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손 소독부터 하셔야 해요.” 신생아실로 들어가는 과정은 까다로웠다. 11월5일 오전 위생 가운과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 들어선 서울 송파구 장지동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의 신생아실은 여느 산후조리원의 풍경과 비슷했다. 보라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간호조무사들이 유리창 너머 갓 태어난 신생아들을 돌보고, 간간이 산모들이 지나다녔다.
정몽준 후보도 내세웠던 공약문을 연 지 9개월이 채 안 된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는 서울에서 유일한 공공산후조리원이다. 구 예산 88억원을 들여 만든 지하 2층, 지상 5층 시설 가운데 3개 층에는 27명의 산모를 수용할 수 있는 산후조리원이 있다. 이곳에는 어린이집과 산모를 위한 각종 강의 시설 등도 있다. 공공산후조리원 이용료는 일반실 2주 기준 190만원으로 서울의 민간산후조리원(135만~550만원) 평균비용보다 싸다.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의 관리를 맡고 있는 송파구보건소의 이향례 건강기획팀장은 “공공 영역에서 임신 전부터 출산 후까지 과정을 체계적으로 돌보는 종합 시설은 이곳이 유일하다. 산후조리원은 전체 시설의 일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신생아실 앞에서 만난 고은경(34)씨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이유로 이곳을 선택했다. 그는 지난 10월17일 둘째아들을 출산한 뒤 공공산후조리원에 들어왔다. 지난해 첫째를 낳았을 때는 당시 살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근처의 민간산후조리원을 2주 동안 약 300만원을 내고 이용했다. “방이 작은 것 빼고는 (민간산후조리원과)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는데 집과도 가깝고 깨끗해서 만족스럽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송파구민을 우선 대상으로 이뤄지는 입소 신청은 늘 경쟁률이 높다. 자리가 남으면 타 지역의 산모를 받지만 그 혜택을 본 경우는 10여 명뿐이다.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를 시작으로 최근 공공산후조리원에 대한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공산후조리원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게 된 건 6·4 지방선거 때였다. 선거 유세 기간에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를 찾은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는 “서울 모든 자치구에 공공산후조리원을 만들겠다”며 모심(母心) 잡기에 나섰다. 당시 민주당·통합진보당·정의당도 당 차원의 추진 정책으로 공공산후조리원 카드를 내걸었다. 그 밖에 적지 않은 지자체 후보들이 이른바 ‘반값 공공산후조리원’을 공약으로 앞세웠다. 지난 7월 경기도의회는 도내에 공공산후조리원을 설치·운영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한국의 삼칠일 문화가 만든 조리원업계에서는 산후조리원의 첫 등장을 1996년 무렵으로 본다. 당시 1~2곳이 생겨난 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급속하게 늘어났다. 산후조리 서비스의 등장은 ‘삼칠일’ 문화와 연관짓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부터 산후 3주까지의 산욕기(임신으로 인해 변화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이 임신 이전 상태로 회복되기까지의 기간으로 일반적으로 6주) 초기 기간을 ‘삼칠일’로 부르며 산모가 절대적으로 다른 이의 돌봄을 받으면서 신체적·심리적 및 사회적 휴식을 취해야 하는 중요한 기간으로 간주하는 전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가족화 등으로 가정 안에서 전통적인 산후조리가 어려워지자 산후조리원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는 해석이다.
현재 국내에는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를 포함해 제주 서귀포시, 충남 홍성군 등 모두 3곳의 공공산후조리원이 있다. 그러나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다. 서귀포와 홍성의 경우, 민간산후조리원조차 없는 환경에서 지역민에게 산후조리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세워졌다. 2013년 3월 문을 연 공공산후조리원인 서귀포공공산후조리원은 제주시 부근에 밀집해 있는 산후조리원의 편차를 줄이고자 국비와 도비 등 모두 18억원을 들여 세웠다. 모두 6억원을 들여 충남 홍성의료원 안에 마련한 공공산후조리원도 원정 산후조리가 불가피한 예산·청양·홍성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관내에 여러 곳의 민간산후조리원이 함께 있는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운영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가 공실률이 거의 없이 운영되는 것과 달리, 서귀포·홍성의 공공산후조리원은 이용률이 빡빡할 정도는 아니다. 산후조리원 자체가 없는 지역에서는 공공산후조리원을 짓는 대신 별도의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전남 광양시에서는 2012년부터 10개월 이상 계속 거주한 가구 가운데 관내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산모에게 60만~140만원의 지원금을 주고 있다.
공공산후조리원이 늘어나는 건, 그만큼 산모들의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수요와 달리 대부분 민간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의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고 서비스도 천차만별인 현실이 산모들을 부담스럽게 한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20~44살 기혼여성 47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출산 지원 분야에서 가장 시급한 정책을 묻는 질문에 69.7%가 ‘산후도우미 등의 지원’을 꼽았다. 산전 진찰비 지원(17.3%), 불임 부부 지원(13.1%)이 그 뒤를 이었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전국의 산후조리원은 모두 544곳인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서울(148곳)·경기(163곳)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 게다가 서울·경기의 경우 최저 비용과 최고 비용이 최대 5배 안팎으로 차이가 난다. 지역에 따라 산후조리원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따라서 공공산후조리원이 민간산후조리원 시장의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소외 지역에는 최소한의 산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산후조리원은 2005년부터 모자보건법에 따라 규제를 받고 있지만, 의료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 건강보건을 위한 필수 시설은 아닌 셈이다. 게다가 일부 이용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공산후조리원을 국비·지방비 등 세금으로 지원하는 게 형평성에 맞느냐는 비판도 있다.
보건복지부 “감염 우려… 지원 어렵다”공공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쪽에서는 공공산후조리원이 서비스의 ‘롤모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향례 건강기획팀장은 “원하는 경우에는 민간을 통해 더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산후조리원 자체가 산후조리원의 최소한의 운영 기준이 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공산후조리원은 모두 보건복지부 등의 국비 사업이 아닌 지자체 단위의 예산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신생아를 ‘집단 수용’해야 하는 산후조리원 시스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은 2013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장에 나와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사업 추진 의향을 묻는 질문에 “공공산후조리원을 설치하는 것은 질병에 취약한 신생아의 감염 우려 등의 문제로 도입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하는 공공산후조리원은 예산의 한계 탓에 취약계층까지 혜택을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 송파산모증진센터에서도 개원 이래 30%의 비용 감면 혜택을 받은 저소득층 이용자는 1명뿐이었다. 비용 감면 혜택을 받아도 자기부담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도 취약계층의 산후조리원 이용을 돕기 위해 올해 3월 한국산후조리업협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서울의 산후조리원 148곳 가운데 협회 회원사인 100곳을 이용하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산모에게 해산급여금(약 60만원) 수준의 표준정액요금으로 이용하도록 하고, 차상위계층 산모에게는 이용료를 30% 할인해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별로였다. 민간 업체에 비용 차액을 보전해주는 게 아니라, 조리원의 자발적 참여로 조리원 1곳당 1~2실을 ‘협조’하는 차원이어서 실제 참여 업체는 30여 곳에 그쳤고 이용자도 5명에 불과했다. 임대료 등 수익을 남겨야 하는 민간산후조리원에 비용 보전 없이 자발적 참여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서울 강동구에서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김정욱씨는 “산후조리원의 최소 운영 비용을 생각한다면 공공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의 경우, 자기부담금이 190만원이나 된다. 민간산후조리원도 인건비·임대료 등으로 (수도권에서) 200만원 이하로 가격을 내리기 쉽지 않다. 게다가 일부 이용자만 혜택을 보는 공공산후조리원보다는 차라리 비용 지원을 통해 민간산후조리원을 이용하게 만드는 편이 낫다.” 실제 제주도가 2013년 11월 내놓은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및 운영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서는 당시 서귀포공공산후조리원이 개관 이래 3억5천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24시간 체제로 고용하는 직원의 인건비를 꼽았다.
바우처 제도도 고려해볼 만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산후 지원 서비스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지원사업은 출산 가정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가 방문해 각종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제도로, 개인 부담금은 2주 기준으로 5만~10만원 수준이다. 현재 가구 소득이 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의 50% 이하인 산모에게만 적용하던 제도를 내년부터 65% 이하로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산후조리를 지향하는 국가보조 사업으로 진행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서울의 경우, 전체 서비스 비용을 국비 50%, 시 예산 25%, 구 예산 25%로 분담하게 된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는 민간산후조리원에 대한 허가 기준을 좀더 강화할 계획이다. 게다가 국회에서는 감염에 대한 배상 책임 강화와 요금 공개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산후조리원에 대한 감독은 점점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산후 지원 서비스는 장기적으로 공공산후조리원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해법이 필요한 셈이다. 올해 초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공공산후조리원 관련 정책을 연구했던 조원준 새정치민주연합 쟁책위원회 전문위원도 공공산후조리원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득수준과 지역의 여건과 편차를 고려한 해법이 필요하다. 공공산후조리원을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간 영역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안전 기준·시설 관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 인증 제도를 운영하면서 시장 질서나 공공 구조를 정리해주는 게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세상을 바꾸는 1% 지렛대 예산’ 심사위원단에서는 “국비·지방비로 공공산후조리원을 세우고, 정부가 인증한 민간산후조리원 이용자에게는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바우처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밖에 가정에서 산후조리를 받기 원하는 경우에도 같은 액수의 바우처나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출산 후 몸조리에 들어가는 부담을 줄이고 안락한 회복을 돕는다’는 사업 제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겠다는 것이다. 산모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줄 때, 진정한 산후 지원이 이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참고 문헌 ‘산후조리원 이용 산모와 이용하지 않는 산모의 산후우울, 산후 스트레스, 산후 불편감 및 산후 활동에 대한 비교연구’(김민아·최소영, 2013년)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국 최고 의사’ 84살 김의신 “암에 좋은 음식 따로 없어, 그 대신…”
“명태균에 아들 채용 청탁…대통령실 6급 근무” 주장 나와
“대통령 술친구 이긴 ‘김건희 파우치’…낙하산 사장 선임은 무효”
법원, KBS 박장범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기각
탄두가 ‘주렁주렁’…푸틴이 쏜 ‘개암나무’ 신형 미사일 위력은
‘야스쿠니 참배’ 인사 온다는 사도광산 추도식…‘굴욕 외교’ 상징될 판
관저 유령건물 1년8개월 ‘감사 패싱’…“대통령실 감사방해죄 가능성”
‘1호 헌법연구관’ 이석연, 이재명 판결에 “부관참시…균형 잃어”
“회장 자녀 친구 ‘부정채용’…반대하다 인사조처” 체육회 인사부장 증언
꺼끌꺼끌 단단한 배 껍질…항산화력 최고 5배 증가 [건강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