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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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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초 떠돌이 대학생 인생

50만원씩 내며 살아야 하는 학교 앞 하숙집, ‘대학생 행복주택’은

현실적이지 않은 조건 내세우고 기숙사 배정률은 22.8%밖에 안 돼
등록 2014-12-05 15:43 수정 2020-05-03 04:27
자취·하숙방 세입자를 구하는 전단이 지난 2월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길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다. 류우종 기자

자취·하숙방 세입자를 구하는 전단이 지난 2월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길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다. 류우종 기자

“좋은 기회이니 활용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주택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정현준 주무관의 말이 끝나자, 대학생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내년에 4학년이 되는데 대학원에 갈 예정이다. 대학원생은 못 들어가나.”(대학생)

“해당이 안 된다. 행복주택은 대학생을 위한 공간이라 대학원생은 혜택이 없다.”(국토부 공무원)

“대학원생의 수요가 많은데 입주자격에서는 왜 빠졌나.”(대학생)

“내가 말한 게 정답은 아니지만 대학은 사회에 진출하는 데 필수조건이지만 대학원은 아니다. 대학원까지 지원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대학생 지원이 줄어든다.”(공무원)

“사회 초년생의 입주자격에는 사업장이 어딘지는 상관없나.”(대학생)

“회사를 따지지 않는다. 소득 조건에만 맞으면 된다.”(공무원)

“비정규직도 입주자격에 들어가나.”(대학생)

“4대 보험만 있으면 혜택이 가능하다.”(공무원)

“지방에서 올라오면 무주택 세대주가 아니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은 무주택 세대주여야 한다고 입주자격에 나온다.”(대학생)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질문했다. 다시 살펴보고 조금 더 명확히 해서 공지하겠다.”(공무원)

<font size="3">지방에서 방 구하러 올라왔는데 ‘자격 미달’</font>

지난 11월27일 오후 국토교통부의 대학생 행복주택 설명회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의 한 강의실. “학생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까요”라는 정현준 주무관의 걱정과는 반대로, 30여 명의 대학생이 들어찬 강의실은 열기로 가득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서울 가좌지구의 행복주택을 착공하고, 주변 홍익대 등 대학을 돌며 이 주택의 수혜자가 될 대학생들에게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행복주택은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 대학생과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을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으로 기획됐다. 2017년까지 전국에 14만 가구를 지어 80%를 젊은 계층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서울에서는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목동·잠실 같은 주요 지역의 사업 추진이 지연됐다.

“행복주택 건설 기간을 생각해보면 대학교 1학년생 정도에게 혜택이 돌아가지만, 대학교를 졸업해도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 때 행복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지금 대학생들이 혜택을 못 보는 정책이 아니다”라고 정현준 주무관은 소개했다.

그러나 이날 대학생들의 질문은 정부 정책이 수요층에 견줘 세밀하지 못함을 겨냥했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겐 행복주택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또 지방출신 학생들은 부모 세대원에 포함돼 무주택 세대주가 아닌 경우가 많다.

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좋은예산센터가 ‘세상을 바꾸는 1% 지렛대 예산’ 다섯 번째로 ‘대학생 주거지원’을 선정했다. 정부가 대학생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은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설명회에서 만난 한 대학생도 답답함을 털어놨다. 대학 4학년 1학기째인 노아무개(24·여)씨는 학교 주변인 신촌을 떠나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살고 있다. 그의 학교 주변 생활은 지방 학생들이 거치는 경로와 비슷하다.

인천 출신인 노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 한 달 정도 통학을 했다. “왕복 4시간이 걸리니 힘들어서 집에서 나온” 그는 하숙집부터 시작했다. 첫 하숙비는 50만원이었다. 50만원이나 내지만, 하숙집 아주머니가 밥을 먹을 때마다 지켜보는 등 스트레스가 심했다. 위염까지 앓은 뒤 노씨는 하숙집을 옮겼다. 첫 하숙집보다는 먼 곳에서 2학년까지 하숙을 한 뒤 3학년 때부터 자취생활에 들어갔다. 학교 정문 앞 원룸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2만원이었다. 관리비는 5만원이었다. “비싼데 좁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방이었다. 이사하고 싶었지만 원룸 주인이 ‘빈방이 많아 보증금을 돌려주기 힘들다’고 해 두 달이나 더 있어야 했다.”

<font size="3">통학 4시간이라도 집이 인천이라</font>

그는 결국 학교 앞을 떠났다. 버스를 타고 다니더라도 비슷한 돈으로 더 넓은 집을 구할 수 있는 당산동으로 이사했다. 이곳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8만원, 관리비가 6만원이다. “지금은 신축 건물이라 만족하며 산다. 부모님이 맞벌이해도 방값에 등록금까지 너무 비싸 부담이 크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과외 등 아르바이트로 집세를 내긴 버겁다.

노씨는 그동안 대학생 주거지원 정책의 혜택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통학 시간이 왕복 4시간이나 되지만, 집이 인천이어서 기숙사 입주자격이 되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학생에게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전세임대주택 역시 부모가 맞벌이면 자격요건이 안 돼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노씨는 “기숙사는 지방으로 주민등록을 옮겨서라도 신청해볼까 했지만 경쟁률 자체가 워낙 높아 포기했다. 부모님이 맞벌이여도 오빠와 내 교육비를 따지면 빚까지 져야 하는데, 전세임대주택 입주자격의 폭은 너무 좁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건 행복주택 역시 대학원생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에 노씨는 쓸쓸히 설명회장을 나서야 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씨 등 대학생을 위해 내놓은 주거지원 정책은 크게 3가지다. 2013년 12월 국토교통부와 교육부,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대학생 주거지원 추진현황 및 개선과제’를 보면, 대학생 임대주택 공급과 기숙사 대폭 확충, 행복주택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12년 대학생 주거지원율(20.1%)을 5년 뒤인 2017년까지 2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대학생 임대주택은 기초생활수급자·한부모가정·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50% 이하의 가구 대학생에게 소형 임대주택을 빌려주는 사업이다. 임대주택에 당첨된 대학생이 적당한 방을 찾으면, LH가 7500만원 한도 내에서 전세계약을 맺은 뒤, 대학생에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7만~12만원으로 가격을 낮춰 방을 재임대해주는 방식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두 달 앞당겨 11월에 2015년 입주자 신청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3천 호 규모이며, 내년 신입생을 위한 공급 물량은 남겨놨다.

대학생이 직접 방을 구해야 하다보니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등의 온라인 카페에는 ‘방을 구하기 힘들었다’는 글이 많다. 아이디 ‘txxxxxxxx’가 올린 글을 보면 “매물이 별로 없다. 있어도 LH는 다들 꺼린다”고 했다. 올해 3월에야 방을 구한 그는 “개강은 했는데 집은 못 구했고, 나오는 집도 없고 거의 포기 상태였다. 공부도 손에 잘 안 잡혔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서울시가 하는 희망하우징 사업은 SH공사가 직접 다세대주택을 임대하거나 원룸을 만들어 대학생에게 공급해 편리한데 물량이 훨씬 적다.

<font size="3">바늘 구멍 같은 전세임대주택 입주</font>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문유진 운영위원장은 “LH 전세임대주택 제도의 경우 (절차가 복잡해) 집주인이 선호하지 않고, 집주인은 국가로부터 돈을 받으니 임대료를 더 높이려고도 한다. 또 학생은 공부할 시간도 뺏기지만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증명해야 해서 마음에 상처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문유진 위원장 등은 대학생 주거지원을 위해 기숙사 확충을 더 우선순위에 둔다. 기숙사가 보증금 등 목돈 부담이 없고, 월세도 대학가 주변 원룸에 견줘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말 기준 전국 대학 재학생(178만1천 명) 가운데 기숙사를 배정받은 학생은 22.8%(40만5천 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사립대 내 공공기숙사와 행복기숙사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학이 건축비의 10% 정도를 부담하면 주택기금과 사학기금을 빌려줘 기숙사 건설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도 대학가 주변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벽에 부딪혔다. 정부가 올해 7월 착공해 2015년 12월에 완공하겠다고 밝힌 경희대 기숙사(926명)의 경우 지금까지 첫 삽도 못 떴다. 동대문구청이 대학 주변 임대업자들의 민원을 이유로 몇 달째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룸과 하숙집을 운영하는 주변 주민들은 기숙사로 학생들이 빠져나가면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희대 관계자는 “주민들이 기숙사 학생 수를 줄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돌아갈 기숙사 혜택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경희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7%에 불과하다. 경희대는 10월24일 서울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동대문구청 쪽은 여전히 학교와 주민이 협의해야 건축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다툼은 “경희대 학생들이 동대문구로 주소를 이전해 표심을 보여줘야 한다”는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밖에 서울의 고려대와 연세대 등도 임대업을 하는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 탓에 기숙사 건설 사업이 멈춘 상태다.

<font size="3">주민들과 갈등으로 준공도 못한 기숙사</font>

청년주거운동을 하는 민달팽이유니온의 황서연 주거상담팀장은 “학생들이 서울 대학으로 진학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기 위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데, 자꾸 주민의 재산권 욕심이나 당장의 표 계산으로 흐르고 있는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황 팀장은 “노인이나 소외계층의 주거 문제도 심각하지만, 청년층은 주거나 일자리 문제 등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는 상황이다. 선택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장경석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대학생 주거지원 정책의 추진현황 및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내세우고 있으나, 정작 대학이 적극적으로 건축적립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또 대학생들의 불안정한 주거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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