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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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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의 집은 어디인가

20년 넘게 일본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기댄 영주귀국사업에만 전념,
그나마 귀국사업도 내년에는 종료 예정…
국가가 방치하고 있는 재외 국민에 대한 책임 물어야 할 때
등록 2014-11-28 15:35 수정 2020-05-03 04:27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정착촌인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고향마을’에서 지난 11월19일 할아버지들이 소련에서 즐겨 하던 마작놀이를 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3100여 명의 사할린 동포가 영주귀국해 살고 있다.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정착촌인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고향마을’에서 지난 11월19일 할아버지들이 소련에서 즐겨 하던 마작놀이를 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3100여 명의 사할린 동포가 영주귀국해 살고 있다.

“오늘 아침 시동생이 돌아가셔서요.”

전화기 너머 양윤희(73)씨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11월19일 오후, 그가 노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경기도 안산 고향마을에서 만나기로 약속해둔 터였다. 그는 급히 지방에 내려가는 중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양씨도, 그의 시동생도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다. “돌아가신 분 자손들이 모스크바와 사할린에서 다녀간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고새 숨을 거두셨으니 자손들도 고상이지.” 고향마을 노인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훈자(75) 노인회 사무국장이 전했다.

덧셈은 없이 뺄셈만 있는 마을

죽음의 신은 고향마을 언저리를 서성인다. 2000년 처음 영주귀국했을 때 980명이던 마을 주민 수는 지난해 말 730명으로 줄더니 ‘고새’ 692명이 됐다. 1945년 8월15일 이전 출생자만 영주귀국이 허락된 터라 평균연령은 78.6살. 한 달에 서너 명이 눈을 감는다. 마을에 덧셈은 없고 뺄셈만 있다.

안산시 상록구 용하공원로 39번지. ‘고향마을’로 유명한 이곳은 국내에서 사할린 동포가 가장 많이 모여사는 정착촌이다. 10층짜리 아파트 8개 동에는 오로지 사할린 동포만 산다. 1930~40년대 일본은 한국인들을 사할린섬으로 강제동원해 탄광, 벌목장, 군수공장 등에서 노예처럼 부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진 일본은 사할린을 떠나면서 조선인들을 버려두고 갔다. 사할린에 남은 4만3천여 명은 난민 신세가 됐다. 무국적자로 살다가 일부는 러시아 국적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한-일 적십자사 주도로 1997년부터 사할린 동포들 영주귀국의 길이 열렸다. 한국 정부는 국민임대주택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생계주거비·의료비 등을, 일본 정부는 귀국 항공료와 생활용품 구입비(140만원), 사할린 역방문 비용 등을 지급한다. 다만 영주귀국 대상은 1세(1945년 8월15일 이전 출생자)로만 한정됐다. 그것도 2명씩 짝지어 와야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사할린 동포 3100여 명(2013년 말 기준)이 25개 지역에 흩어져 거주 중이다.

고향마을은 쓸쓸했다.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드문드문 산책을 다니고,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노인 몇몇이 햇빛을 쪼이고 앉았을 뿐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영주귀국은 자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영주귀국을 ‘21세기판 고려장’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외로움과 병마와 싸우던 몇몇은 견디다 못해 사할린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2012년에는 충북에서 우울증을 앓던 사할린 동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우리는 그래도 안산시청 공무원들이 나와 있어서 도움을 받으니 다행이지. 다른 지역에선 서류 하나 발급받으려 해도 말이 안 통하니. 고생 말도 못하요.”(박훈자 사무국장) 복지관 2층에는 행복학습관이 있어 매일 각종 행사가 열린다. 이날 오후에도 할머니 40여 명이 강당에 모여 당뇨 관리를 주제로 한 강연을 들었다. 안산시와 경기도는 매년 행복학습관에 5천만원의 예산을 따로 배정한다. 1층에는 한방치료실과 동아리방이 있고, 복도로 이어진 건너편 건물에는 마작놀이 등을 할 수 있는 할머니방, 할아버지방이 따로 있다.

병이라도 나면 사할린의 자식에게 손 벌려야

함께 모여사니 덜 외롭지만, 그래도 사할린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또 다른 ‘이산’이다. 만돌린 연주 연습을 하던 이영빈(78)씨는 심장병이 있는 아내 때문에 2012년에야 뒤늦게 영주귀국했다. “한국 오니 다 좋죠. 모국에 왔고 인종차별 없고. 무국적자들은 국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러시아 사람들에 비해 3분의 1의 월급을 받거든요. 동생들도 오고 싶어 하지만 1945년 이후 출생이라 못 왔어요.”

사할린에는 여전히 3만여 명의 한인이 남아 있고, 그중에는 영주귀국 대상인 1세도 1천여 명에 이른다. 30대에 사별한 박훈자씨 시누이도 짝지을 사람이 없어 영주귀국을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요. 우리만큼은 아니라도 다만 생계비 얼마라도 줬으면 해요. 러시아에서 주는 연금이 암만해도 적지. 물가는 비싸고.” 한-일 정부는 영주귀국자가 아닌 사할린 동포들에게는 아직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한 셈이다. 영주귀국도 내년에는 사업을 종료할 예정이다. 11월6일 사할린 현지에서 열린 영주귀국 사업설명회에서 박순옥 주한인 이산가족협회장은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1세 노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계속 프로그램이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도).

“당신네들은 모를 끼야. 외국에서 68년이나 산다는 기. 괄세가 엄청 많아요. 일본 사람들이 쫓겨오고 소련 사람들이 넘어왔을 때 러시아 국민증 안 받은 사람은 살고 있는 도시에서 3킬로 이상을 못 나갔다니까.” 지난 11월18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주공아파트 4단지에서 만난 한문형(81)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강원도 고성이 고향인 한씨는 탄광으로 강제징용된 아버지를 따라 7살 때 사할린으로 건너갔다. 한씨와 아내 김임순(78)씨는 2001년 영주귀국했다.

한씨 부부에게는 한 달에 97만원가량의 생계비가 지급된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생계비다. 1인 가구 지급액은 월 53만원가량이다. 각종 관리비와 전기·수도료 등을 내고 나면 식료품을 사기에도 빠듯한 액수다. 김임순씨는 집이 1층이라 겨울에는 난방비가 월 15만원씩 꼬박꼬박 들어가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가장 큰 걱정은 의료비다. 당뇨, 디스크, 골다공증, 관절염 등 이미 몸은 종합병동이다. 이웃 중에는 암환자도 많다. 큰 수술이라도 받을라치면 걱정이 앞선다. 그럴 땐 사할린에 남아 있는 자식 5남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여러 차례 논의됐으나 입법 이어지지 못해

“들어올 때는 자식들이랑 같이 살 맴으로 들어왔지. 근데 애들이 조선말을 못하니 안 되겠더라고. 우리 때만 해도 조선핵교가 있는데 애들 때는 핵교가 없어졌어.” 김씨는 2세, 3세에게 영주귀국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10월 사할린주 한인협회와 지구촌동포연대(KIN), 부산경남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은 ‘사할린한인역사문화센터’(가칭)와 이름 없이 묻힌 1세들의 위령시설을 건립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잇고, 한국말도 어려워하는 2세대들을 잇는 다리를 놓기 위해서다.

이은영 지구촌동포연대 사무국장은 “한-일 정부는 20년 넘게 일본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기댄 영주귀국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은 소멸했으나 도덕적 책임에 의해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비용을 부담한다는 태도이고, 한국도 사할린 강제동원이 정부가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포괄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화센터 건립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정부와 국회의 의지에 달려 있다.

현재 19대 국회에는 사할린 동포 지원을 위한 관련 법안이 2개 계류 중이다.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2년 대표발의한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는 영주귀국 대상자가 적어도 직계비속 1인을 가족으로 동반할 수 있도록 확대하고, 한국어 교육과 직업훈련 등 한국 정착을 위한 비용을 지원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의화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대표발의한 법안은 사할린에 사는 3만여 명의 동포가 고려인 동포에 포함됨을 명시해 이들을 지원할 복합센터를 짓고 역사 자료를 수집·관리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사할린 동포 관련 법안은 여러 차례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실제 입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할린 한인의 문제는 피해 당사자인 식민지 1세대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귀환과 미귀환의 문제가 아니라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구별되는 한국 ‘국민’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공동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한혜인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다. 더구나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제2조 2항)고 명시하고 있다. 하물며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무능력과 방치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재외동포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국가의 의무가 아닐까.

60살 노인에게 내려진 ‘한국 국적’ 판결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놨다. 사할린 동포인 김명자(60)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국적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것이다. 김씨의 오빠는 영주귀국해 강원도 원주에 살지만, 무국적자인데다 영주귀국 대상인 1세에 해당하지 않는 김씨는 러시아나 대한민국 어디의 국민도 되지 못했다. 김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상희 변호사는 “국적 확인 소송을 제기한 건 사할린 동포들의 역사성에 비춰 국가가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사할린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재일동포, 조선적(한국이나 북한 국적도 없고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재일동포) 등 국가가 방치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책임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년은 광복 7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사할린 동포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여전히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했다.

안산=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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