의 반쪽이 무너진 듯” 슬퍼하던 대한민국 정치사의 증인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운명을 달리한다. 한국은 울었고, 죽음이 남긴 숙제에 골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시민 전 장관이 정리한 자서전 (돌베개 펴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육필 기록을 펴낸 은 2010년 출판계의 중요한 저작이다.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학고재 펴냄), 그가 마지막까지 붙든 화두를 옮긴 (동녘 펴냄) 역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2010년에는 등 아름다운 삶의 교훈을 주던 법정 스님도 타계했다. 모든 저서를 더 이상 찍지 말라는 유언은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지 못했다. 2010년에는 그의 유작 (문학의숲 펴냄)이 나왔고 많은 이들이 찾았다. 2008년 유명을 달리한 박경리 선생의 시집 (마로니에 북스 펴냄)도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렸다.
4. 베스트셀러가 된 국방부 불온도서
2008년 출판계의 가장 쇼킹한 사건은 국방부 불온도서 선정이 있다. 군대에 반입이 금지되는 도서 목록을 정한 것인데, 베스트셀러부터 왜 선정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도서까지 다양했다. 화제가 되면서 국방부 불온도서는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 책을 다시 한번 리바이벌해본다.
“군은 지난해에도
등의 책을 지정해 문화관광부의 ‘우수 학술도서’ 선정 도서와 리스트 다툼을 하는 등 새로운 권위 있는 도서 위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도서 선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올해는 특히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이뤄져서인지 분야별로 책이 엄선됐다.
남한의 조준 실사 능력을 낱낱이 드러낸 , 남한에선 젓가락도 없이 밥을 먹는 줄 알게 하는 등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도서’에, 대한민국을 외국에 팔려고 내놓은 부동산 취급하는 등은 ‘반정부 도서’에, 자본주의 시대에 한물간 게릴라전의 덫을 이야기하는 은 ‘반자본주의 도서’로 선정됐다. 본 선정위원회가 올해 선정한 책이 발빠르게 높은 열독률을 보이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다.”( 722호)
5.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2005년이 온 국민을 ‘생물학자’로 만든 황우석의 해였다면, 2008년은 온 국민을 ‘경제학자’로 만든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경제 불황’의 해였다. 역사·철학·인문학의 자리를 경제가 차지했다. 주식과 국제자본의 탐욕에 진저리를 친 독자들은 주류 경제학, ‘오버그라운드 경제학’의 호들갑을 믿지 않았다. 부키에서 펴낸 를 쓴 장하준을 멘토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인터넷 ‘경방고수’와 고발을 믿었다. 미네르바와 세일러의 책, 삼성 내부 고발자 김용철의 (사회평론)와 (꾸리에), 선대인의 (더난출판사)와 (더팩트) 등이 주목받았다. 칼 폴라니의 (길)이 재출간됐고, 폴 크루그먼의 (세종서적)과 (황금사자)가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반자본주의’를 내건 책들도 대거 나왔다. (유토피아), (삼천리), (책갈피), (아카이브), (이루) 등이다.
자연스럽게 자기계발서가 독자의 손을 떠났다. 독자들이 주목한 것은 ‘대안적인 삶’이다. 자연을 떠나 생활하거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신을 실험하는 책들이 인문서 시장을 달구었다. 여기에는 ‘비즈니스 책’을 내던 출판사들도 가세했다. (달팽이), (사계절), (좋은생각), (부글북스), (북하우스) 등이 나오고, 나오미 클라인의 (살림Biz)이 재출간됐다. 최근 연예인 공효진이 낸 책은 (북하우스)이다. 그가 쓰레기를 줄이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 쓸 만한 소품을 만드는 생활을 소개하는 ‘환경서’다.
6. 이북의 성장
최근 한국 출판계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고 있는 대표적인 키워드다. 당신이 아직까지 이북(eBook·전자책)을 ‘책’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일 확률은 99%다. 그만큼 변화의 가능성도 높다. 이북은 2011년 이후 출판 키워드의 첫 번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획기사(24쪽)를 읽으며 당신의 ‘퓨처 라이프’를 준비하시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tv></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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