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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정신건강을, 이주노동자에게 통역을

4시간 논쟁 끝에 7건 선정… 선정된 아이디어를 어떻게 예산에 반영시킬지 현실적인 전략 필요해
등록 2014-11-13 15:42 수정 2020-05-03 04:27
‘1% 지렛대 예산 선정위원회’가 지난 10월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 모여 시민들이 낸 66건의 아이디어를 살펴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1% 지렛대 예산 선정위원회’가 지난 10월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 모여 시민들이 낸 66건의 아이디어를 살펴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부 예산의 1%를 어디에 쓰면 좋을까요? 의 질문에, 모두 66건의 답이 돌아왔다. 비행청소년, 장애인, 이주노동자, 강제이주 재외동포.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아이디어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육아와 교육, 재취업, 주거 등 자기 삶의 문제를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도 많았다. 지난 10월29일 회의실에서 ‘1% 지렛대 예산 선정위원회’를 열어, 4시간여의 열띤 논쟁 끝에 7건을 최종 선정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소장(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박갑주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최우성 편집장이 참석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일정상 참석을 못해 서면으로 의견을 보내왔다. 최종 선정된 7건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회의 내용을 전한다.

“공공산후조리원을 설립하고, 민간산후조리원에 대해 인증제도를 실시하자”(신직호씨 공모)

오건호: 적극 추천하고 싶다.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에 하나 만들어진 걸 보고 왔는데, 일단 수요가 많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매칭해서라도 산후조리 서비스의 공공화를 해봤으면 한다. 공공성과 인프라에 관심을 두자는 차원이다. 공공시설이 10% 정도 되면, 민간에도 공적 기관만큼의 서비스 질을 요구할 수 있다.

박갑주: 반대 의견은 아니다. 다만 공공시설로 만든다고 해도 1% 예산 정도로는 부족할 텐데, 대상을 누구로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고민이다. 또 산후조리가 한국의 특수한 현상이고 산후조리원은 중산층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걸 공공산후조리원을 통해 강화하는 게 맞느냐도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박진: 공공산후조리원은 민간 영역을 침해하는 부작용이 있다. 산후조리원에 대한 관리는 필요하지만, 인증제보다는 허가 및 사후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태일: 공공병원이나 공공어린이집도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면 민간 영역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산후조리라는 전체 복지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자는 취지에는 동의하는데, 그 예산으로 공공산후조리원을 짓는 게 대안일지는 의문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돌보자”(최승우씨 공모)

선정위원 대부분이 찬성 의견을 밝혔고, “씨랜드 참사 등 사건·사고를 겪은 어린이 트라우마 치료를 지원하자”(고석씨 공모)는 아이디어와 비교하며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어린이 트라우마 치료는 예산 수혜 대상자가 너무 협소하다는 이유로 최종 선정에서는 제외됐다.

오건호: 지역아동센터가 있긴 한데, 복지의 사각지대로 인프라가 굉장히 열악한 형편이다.

한귀영: 세월호라는 시대적 상징성도 있고, 본인의 잘못이 아닌 참사로 고통을 겪은 아이들에게 사회가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사회정의 관점에서 한번 다뤄봐야 하지 않나 한다.

박갑주: 아동학대 지원단체와 연계해보면 어떻겠나. 재난 등 사건·사고를 겪은 아이들로 한정하면 대상자가 너무 좁혀질 것 같다.

“비행청소년을 돌보는 청소년회복센터를 위한 공식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자”(송호창 국회의원 공모)

이 의견과 “보육시설에서 만 18살이 되어 자립하는 아이들을 정신적·물질적으로 지원하자”(김민우씨 공모)는 아이디어는 대다수 선정위원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둘 다 청소년 관련 아이디어라는 점을 감안해, 최종적으로는 비행청소년 문제 1건만 선정됐다.

한귀영: 비행청소년 지원 문제는 아동복지 쪽에 해당하지 않아서 약간 떠 있는 상태인 것 같다. 법 개정을 조금만 한다면 현실화가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적은 예산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듯하다.

박진: 필요하다고 본다. 보육시설 자립 아이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한데, 재정 지원보다는 취업 지원이 우선이다.

박갑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아동 사건 전문 변호사가 있는데, 청소년들이 가출해서 쉴 공간, 머물 공간이 없으니까 성매매나 절도로 빠진다고 하더라. 사법형 그룹홈과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통역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자”(이종민씨 공모)

최우성: 에서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기사를 쓰면 가끔 그 나라 언어로 기사를 번역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그런 수요가 있다면 사회가 끌어안아야 하지 않을까.

한귀영: 이주노동자 교회를 하는 목사님이 제안해주셨는데, 한국에서 오래 산 타이 여성이 월 30만원인가 받고서 통역 서비스를 하는데 만족도가 높다고 하더라. 임금체불이 있거나 이주노동자가 아파도 통역이 안 돼서 해결이 어렵다고 한다.

서울 노원구청에서 자살 예방 사업으로 시행한 ‘생명지킴이’(왼쪽)가 한때 자살을 시도했던 구민을 찾아가 상담을 하고 있다. 노원구청 제공

서울 노원구청에서 자살 예방 사업으로 시행한 ‘생명지킴이’(왼쪽)가 한때 자살을 시도했던 구민을 찾아가 상담을 하고 있다. 노원구청 제공

오건호: 지자체에서 이주노동자 사업을 할 텐데, 그 예산에 포함돼 있지 않다면 필요한 사업일 것 같다.

“사할린 동포 등 강제이주된 사람들을 돕자”(이상희씨 공모)

박갑주: 최근 법원 판결에서 사할린 동포가 대한민국 국적자임이 확인됐다. 국민인 게 분명한데 정부 보호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강제이주 재외동포들에 대해 최소한 실태가 어떤지 조사 사업을 하고, 이 사람들의 거점 공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과거사 문제다. 그런데 현재 관련법조차 없는 상태다.

김태일: 사할린 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고려인 등 강제징용자들을 다 포괄해서 다뤄야 한다.

“자살 예방을 위한 정부 차원의 사업을 벌이자”(민지선씨 공모)

한귀영: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져서, 심리적 부검 등 자살 예방 사업을 하니까 효과가 있었다고 들었다. 지자체에서는 일부 효과가 나타난 사례도 있고, 약간의 돌봄만으로도 성과가 높은 사업이라서 해보는 게 좋겠다.

김태일: 자살자는 주로 독거노인이 많은데, 혼자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는 마음이 얼마나 비통할까 싶다. 그런 사람을 어느 정도 배려해줘서 1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겠다. 자살 예방을 지자체에 맡기다보니, 자살률이 높은 농어촌 지역에서는 잘 되지 않는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부 해야지, 지자체장의 의지에만 맡겨선 안 되는 사업이다.

“대학생 공동주거시설을 지원해주자”(신은재씨 공모)

오건호: 여러 대학교가 가진 자원의 여건상 모든 학생에게 기숙사 공간을 제공하긴 어려운데, 대학생들의 주거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청년 주거 빈곤도 심각한 상황이라, 지자체보다 중앙정부 예산 사업으로 넓혔으면 한다. 청년들한테 공적 재산으로 공동생활을 하도록 하는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본다.

박진·김태일: 각 대학이 기숙사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고 본다.

박갑주: 심각한 문제이긴 한데, 각 대학이 기숙사를 늘려가도록 강제하는 방향이 맞지 않을까 한다. 그걸로 부족한 부분을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지원해주는 게 어떨까.

심사 총평

박갑주: 선정된 아이디어를 어떻게 예산에 반영시킬지 현실적 전략이 필요하다. 좋은예산센터와 각 주제마다 관련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실을 묶어서 계속 연구하면서 예산 반영 여부를 점검해보는 게 좋겠다.

김태일: 기획 연재 마지막엔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전달체계의 문제도 짚어봤으면 한다. 세월호 같은 경우도 안전 규제를 다 하도록 돼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행정이 엉망인데 감시하는 기구가 없다. 그런 곳에 예산을 써서 효과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오건호: 기대보다 참여가 저조했던 건, 아직까지 시민들이 정부 예산에 자신이 개입할 여지를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시민들이 제안하면 우리가 책임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최종 선정한 7건에 대해선 끝까지 추적 보도하고, 1년 뒤 예산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성과도 점검해보면 어떻겠나.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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