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ADHD, 흔한 병 돈 많이 드는 병

1년이면 1천만원 가까이 드는 비용,
공공 상담치료기관에선
한 달 9만원… 서울 이외 지역에선 찾아보기 어려워
등록 2014-12-13 14:37 수정 2020-05-03 04:27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소속 상담교사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 활동을 하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소속 상담교사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 활동을 하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강귀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양천아이존 소장에게 얼마 전 민우(10·가명) 엄마가 찾아왔다. 민우는 수업 시간에 몸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던 전형적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 아동으로, 양천아이존에서 1년 가까이 상담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민우 엄마의 손에는 풀이 공식과 답이 또박또박 적힌 95점짜리 수학 시험지가 들려 있었다. “시험지 빈 공간마다 낙서로 채우던 아이가, 차분히 문제를 풀어낸 거죠.” 강 소장은 민우의 시험지를 복사해 책상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부모의 양육 태도도 교육

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좋은예산센터가 함께 선정한 ‘세상을 바꾸는 1% 지렛대 예산’ 일곱 번째 사업은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사업’이다. 아동·청소년기는 몸이 성장하기도 하지만, 마음건강의 문제가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조용하거나 활발한 것으로 여기면서 우울증 또는 ADHD 등의 증상을 방치하면, 학습 부진은 물론 사회성을 갖추지 못해 따돌림과 학교폭력 등의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특히 ADHD는 초등학교 한 학급에 한두 명은 꼭 있을 정도로 흔한 병이 됐지만, 사설 상담기관에선 회당 10만~20만원에 이르는 상담비와 수십만원짜리 검사를 여러 번 받아야 한다. 1년이면 1천만원 가까이 드는 비용 탓에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시가 2009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 아이존은 이런 정서행동 문제를 가진 아동·청소년을 위한 공공 상담치료기관이다. 서울시는 매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진단 검사를 벌여 1차 위험군을 걸러내고, 2차 종합 심리발달 검사를 거쳐 아이존에 위탁한다. ADHD가 60% 정도로 가장 많고 우울증·자폐증 등을 앓는 아이들이 들어온다. 현재 서울 시내 11곳의 아이존이 운영되고 있고, 각 센터당 30명 안팎의 아이들에게 일대일 상담과 놀이·미술·학습 치료 등을 제공한다. 약물치료가 필요하면 인근 병원과 보건소를 연계해 병행치료를 받도록 한다. 기초생활수급권자나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아이들은 무료로, 그 외의 아이들은 월 9만원만 내면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이 필요한 만큼, 치료 기간 역시 1~2년으로 장기 관찰이 가능하다. 아이존의 또 다른 특징은 부모·가족 교육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때, 부모 역시 위축되고 상처받는다. 아이존에는 아이 치료와 더불어 부모의 양육 태도를 교육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상담·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자폐와 ADHD를 동시에 지닌 승호(가명) 엄마는 “아이와 함께 뛰어내리려” 한강에 갔다가 돌아온 적이 여러 번이다. 언제나 “아이가 이상하다”는 비난에 위축돼 있던 그는 8주간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아이의 장점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대기자 명단은 언제나 빼곡

수요는 늘고 있지만, 시설과 인력이 한정된 탓에 아이존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다. 한 명이 빠져야 다른 아이가 들어갈 수 있어, 대기자 명단은 언제나 빼곡하다. 그나마 이런 공공 상담치료기관은 서울시 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강귀숙 소장은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일찍 개입할수록 치료 효과가 크다. 공공 상담치료기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idu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