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의 법조계 버전이 헌법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아래는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헌법이론과 사법 현실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던, 조국으로 입국이 거부된 사람들과 관련해 내가 맡았던 사건 이야기다.
2000년 11월 말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약칭 ‘한통련’) 간부들이 주일대사관에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다. 12월 초 서울에서 예정된 ‘한통련의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대책위원회’ 결성식에 참석하는 등의 일정으로 조국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권 등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주일대사관은 사실상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라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했다.
여기서 먼저 문제의 한통련을 이야기하고 가야겠다. 한통련 전신은 1978년 대법원 판결로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약칭 ‘한민통’)이고, 그 한민통의 뿌리는, 5·16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고 독재정권과 유착했던 재일조선인거류민단(약칭 ‘민단’) 지도부에 맞서 개혁과 민주화를 주장한 민단 개혁파였다. 민단에서 제명된 개혁파는 재일한국청년동맹(약칭 ‘한청’)을 만들었고, 이후 한청 회원들이 한민통을 결성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의장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민통 의장으로 추대된 1973년 8월15일 발표된 한민통의 3대 원칙은 ‘1. 선 민주회복 후 통일실현 2. 대한민국 절대 지지 3. 조총련 및 북한과는 선을 긋는다’였다.
그와 같은 한민통이 반국가단체가 된 것은 1978년 6월에 있었던 ‘김정사 간첩 사건’ 때문인데, 김정사가 간첩으로 규정되면서 그의 선배가 속한 한청의 상급단체 한민통이 반국가단체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한민통이 반국가단체이므로 김정사가 간첩이라는 게 아니라, 김정사가 간첩이니까 한민통이 반국가단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대학가에 침투한 간첩이라며 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은 김정사는 채 1년이 되지 않아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처럼 간첩으로 지목된 다른 이들은 오랜 수형 생활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정사의 짧은 형기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결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3월24일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간첩 사건’이 강압적인 수사로 조작됐다고 밝혔고, 2011년 9월23일 김정사는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선배 변호사를 도와 여권(여행증명서) 발급 거부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진행하게 됐다. 이에 사전에 사건을 검토하면서 헌법과 헌법이론서를 여러 번 보았다. 헌법은 제14조에서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하여 거주·이전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었다. 헌법이론서에서는 ‘출국의 자유’와 ‘입국의 자유’가 거주·이전의 자유의 내용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었다.
기본적 절차 무시 이유로 ‘승소’내가 본 모든 헌법이론서에서는 거주·이전의 자유도 제한할 수 없지만, ‘입국의 자유’는 국민이 본국에 대해 최종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법률로써도 제한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즉 수구초심(首丘初心)을 국민의 절대적 권리로 보고, 해외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국민이 입국하고자 하는 경우 국가는 어떤 이유로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이론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이 재외국민인 이상 한통련이 어떤 조직이고 간부들이 무슨 활동을 했든 조국에 입국하려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여권’(여행증명서)이란 ‘국가가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의 국적이나 신분을 증명하고, 상대국에 그 보호를 의뢰하는 공문서’지만, 여권 등이 없으면 입·출국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국가의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 처분은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하거나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헌법의 수호자여야 할 국가의 생각은 달랐다. 국가는 당시 여권법 제8조 1항 5호 “외교통상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게는 여권의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들며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권법 제8조 1항의 나머지 규정에는 여행목적국의 법규에 입국이 거부되어 있는 자의 안전을 위해서(1호), 일정한 죄를 범한 자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실현을 위해서(2호·4호), 여권법 자체의 효력 유지를 위해서 외국에 여행하고자 하는 국민의 여행을 막거나 이미 외국에 여행하고 있는 국민을 귀국시킬 수 있도록(3호) 돼 있었다. 따라서 입국의 자유는 제한될 수 없는 것이라는 헌법 해석에 의할 때, 5호도 외국을 여행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국민의 외국 여행을 막거나 귀국을 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돼야 할 규정이며, 국민의 입국을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는 규정이었다.
소송 결과는 원고들 승소였다. 하지만 원고들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주일대사관이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면서 기본적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여서 흔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후 정식 여권이 발급돼 입국할 수 있었기 때문에 헌법이론이 현실에서 수용된 것으로 생각하고 까맣게 잊고 지냈다. 최근 다시 한통련 간부들에 대한 여권 발급이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2011년 국가가 한통련 의장 손마행에게 여권 발급을 거부한 근거는, 현행 여권법 제12조 1항 1호에 규정된 “장기 2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기소되어 있는 사람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국외로 도피해 기소 중지된 사람”이라는 규정이다. 그러나 그는 기소되지도 않았고, 기소 중지되지도 않았다 한다. 설사 그가 기소됐거나 기소 중지됐다 하더라도 여권법의 규정이 조국에 입국하려는 의도로 여권 발급을 신청하는 사람에게 발급을 거부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보는 것이 헌법이론이다. 범죄 혐의가 있다면 입국한 자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하면 되지 부당하게 입국 자체를 막을 일은 아닌 것이다.
SNS 친구 신청한 도유사는 어떤지개인적으로 한통련이 그동안 일본과 해외에서 조국의 민주화, 한반도의 평화, 재일동포의 자존감 수호와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걸 인정해줄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헌법과 헌법이론에서 인정하는 권리만이라도 제대로 보장됐으면 한다. 2002~2003년 소송을 진행하면서 협의하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여러 번 일본을 방문했다. 그런데 사실 당시 소송과 관련된 보람보다는 같은 또래의 동포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서로 생각을 나눈 것이 훨씬 기억에 남아 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그들에게 미안하고, 그동안 변화된 조국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시 술 한잔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얼마 전 거의 10년 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나에게 친구 신청을 했던 오사카의 도유사는 현재 입국이 가능한지, 왜 연락은 없는지도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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