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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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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죽이기’ 올인, 이것이 정책이란 말인가

농식품부는 모든 정책 역량 쌀값 떨어뜨리기에 투입… 10년간 농가부채 65.4% 늘어날 동안 적정 정책 없어
등록 2025-11-07 14:00 수정 2025-11-13 11:08
2025년 11월3일 오후 충남 예산 들녘에서 마지막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5년 11월3일 오후 충남 예산 들녘에서 마지막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5년 10월23일 충남 당진 들녘.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 쌀 생산기지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쌀 총생산량의 3.1%(11만2554t)가 생산된다. 보통은 10월이면 청명한 하늘에 논바닥이 단단하게 굳고 벼알이 꽉꽉 찬다. 그런데 올해는 논바닥이 질퍽했다. 9월 초부터 이날까지 53일 동안 20일 넘게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수확이 평년보다 2~3주 늦어진 까닭이다.

“다 쓸어갔잖유.” 합덕읍 신석리 논두렁 위에서 만난 마을 최고령 이희영(91)씨가 “평생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가 최하”라고 말했다. “지금껏 물난리를 세 번 겪었는데, (허리춤에 손을 대고) 이렇게까지 물이 찬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씨는 2025년 6~7월 내린 큰비에 못자리를 두 번 실패했다. 세 번 만에 겨우 모내기를 마쳤지만 이삭 팰 무렵인 7월16~17일 400㎜가량 기록적인 큰비가 내려 삽교천이 넘쳤다. 예당평야(당진·예산 일대 들녘)가 물에 잠기는 대규모 침수 피해(농경지 1만6700㏊ 등)가 발생하는 등 농사짓기에 버거운 일들이 이어졌다. 마을 창고 앞을 지나던 농민 오흥규씨에게 ‘수확은 다 하셨느냐’고 물었다. “벼가 도복해서(쓰러져서) 베질 못한다”고 했다. 오씨는 “3만 평 정도 짓는데 1만 평 정도가 깨씨무늬병 피해까지 입었다”며 “(정부는 작황이) 지난해보단 낫다고 하던데, 우리가 느끼기엔 비슷하거나 못하다”고 말했다.

2025년 11월3일 오후 충남 예산 들녘에서 마지막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5년 11월3일 오후 충남 예산 들녘에서 마지막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5년 10월23일 충북 청주에서 벼 수확을 체험하고 있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2025년 10월23일 충북 청주에서 벼 수확을 체험하고 있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가을 호우, 고온 지속, 고령화… ‘근심 가득’ 농촌

당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북 김제에 사는 농민 박흥식씨는 “예전에 목도열병은 나락 모가지(벼 이삭과 줄기가 만나는 부분)가 올라올 때 생겼다. 그런데 올해는 고온이 지속되다보니 나락이 생긴 뒤에 목도열병이 생기면서 알맹이가 안 익고 그 상태로 끝나버렸고 깨씨무늬병까지 왔다. 뼈(껍데기)만 남은 나락이 많다”고 말했다. 10월10~16일 농업관측센터가 전국 표본농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전년 대비 작황이 나쁘다’는 농가의 응답이 46.4%, ‘비슷하다’는 응답이 44.3%였다. 당장 눈으로도 서너 필지당 하나꼴로 쓰러짐(도복) 피해 논이 보였다. 멀쩡해 보이는 논도 들여다보면 수확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아직 베지 않은 나락에 하얀 싹이 돋은 경우(수발아 피해)도 상당했다. 올해는 깨씨무늬병, 가지·잎 도열병, 잎마름병 등 여러 병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모두 쌀 생산량 감소와 농가소득 감소로 직결되는 요인이다.

기후위기만 문제는 아니다. 이날 17마지기(약 3400평) 논에서 콤바인으로 홀로 벼를 수확하는 이종섭 당진시농민회장을 만났다. “요즘은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톤백(나락을 담는 자루)도 못 쓴다”고 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점점 더 농민들을 옥죄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장이 벼를 수확하던 시간,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를 찾아 콤바인을 몰고 벼를 수확한 뒤 페이스북에 “농민들이 풍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이 말은 실현될 수 있을까.

2025년 10월5일 쌀 생산 지역의 도매가격인 산지쌀값은 20㎏당 6만1988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8월 초부터 전국쌀생산자협회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이 정부에 ‘나락값 최소 8만원’을 요구해왔는데, 이는 도정수율과 가공임을 고려해 산지쌀값으로 환산하면 20㎏당 약 5만8천원이다. 농민들의 요구가 얼떨결에 달성돼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산지쌀값 상승분이 농민소득 상승으로 고스란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매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동안 산지쌀값을 평균 낸 가격으로 정부 비축미 가격을 정한다. 농민은 수확기에 도매업자에게 나락값을 받고 쌀을 넘긴 뒤, 우선지급금을 받고 나중에 정부 비축미 가격을 기준으로 차액을 정산받는다. 그런데 햅쌀이 본격 출하되는 수확기 쌀값은 재고량 등 각종 정보를 쥐고 있는데다 한 해 생산량의 12%가량을 비축미 명목으로 사들이는 정부의 태도와 전망에 크게 좌우된다. 정부는 산지쌀값이 오르면 비축미를 풀어 쌀값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농민들이 2024년에 받은 쌀값은 20㎏당 4만6175원에 불과했다. 최고가 대비 34.1 %나 낮은 가격이다.

이런 구조가 도매업자와 유통업자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2024년에도 나왔다. 2024년 10~ 11월 전남 해남에선 해남군농민회가 주도해 해남군·군의회·농협·국회의원(박지원) 등이 예상되는 초과이익을 농가에 돌려주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2025년 봄·여름 실제로 초과이익이 농민에게 환원됐다. 하지만 이 사례는 그저 하나의 지역 ‘미담’일 뿐이다.

 


“벼농사 실태 왜곡하며 강제로 쌀값 떨어뜨려”

농식품부는 2025년에도 쌀값 떨어뜨리기에 가용 정책 수단을 총동원했다. 6월5일 산지쌀값이 20㎏당 5만원에 근접하자 6월11일 ‘쌀값 안정 방안’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비축미 방출을 거론했다. 7월25일에는 소비자가격이 6만원을 넘어섰고, 정부는 8월1일부터 대형마트 쌀에 대해 20㎏당 3천원 현금 지원을 했다. 8월 한 달 동안 소비자가격이 산지쌀값과 괴리돼 5만원대에 잠시 머물렀던 이유다. 8월7일에는 송미령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쌀 20㎏ 소비자가격 6만원은 국민들의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말했다. ‘적정 쌀값’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는 이후에도 세 차례(8월11일, 9월5일, 9월11일)에 걸쳐 정부 비축미 10만5천t을 방출했다. 9월11일에는 대형마트 쌀값 지원을 3천원에서 5천원으로 확대했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적정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비축미를 방출했는데 (농민들이) 왜 문제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9월28일 한가위 연휴를 앞두고 농식품부는 보도자료를 냈다. “2025년산 쌀 작황이 좋다”고 했다. 10월7일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는 10a(약 300평)당 생산량이 527㎏으로 전년보다 2.7%나 증가할 것으로 ‘2025년 쌀 예상생산량’을 발표했다. 작황이 좋다는 건 공급이 많다는 의미다. 그렇게 안 잡히던 쌀값이 10월15일 이후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 추세라면 2025년 농민들이 받을 쌀값도 지난해처럼 최고가 대비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쌀값은 정말 지나치게 오른 걸까. 사상 최고치라는 ‘6만1988원’(10월5일 산지쌀값)은 5년 전(2020년 10월5일)보다 15.2% 오른 가격이다. 같은 기간 16.4%(2025년 물가는 한국은행 물가상승률 추정치인 1.9%로 계산) 오른 소비자물가를 고려해보면 “저곡가 정책으로 억눌렀던 쌀값이 회복한 것일 뿐”(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이다. “‘나락값 8만원’을 밥 한 공기(90g)로 계산하면 260원 정도예요. 4명 가족이 하루 두 끼 먹으면 2080원, 세 끼 먹으면 3120원이에요.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해요. 이 정도는 농민들이 받아야 한다고 (소비자인) 국민을 이해시키려는 게 아니라, 농식품부가 나서서 (쌀값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게, 농민 입장에선 참 답답하기만 합니다.”

2024년 논벼 생산비 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300평당 농가 생산비는 14.0% 증가했지만, 쌀 판매금 등 소득은 21.8% 감소했다. 엄 정책위원장은 “생산비도 못 건지는 벼농사 실태를 왜곡하면서까지 시장에 개입해 강제로 쌀값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농민, 정부 쌀 수요·생산량 통계 불신

농식품부의 쌀 수요량 예측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농식품부는 10월13일 2025년 쌀 예상 수요량을 전년(352만9천t)보다 3.4% 줄어든 340만9천t으로 보고, 예상 생산량(357만4천t)을 고려해 쌀이 16만5천t가량 남아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내년 쌀 소비량이 계속 감소할 추세라는 점과 사업체 쌀 소비량(2024년 기준 87만3천t) 가운데 국산 쌀이 31만t 정도 쓰일 것으로 예상해 수요 전망을 계산했다”며 “다만 작황은 9월 중순 조사한 것이라 그 이후 일조량 부족 때문에 생산량이 다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단체들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2024년산 쌀이 거의 남지 않고 소진된데다, 2025년 작황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4년보다 벼 재배면적이 2만㏊ 줄어, 쌀 생산량도 약 10만5천t 줄었다. 쌀 소비 감소 추세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진짜 시장’에선 2025년 쌀뿐 아니라 구곡(전년 또는 그 이전에 생산된 쌀)과 즉석밥·막걸리 등으로 쓰이는 수입쌀까지 함께 유통된다. 이를 모두 포함해 ‘1인당 쌀 소비량’을 다시 계산하면, 2020년 70.2㎏에서 2024년 72.7㎏으로 쌀 소비는 줄지 않고 있다.(제1550호 참조) 이종섭 농민회장은 “정부 의도와 달리 올해 쌀값이 사상 최고치까지 갔다. 쌀이 부족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며 “기업화돼 수익을 추구하는 농협 통합미곡처리장(RPC)이나 민간 유통업체들에, 정부의 이런 태도와 전망은 농민들 대상으로 쌀값 깎을 명분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쌀 생산량이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데이터처에 확인해보니 현행 쌀 생산량은 도정수율(벼를 도정할 때 나오는 쌀의 비중) 75% 내외로 계산한다. 이는 2024년산 쌀 전국 평균 도정수율인 69.4%보다 5% 이상 높은 수치다. 벼 등숙기(8~9월 중순) 평균기온 27도 이상 고온 스트레스가 지속되거나 9월 중순 이후 일조량이 부족할 경우 벼 껍질이 두꺼워지고 알이 덜 찬다. 기후위기 등으로 도정수율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국가데이터처 통계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2024년 전북과 경기 남부 지역의 경우 도정수율이 60% 초반대에 머문 곳도 수두룩했다. 전남 영암 농민 김봉식씨는 “보통 한 마지기(200평) 농사를 지어 넉 섬(440㎏) 정도면 ‘농사가 잘됐다’고 하는데, 나락 기준으로 계산해보니 올해 정부 통계에선 넉 섬 반(495㎏)으로 잡아놓았다”며 “한 10년 전엔 그랬을 수 있지만, 최근 기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2024년엔 작황(300평당 생산량) 예상치를 전년 대비 0.2% 증가로 전망(10월 초)했다가, 실제론 3.2% 감소(11월 중순)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일기예보로 치면 맑겠다고 했다가 폭우가 쏟아진 셈이다. 국가데이터처 담당자는 “과거 기상을 모형으로 예상치를 내고 있는데, 최근엔 기상변화가 심해 원활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 통계의 이런 불확실성은 농민 불신의 토대가 되고 있다. 1년에 한 번 생산량 집계와 수요 전망치를 툭 내놓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매달 정부가 90쪽가량 되는 ‘ 쌀에 관한 먼슬리 리포트 ’ 발표에 공을 들인다 . 여기에는 매달 우리의 시도에 해당하는 도도부현별 쌀 재고 (소비량 ) 부터 품종별 ·용도별 쌀 재고는 물론 , 쌀을 소비하는 방식 , 계약재배 현황 등이 상세하게 소개된다. 이를테면 2025년 1~7월 일본에서 술 제조용으로 쓰인 쌀은 19만3522t인데 이 가운데 긴조·준마이·준마이긴조·혼조조슈 등 구체적인 쓰임별 쌀 소비량까지 조사해 발표되는 것이다.

 


 


정부 지원 ‘쌀 대체 작물’ 75% 창고 신세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농업정책에 제대로 된 시장 접근이 실종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업연구자인 송동흠 우리밀세상협동조합 대표는 “한국 농정의 문제 중 하나는 시장, 즉 가격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쌀 생산이 과잉이라고 하면서 콩·가루쌀 등 전략작물(논에서 재배되는 벼 이외 작물)을 심으라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그 콩·가루쌀을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갖도록 직접지불금 확대 등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하진 않는다”며 “가공업체 몇 곳을 섭외해서 제품 몇 가지 만들다 마는 게 전부다. 그런 제품은 안 만들어도 된다. 가격만 맞춰지면 ‘선수들’이 알아서 제품을 만들겠다고 줄을 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니 정부가 손댄 작물마다 창고에 쌓여 처치 곤란인 상황이 벌어진다. 쌀 감축 정책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어떻게 할지 계획도 없이, 휘두르기 쉬운 생산 농가만 부추기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밀 소비의 10%(약 20만t)를 대체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뒤 각종 지원을 집중해온 가루쌀을 비롯한 밀·논콩 등 ‘쌀 대체 작물’은 18만t(2022~2024년) 가운데 75.5%인 13만6천t이 수입 작물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창고 신세를 지고 있다. 3년간 보관료만 211억원이 집행됐다.(국회 국정감사 자료 참조) 우리밀세상협동조합이 한국 관세청 수출입통계, 일본 농무성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5년 1~9월 한국의 국산콩·수입콩의 가격 차는 4.11배지만, 일본에선 ‘일본국산콩’(0.92배)이 수입콩보다 더 싸다. 밀도 한국은 2.69배, 일본은 0.92배다. 일본이 자국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고 보조금을 쏟아온 결과다. 송동흠 대표는 “일본 국산밀과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밀 가격이 비슷하게 형성된 건 수입밀을 국영무역(국가 독점 무역)으로 다루면서 각종 수수료를 부과한 뒤 제분업자 등에게 판매한 결과다. 그런데 한국은 콩을 국영무역으로 다룬다. 그런데 수입콩에 오히려 예산을 써서 더 싸게 두부공장 등 가공업체에 팔고 있다”며 “(정부가) 국내 농업 경쟁력과 농민을 생각하기보다 오로지 자본의 이익만 고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당진·예산 논콩 밭들을 찾아보니,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확기가 지났지만 콩은 아직 파릇파릇, 종아리 정도 컸을 뿐이다. 7월 홍수가 예당평야를 휩쓸고 가자 농가들은 8월 초 논콩을 재파종해야 했다. 논에 물을 담아 농사짓는 벼와 달리, 콩은 배수가 잘돼야 한다. 이런 생육 특성 때문에 특히 피해가 컸다. 이런 홍수는 이번이 마지막일까. 예산군 농민 황선덕(44)씨는 “논콩만 1만 평 정도 짓는데, 7천 평가량이 침수 피해를 겪었다”며 “땅을 놀릴 수 없어 재파종하긴 했는데 수확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지원을 일부 받아 2억원 하는 논콩용 콤바인 등을 구매해 논콩에 올인한 상태다. 그는 최근 ‘가격 3배 비싼데… 국산 대두 장려 위해 수입량 확 줄인 정부’(한국경제 10월19일치) 등 최근 가공업체 입장에서 콩 수입 확대를 주문하는 기사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4800원짜리 콩 1㎏을 가공하면 두부 10모가 나옵니다. 침수로 콩 농가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정말 어렵습니다. 국산콩으로 만들면 두부 한 모에 480원이라는 얘긴데, 그걸로 만든 두부를 팔거나 사는 게 그렇게 못할 일인 건가요.”

수입쌀에 세급 투입?

한국의 농업총생산액 대비 농업보조금 비중은 2020년 기준 17.3%로 미국(60.4%)은 물론 일본(34.9%)과 견줘도 매우 인색한 수준이다. 그마저도 국산 농산물 경쟁력을 위해 온전히 투입되지 않는다. 매년 저율관세할당(TRQ·관세 513%→5%) 방식으로 의무수입되는 수입쌀 40만8700t에 대해서마저 쌀가공산업 활성화 명분으로 세금(양곡관리특별회계)을 투입하고 있다. 2025년 5월14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양곡사업 실태 조사’ 발표 자료를 보면, 수입쌀에 80㎏당 4만8천원의 예산을 지원해 의무수입 쌀의 60% 이상을 기업에 싸게 판매한다. 당시 이 조사를 맡은 김호 단국대 교수(식품자원경제학)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안 그래도 싼 수입쌀을 더 싸게 헐값 판매해 시장을 교란하고 국내 쌀시장을 불안케 하는 양곡 사업은 바뀌어야 한다”며 “의무수입 쌀은 사료용 등으로 제한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는 “가공용 쌀이 밥상용 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역시 매년 76만7천t의 쌀을 의무수입하는 일본은 86.6%(2023년 기준)를 사료용으로 소화해, 주식인 쌀 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농식품부 내부에서도 자성이 나온다. 한 간부는 “우리 가공업계에는 신선한 쌀로 고품질 제품을 만들기보다 저품질 값싼 쌀로 수익을 많이 남기는 식의 구조가 고착화됐다”며 “일본처럼 주조용이나 즉석밥용 품종을 세분화해서 가공쌀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건 맞는데, 사실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쌀가공업자들은 항상 품질보단 가격에 매달리는 게 문제이고 우리(농식품부)는 일관된 정책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종섭 농민회장이 말했다. “어릴 때 손으로 모 심던 시절엔 30~40마지기(6천~8천 평)만 지어도 일꾼도 구하고 애들 학교도 아무 문제 없이 다 보냈습니다. 지금 임대해서라도 그 10배 이상을 지어도 애들 대학 하나 보내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쉽게 이거 지어라 저거 지어라 하는데, 농민들이 그게 쉬워서 하는 게 아닙니다. 직불금이라도 받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논콩·가루쌀·쌀 각각의 농사가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합니다. 쌀 짓다 논콩으로 바꾸려면, 맞는 콤바인·파종기 등이 각각 다 다릅니다. 이런 기계들 가격은 몇억원에 달하고 2~3년쯤 지나면 수리비만 매년 1천만~2천만원씩 들어갑니다. 다 빌린 돈이에요.”

농가 한 곳 평균 부채 4500만원

2024년 우리 농가 한 곳당 평균 부채는 4501만6천원이다. 한 해 전보다 8.1% 늘었고, 10년 전과 견주면 65.4% 늘었다. 반면 10년간 농업소득은 14.9% 줄었다. ‘소품종 대량생산’이라는 농업정책 목표를 농민들이 수십 년째 충실하게 따라온 결과다. 이날 예당평야엔 사람은 잘 안 보여도 1억원이 넘는 콤바인은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강원도 홍천에서 무 농가가 농가부채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요즘 농가부채 문제 정말 심각해요. 올해처럼 기상이변이 많았던 해도 없고, 내년엔 더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정부는 쌀값을 강제로라도 떨어뜨리겠다는 거잖아요. ‘이 상태에서 비가 한 번만 더 오면 어떻게 될까’ ‘불안불안하다’ ‘뇌관이 곧 터지겠구나’라고들 해요.” 예산에서 농사짓는 엄청나 정책위원장이 말했다.

 


당진·예산(충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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