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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 눈물이 세운 인권

민가협 창립 40주년, 보랏빛 수건에 담긴 민주화운동 역사의 장면들
등록 2026-03-05 21:59 수정 2026-03-11 11:17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소속 가족들이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평화민주당 당사에서 민주자유당 당사까지 거리행진을 벌이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강제 해산되고 있다.(1990년 4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소속 가족들이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평화민주당 당사에서 민주자유당 당사까지 거리행진을 벌이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강제 해산되고 있다.(1990년 4월)


 

“내가 세상에서 받은 상처보다 어머니가 받은 고통이 더 크다”(도종환, ‘보랏빛 어머니’ 중에서)

어머니는 그랬다. 늘 그 자리에 서서, 말없이 믿어주었다. 자식이 감옥에 갇히고, 남편이 끌려가고, 이유조차 설명되지 않는 폭력이 일상이 되었을 때도 어머니들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역사의 중심에 서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지만, 어느 날 문득 그들은 민주주의의 한가운데로 불려 나와 있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이른바 민가협의 어머니들은 수많은 날을 길바닥에서 보냈다. 교도소 앞에서, 경찰서 앞에서, 때로는 홀로 남겨진 어두운 방에서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그 고통은 사적인 비극에 머물지 않았다. 어머니들의 슬픔은 연대가 되었고, 침묵은 저항으로 바뀌었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정치는 인간의 삶이 드러나는 공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민가협 어머니들의 삶은 그 말의 또 다른 증명이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곧 인권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가 되었고, 사적인 고통은 공적인 목소리로 확장됐다.

1980년대, 국가보안법과 고문, 장기 구금으로 상징되던 시대 속에서 양심수 가족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손에 쥔 보랏빛 수건은 슬픔의 표식이자,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보랏빛은 애도의 색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색이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어머니는 역사를 만들지 않지만, 역사를 견디는 힘”이라고 말했다. 민가협의 어머니들은 민주화의 주변부에 머문 조력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 인권운동의 분명한 중심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단단한 저항을 이어온 주체였다.

2025년 12월12일 창립 40주년을 맞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역사는, 어머니들의 눈물로 세운 인권의 역사다. 이 화보는 그 눈물의 시간을 기록하고, 보랏빛 수건에 담긴 기억을 다시 꺼내는 자리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고, 그 희생의 많은 부분은 이름 없는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정부의 시국 공안 사범 석방과 사면 복권 조치가 단행되기 하루 앞서, 서울 중구 삼각동 ‘광주학살 관련자 처벌 및 5공 척결 투쟁위원회’ 사무실에서 수사기관에 내부 수배자 270여 명에 대한 수배 즉각 중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가족들이 언론에 발표된 사면 복권 명단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1988년 12월)

정부의 시국 공안 사범 석방과 사면 복권 조치가 단행되기 하루 앞서, 서울 중구 삼각동 ‘광주학살 관련자 처벌 및 5공 척결 투쟁위원회’ 사무실에서 수사기관에 내부 수배자 270여 명에 대한 수배 즉각 중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가족들이 언론에 발표된 사면 복권 명단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1988년 12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이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를 시작한 이래 8번째 집회를 열고 있다.(1993년 11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이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를 시작한 이래 8번째 집회를 열고 있다.(1993년 11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7개 단체로 구성된 ‘서울구치소 8·27 양심수 집단폭행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서 양심수 집단폭행 규탄대회를 마친 뒤 교도소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비교도대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1990년 8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7개 단체로 구성된 ‘서울구치소 8·27 양심수 집단폭행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서 양심수 집단폭행 규탄대회를 마친 뒤 교도소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비교도대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1990년 8월)


 

‘양심수 전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가요제’가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려 조작간첩 사건 관련 가족들이 노래하고 있다.(1989년 5월)

‘양심수 전원 석방을 촉구하는 시민가요제’가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려 조작간첩 사건 관련 가족들이 노래하고 있다.(1989년 5월)


 

조선대 이철규씨 죽음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전국 대학생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6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성당 입구에서 열린 ‘이철규 사인 규명 및 노태우 퇴진 촉구대회’에 참석한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 김신묵씨가 아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1989년 5월)

조선대 이철규씨 죽음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전국 대학생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6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성당 입구에서 열린 ‘이철규 사인 규명 및 노태우 퇴진 촉구대회’에 참석한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 김신묵씨가 아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1989년 5월)


 

국제노동권리기금( ILRF ) 소속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지원하던 패리스 하비 목사가 서울 동대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사무실을 방문해 민가협 어머니들을 만나는 동안, 실향민애국청년회 회원이라고 밝힌 청년 10여 명이 민가협 사무실 앞에서 하비 목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1989년 11월)

국제노동권리기금( ILRF ) 소속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지원하던 패리스 하비 목사가 서울 동대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사무실을 방문해 민가협 어머니들을 만나는 동안, 실향민애국청년회 회원이라고 밝힌 청년 10여 명이 민가협 사무실 앞에서 하비 목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1989년 11월)


 

‘5·3 동의대 사건’ 관련 학생들의 선고공판이 열린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동의대생 71명 가운데 윤창호 피고인에게 무기징역 등 중형이 내려지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1989년 10월)

‘5·3 동의대 사건’ 관련 학생들의 선고공판이 열린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동의대생 71명 가운데 윤창호 피고인에게 무기징역 등 중형이 내려지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1989년 10월)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맨 오른쪽)가 서울 명동 가톨릭센터에서 ‘양심수 전원 석방’과 ‘수배 해제’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구속자 가족들을 만나 대책을 상의하고 있다.(1988년 5월)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맨 오른쪽)가 서울 명동 가톨릭센터에서 ‘양심수 전원 석방’과 ‘수배 해제’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구속자 가족들을 만나 대책을 상의하고 있다.(1988년 5월)


 

경찰이 쏜 최루탄에 희생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전남 최루탄부상자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최루탄 제조업체 삼양화학 사장실을 점거하고 한영자 사장의 면담을 요구하며 창문 밖으로 유인물을 뿌리고 있다.(1988년 10월)

경찰이 쏜 최루탄에 희생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전남 최루탄부상자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최루탄 제조업체 삼양화학 사장실을 점거하고 한영자 사장의 면담을 요구하며 창문 밖으로 유인물을 뿌리고 있다.(198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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