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7월7일 원진레이온 방사과 작업장은 독가스인 이황화탄소를 가장 많이 분출시키는 곳이었다. 노동부는 이황화탄소가 기준치를 훨씬 웃돌았음에도 원진레이온에 무재해 기록증을 발급하는 등 사실상 노동자들을 방치했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 성장의 이면에는 몸이 부서질 듯한 노동을 감내했던 수많은 노동자의 헌신이 있었다. 국민은 국가 발전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다시피 일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건강을 잃고 희생됐다.
한국에서 대표적 산업재해로 꼽히는 사건이 바로 원진레이온 산재다.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도농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에 있던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노후 설비로 인해 발생한 유해 물질 이황화탄소(CS₂)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서 이황화탄소에 노동자들이 장기간 노출됐다. 많은 노동자가 중독 증세를 겪었고, 직업병으로 인한 사망자 8명과 장애 판정을 받은 노동자 637명이 발생했다. 이들은 언어장애와 마비, 정신이상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 사건은 1988년 한겨레신문의 보도로 널리 알려졌고, 이후 산재 인정과 노동자 건강권을 논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노동 현실은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속에 노동자는 때로 생산수단처럼 평가받기도 한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는 존중받아야 한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보상금으로 설립된 공익형 민간병원 녹색병원은 이런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최근 이 병원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를 출범시키며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의료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의 연대 정신을 이어가려는 시도다.
산업화 과정에서 몸을 내던지며 일했던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특별한 특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과 노동의 대가라는 당연한 권리였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원진레이온 산재 사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사건은 단지 과거의 산재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묻는 말이기 때문이다.
권리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지켜지고 이어져왔다. 그 권리를 지켜나가는 일 또한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사진 한겨레 자료, 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88년 7월20일 인견사를 생산하는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잇따라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발생해 말과 몸의 움직임이 부자유스러운 중증마비 상태에 이르러 회사로부터 강제 퇴직당한 사람이 1986년 이래 12명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온몸이 마비된 환자가 가족의 간호를 받고 있는 모습.

1989년 1월21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도농리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임금인상 등 단체협약 체결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1991년 4월28일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원진레이온 정문에서 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이 직업병 검사와 판정의 신속한 처리와 전·현직 노동자에 대한 정밀검사 등을 요구하며 농성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1988년 8월7일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과 그 가족이 회사 앞에서 ‘노동부 장관 퇴진’과 ‘사장 구속'을 촉구하며 직업병 판정,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황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이다 1991년 1월5일 숨진 원진레이온 퇴직노동자 김봉환(53)씨의 유족과 이 회사 노동자들이 1991년 4월1일 직업병 판정과 보상을 요구하며 회사 정문에 김씨의 관을 옮겨놓은 채 이틀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황화탄소 중독 우울증에 시달리다 1993년 5월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진레이온 노동자 고정자씨의 영결식이 5월27일 원진레이온에서 치러지자 동료와 친척들이 헌화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1991년 4월25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회사 정문 앞에 마련된 고 김봉환씨의 빈소 앞에서 침묵농성을 벌이고 있다.

1991년 4월29일 직업병 피해 노동자 및 가족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동과건강연구회 등 보건의료단체 회원들이 원진레이온 정문 앞에서 범국민산재추방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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