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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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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말은 자세히, 내 말은 짧게”

이주노동자 제일 많이 오지만 통역원은 한 명뿐인 캄보디아 등 필요한 말

전할 길 없는 이주노동자들… 단기순환 고용허가제 아래선 통역은 더욱 절실
등록 2014-11-28 15:42 수정 2020-05-03 04:27

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 ㅅ(33·여)은 언어의 문이 닫힌 곳으로 실려다니며 일했다. ㅅ을 처음 만난 날(2012년 5월) 사장은 그를 싣고 전북 익산으로 차를 몰았다. ㅅ이 계약서에서 읽은 근무지는 강원도 강릉이었다. ㅅ은 전북 익산→강원 강릉→충남 예산→경기 평택→경기 안성→충남 태안→충남 아산→충남 서산을 오가며 고구마밭→배추밭→인삼밭→무밭→감자밭→열무밭→양파밭 등에서 일했다. 사장은 자기 밭에 일이 없을 때마다 ㅅ을 전국으로 데리고 다니며 불법파견했다. 한국어를 못하는 ㅅ은 의문을 말로 옮길 수 없었다. 연락해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휴대전화는 몇 달간 만들지 못했다. 몸에서 흘러나온 말이 의미를 얻지 못할 때 세계는 먹통이 된다. ㅅ은 먹통의 세계가 두려웠다.

산재 승인율 한국인 61.23%, 이주민 28.97%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계약을 다퉈야 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언어의 장벽은 모든 고난의 시작이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터를 채우기 시작한 이래 이주노동자들은 늘 통역이 고팠다. 원활한 의사소통은 ‘노동환경’뿐 아니라 사업주의 ‘고용환경’에도 필수적이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경기도 안산) 대표가 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캄보디아어로 상담하고 있다. 통역 서비스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권리 구제를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단체에 자국 언어를 할 줄 아는 활동가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전국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정용일 기자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경기도 안산) 대표가 캄보디아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캄보디아어로 상담하고 있다. 통역 서비스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권리 구제를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단체에 자국 언어를 할 줄 아는 활동가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전국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정용일 기자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의 통역은 외국인력지원센터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전국 지사에서 맡고 있다. 외국인력상담센터는 전화 통역·상담을 지원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통·번역 인력(2012년 기준)은 세 기관을 합쳐 상근 139명과 비상근 671명이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가 많은 국가의 경우 베트남(조사 당시 농·축산 분야 최대 송출국)을 제외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전국 고용센터를 통틀어 캄보디아(현재 최대 송출국) 통역원은 1명뿐이었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15개국에서 입국하고 있다. 외국인력상담센터별로 통역원들이 ‘커버’하는 언어는 5~10개국어다. 센터가 위치한 지역의 이주노동자 인구분포에 따라 언어를 배정한다. 통역원이 없는 국가의 노동자가 찾아오면 외국인력상담센터의 전화 상담을 연결한다. 고용허가제가 국가 간 계약으로 유지되지만 계약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언어권이 존재하는 셈이다.

외국인력지원센터(전국 7곳)는 이주노동자에게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를 돕는 민간단체에 통역원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해당 언어권 노동자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이주노동자를 돕는 샬롬의집 이종민 신부는 말했다.

“자체 비용으로 타이 결혼 이주여성을 반상근 통역으로 고용한 뒤 전보다 상담 요청이 5배 늘었다.”

통역 부재는 산업재해 승인의 차별로도 이어진다. 2013년 7월까지 한국인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산재 승인율은 61.23%였다. 이주노동자는 28.97%에 그쳤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당) 의원은 근로복지공단에 통역 인력이 한 명도 없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업무상 질병의 경우 한국말에 서툰 이주노동자가 통역의 도움 없이 과로 여부와 작업환경 등이 어떻게 질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지 입증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며느리 지원’, 인권에 초점 맞춰져 있진 않아

통역 서비스 부족으로 권리 구제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의 호소는 끊이지 않는다. 베트남 노동자 ㅇ(25·남)은 고용센터에서 이뤄진 논의가 통역 없이 한국어로만 진행돼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국제앰네스티 ‘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보고서)했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용센터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몰랐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통역도 제공되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저 한국어로만 쓰인 문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이날 사인으로 ㅇ의 계약이 종료됐다. 비자 연장도 신청할 수 없게 됐다.

통역원들이 고용주의 입장을 주로 대변한다는 불만도 많다. ㅍ(25·여·캄보디아)은 떠올렸다. “고용센터 통역원이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사장님 말은 자세히 전달하고 내 말은 짧게 언급했다. 통역에게 따졌다. 통역은 문제가 커지면 한국 사장님들이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잘 안 찾을 테고, 결국 캄보디아에서 일하러 오는 사람도 줄어들 수 있다며 일단 참으라고 했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통역원들이 노동관계법을 잘 몰라 분쟁 조정 방향이 이상하게 흐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국가인권위 보고서는 통역인 확보 및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혼 이주여성 대상의 통역 서비스로는 여성가족부가 다누리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다문화가족 지원이 중심이어서 이주여성 인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진 않다. 송옥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통역원을 자체 채용해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모든 언어를 지원하진 못한다. 통역이 불가능한 언어권의 이주민이 찾아오면 다른 단체에 부탁해 통역원을 ‘꿔’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종민 신부는 말했다. “단기순환(3년~4년10개월)을 원칙으로 하는 고용허가제 아래선 한국말에 익숙해지기 어렵다. 체류 기간이 제한될수록 통역의 필요성은 훨씬 긴급해진다.” 언어는 인권인 까닭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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