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농업생태원에서 공공비축미 수매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쌀 소비량(55.8㎏)은 전년 대비 1.1%(0.6㎏) 감소.”
2025년 1월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양곡소비량 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2009년 이후 통계청 누리집에 매년 1월 올라온 조사 결과가 모두 같은 패턴이다. 이어 ‘1인당 쌀 소비 또 최소’를 제목으로 앞세운 언론보도가 줄줄이 뒤따른다.
‘쌀 소비 지속 감소’라는 해석은 하고 싶은 얘기만 듣는 확증편향에 의한 착각이다. 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통계청이 말한 ‘쌀 소비량’에는 가구 부문만 담겨 있다. 집에서 밥솥으로 짓는 쌀만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떡이나 막걸리, 즉석밥, 장류 등 기업이나 상점에서 만든 쌀 가공식품 등이 담긴 ‘사업체 부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2024년 사업체 부문 쌀 소비는 87만3363t으로 전년 대비 6.9% 증가했다고 2024년 조사에 나오지만, 이런 사실은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 가구 부문 소비량(288만7709t)의 30.2%에 이르는 양이다. 같은 자료에서 ‘1인당 밀 소비량’을 0.9㎏이라고 발표한 것도 같은 이유다. 빵이나 밀가루 등 밀 가공식품은 조사에서 제외돼 있다. 그러니 ‘진짜 1인당 밀 소비량’은 38.3㎏(2023년 기준, 농림축산식품 통계연보)이라고 할 수 있다.
광고
농림축산식품 통계연보와 같은 방식으로, 사업체 부문 쌀 소비량을 포함해 ‘진짜 1인당 쌀 소비량’을 계산해보면 쌀 소비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쌀을 소비하는 패턴이 달라진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진짜 1인당 쌀 소비량’은 2020년 70.2㎏에서 2021년 70.0㎏으로 약간 줄었다가 2022년 70.1㎏, 2023년 72.2㎏, 2024년 72.7㎏ 등으로 소폭이지만 늘어나고 있다. 농업·농촌 연구자인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대표는 “통계청이 보도자료로 소비가 증가하는 사업체 부문은 감추고, 감소하는 가구 부문만을 ‘1인당 쌀 소비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이것을 그대로 인용해 농업정책 수립에 활용한다”며 “이 때문에 ‘먹지도 않는 쌀을 왜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내느냐’는 농업·농촌 경시 경향이 생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와 통계청은 현행 ‘1인당 쌀 소비량’이 사업체 부문을 뺀 채 계산된 결과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가구 부문만의 소비량도 쌀 소비 경향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통계”라고 설명했다.
현실을 왜곡하는 통계청의 ‘1인당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선언은 위력이 대단하다. 농업정책 관련 법·제도 마련의 밑돌이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 뒤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지금껏 21번의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이었다. 쌀값이 전년도 대비 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도록 한 게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뼈대다. 기후위기, 국제 곡물 가격 불안, 비료·농약값 등 농업 생산비 급등, 쌀값 불안정 등에 따른 불안한 생산 기반을 안정화하고, 주곡인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마련됐다. 윤 대통령은 2023년 4월4일 국무회의에서 이 법안에 대해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일축했다.

이런 태도는 농식품부가 2024년 12월 발표한 ‘벼 재배면적 8만㏊ 감축 계획’으로 이어졌다. 69만7천㏊(2024년 기준)인 벼 재배면적을 61만㏊까지 8만㏊(11.5%) 줄여, 연간 쌀 생산량을 43만3천t가량 줄인다는 것이다. 애초 벼 재배면적을 감축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강제감축’ 방안까지 추진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친위쿠데타 실패로 인해 동력을 상실하자 ‘지자체 자율’(2025년 1월22일 발표)로 선회했다. 그렇다고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 감축 목표도 그대로다.
광고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문제와 관련, 1월20일 출입기자들을 만나 “내가(농민이) 할 수 있는 의무(벼 재배면적 감축)는 조금도 안 하고 쌀가격 올려달라는 건 생각해볼 대목”이라며 “농지의 소유와 이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농민들을 ‘쌀값 올려달라고 떼쓰는 존재’로 바라본 것이다.
정말 수요보다 많은 쌀이 생산되고 있을까. 우리나라 쌀 자급률은 100%(완전자급)에 못 미친다. 최근 5년(2019~2023년) 쌀 자급률이 100%가 넘었던 해는 2022년 단 한 해뿐이다. 54일간의 장마로 작황이 부진했던 2020년 쌀 수확량이 급감(전년 대비 6% 감소)했고 2021년 자급률은 84.6%로 떨어지기도 했다. 당시 쌀값도 2020년 10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전년 대비 13~18% 급등했다. 정부 계획대로 벼 재배면적을 8만㏊ 감축하면 자급률은 80%대로 떨어진다.
소비 패턴을 무시한 채 밥상용 쌀과 가공용 쌀을 구분하는 ‘수상한’ 농업정책이 쌀이 남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되는 까닭이다. 밥상용 쌀은 100% 우리쌀을 공급하지만, 가공용은 상당 부분을 수입쌀로 충당하고 있다. 한겨레21이 농식품부에 확인해보니 “2024년 가공용 쌀 87만t 가운데 26만t가량은 수입산”이었다. 농식품부는 “수입쌀은 밥상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업과 가게에서 만든 가공용 쌀 제품들도 떡으로, 막걸리로, 된장·고추장으로 밥상에 오른다.
엄청나 쌀생산자협회 위원장은 “쌀이 남아돈다면서 한 해 40만t 이상의 쌀을 매년 수입해 가공용 등으로 공급한다. 쌀 수급 불균형은 농민의 과잉생산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농업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송 장관은 쌀값이 마치 시장 논리로만 결정되는 것처럼 호도한다. 쌀값은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된다. 쌀값이 오르면 정부가 수매했던 쌀을 방출해 가격을 낮추는 등 쌀값은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시장도 정부가 ‘쌀값은 낮게 가져간다’는 정책을 반복적으로 학습했고, 그 결과가 쌀값에 반영되고 있다”며 “정부가 쌀에 대한 폄하를 이어가면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자존심도 긍지도 가질 수 없게 됐다. 쌀 한 품목뿐 아니다. 농정당국이 나서서 농업을 구조조정하고자 한국에서 농사짓는 모든 농민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고
쌀 재배면적 감축은 식량 안보 문제로 이어진다. 송동흠 대표는 “미국과 유럽은 남는 밀을 사료용으로 돌리는 등 유사시에 대비해 밀 재배면적을 줄이지 않고 유지한다. 일본도 이미 수년 전부터 남는 쌀을 가루쌀이나 사료용으로 돌리면서 비상시 논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논 면적부터 줄이려고 한다. 논을 덜컥 줄이면 필요할 때 바로 회복시킬 수 없다”며 “쌀 문제를 (생산과 소비) 양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유사시 식량 안보에 대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변화하는 소비 패턴을 반영한 농업정책이 재수립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동흠 대표가 말했다. “‘요즘은 밥 안 먹고 고기 먹어’라고 하는데, 사실 더 깊게 들어가면 사람이 먹는 칼로리는 줄일 수 없어요. 곡식을 사람이 직접 먹는지, 가축이 대신 먹는지에 대한 문제지요. 농업정책은 (결국 사람 입으로 들어오는) 칼로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해서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겁니다. (사람이) 곡식을 안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가축이 먹는 사료는 (별개라서) 수입하면 그만일까요? 결국 농민은 죽고 농촌은 폐허가 되고 자본가들만 돈을 벌게 되겠죠.”
1992~2022년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소비하는 에너지는 3천㎉ 안팎(2023년 농축산식품 기본통계)으로 큰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는 가축 사료의 96.6%(2023년 기준)를 수입에 의존한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계엄·포고령·국회장악…하나라도 중대 위헌이면 윤석열 파면
‘MBC 적대’ 이진숙, 지상파 재허가 심사 강행
아이유, 극우 ‘좌파 아이유’ 조롱에 “감당해야 할 부분”
한덕수·최상목·이복현 ‘눈치게임’ 시작 [그림판]
“저희 어무니 가게, 도와주세요” 1억 클릭…거기가 어딥니까
초등학교서 마시멜로 태우며 화산 실험…14명 병원행
세상의 적대에도 우아한 68살 배우 “트랜스젠더인 내가 좋다”
부산 남구 6급 공무원, 계엄 옹호 의원·국힘 비판했다 중징계 위기
케이블타이에 감긴 기자, 입 열다…계엄군 “가져와” 하더니 [영상]
4·2 재보선 최종 투표율 26.55% 잠정 집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