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팔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8월8일은 ‘포도데이’다. 숫자 8의 생김새가 포도가 알알이 달린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지정됐다. 올해 ‘포도데이’에 서울광장 한쪽엔 포도밭이 들어섰다. 포도 음료 및 와인 시음회가 열렸다. 가만히 있어도 부글부글 프라이팬 위에 선 것 같은 폭염 속에서, 아, 포도는 정녕 상큼했다! “한 잔 더”를 외쳤지만, 음료와 와인은 금세 동났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포도는 괴이함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임신 6~7주차 임신부의 자궁을 초음파 검사하면, 새카만 아기집이 하나만 보여야 정상이다. 그러나 간혹 까만 알갱이가 포도처럼 송알송알 붙어 있을 때가 있다. 이는 정상적인 임신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궁벽의 융모 조직에 부종이 나타난 증상으로, 포도상기태(葡萄狀奇胎·포도 모양의 이상 임신) 또는 포상기태(胞狀奇胎·방울 모양의 이상 임신)라고 한다. ‘기태’ 대신 우리 옛 문헌이나 일본에선 ‘귀태’(鬼胎)라는 표현도 쓴다. 최근 논란이 된 ‘귀태’는 ‘이상 임신’이란 뜻에 가까운 셈이다.
귀태는 뱃속에 알알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 원장은 “포상기태라 하더라도 수치상 임신 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초음파로 확인하기 전까지 임신부는 자각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귀태는 정상적인 태아로 자라지 못한다. 아예 사람의 형체를 띨 수도 없다. 태반으로 발달해 영양을 공급해야 할 융모가 제구실을 못하는 탓이다. 옛 설화나 전설에 나오는 ‘사람이 개구리알을 낳았다’는 괴담은 귀태의 비정상적 출산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 심 원장은 “포상기태는 정상적 태아가 아니기 때문에 수술로 제거해야 하는 비정상적 조직”이라고 말했다.
귀태가 바라는 손님은 초원의 복국을 먹고 돌아온다 했으니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7월1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귀태’에 빗댄 책을 인용하며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라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차라리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는 의학적 설명을 부연했어야 했다. 독립군을 토벌했던 이는 구십 평생을 ‘영웅’으로 살았고, 급기야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됐다. 문화재청은 그가 입었던 군복과, 일제 작위를 받은 이들의 예복과, 독재정권의 사법부 수장을 지낸 이의 법복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유신헌법의 초안 작성자는 승승장구하다 70대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친일도 독재도 제거되긴커녕 부활하기에 바쁘다.
귀태는 그를 맞아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박근혜 대통령은 7월10일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시민으로 자란다면 혼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한국사의 수능 필수 과목 지정으로 그에 화답할 모양이다. ‘독재자의 딸’로서 과거사 홍역을 치렀던 그가 끝내 아버지의 시대를 사과한 지 채 1년이 안 됐다. 역사는 독점할 수 없어서, 교실만이 아니라 신문과 뉴스에서도 배우기 마련이다.
귀태야, 수술대엔 은쟁반에 하이얀 수술복과 메스를 마련해두렴 귀태는 잘라내야 한다. 귀태가 있으면 정상적인 임신보다 호르몬 수치가 높아 임신부에게 위험하다. 일부 환자는 수술 뒤에도 종양이 남거나 악성 종양 형태로 진화하기도 한다. 깨끗이 도려내야 한다, 그 귀태는.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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