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폭리’ 논란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버티기를 하던 백화점 업계의 ‘빅3’(롯데·현대·신세계)가 결국 지난 11월8일 중소 납품·입점 업체들에 대한 (판매) 수수료를 3~7%포인트씩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11월 안으로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3대 대형마트와 5개 텔레비전 홈쇼핑 업체의 수수료도 인하하겠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대형 유통업체 중에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머지 52개에 대해서도 수수료 자율 인하를 유도할 방침이다.
수수료 인하 반대하는 사고의 바탕
카드회사들은 이에 앞서 지난 10월부터 중소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조처를 줄줄이 내놨다. 2% 초반대이던 중소 가맹점 수수료율을 대기업 가맹점 수준인 1.6~1.8%로 내리고, 중소 가맹점 적용 범위도 연매출 1억2천만원에서 2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율 추가 인하 압력은 약화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 11월9일에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주관으로 청문회까지 열렸다. 국회는 금융 당국이 기본 수수료율을 정하고, 가맹점 간 수수료율 차등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논의 중이다. 추가 인하 여력이 없다거나, 반시장적이라는 카드회사들의 볼멘소리는 사회의 거센 비난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은행들도 지난 10월부터 창구 송금 및 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를 33~49%씩 인하했다. 하지만 칭찬보다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은행 수수료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나머지 수수료들의 인하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수수료도 가격의 일종이다. 수수료를 포함한 가격 거품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격 거품 덕에 관련 기업들이 폭리를 취하고, 소비자만 골탕을 먹는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분양가와 휘발유 가격 논란이다. 가격 거품 여부를 파악하려면 정확한 원가 정보 파악이 먼저다. 하지만 기업들은 영업비밀이라고 버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도 원가 공개는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아파트 원가 공개 논란은 한동안 한국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을 정도로 뜨거웠다. 반면 휘발유의 경우 정유사 스스로 원가 공개를 했다. 휘발유 가격의 절반가량을 각종 세금이 차지하고, 업체들의 이익률은 2% 전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원가와 (판매)가격이 얼마 이상 차이가 나면 거품일까?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은 단순히 원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신제품 개발 등 기업혁신 활동에 대한 대가가 가격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원가에 일정 수준의 이익률만 허용한다면 누구도 혁신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애플은 올해 2분기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영업이익률)이 32.8%였다. 경쟁사인 삼성전자(9.5%)와 LG전자(1.2%)에 비해 적게는 3.5배, 많게는 27배에 이른다. 하지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가격에 거품이 있다거나, 애플이 폭리를 취한다는 비난은 많지 없다.
수수료 거품론을 부정하는 사고의 바탕에는 가격은 정부나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균형을 이루는) 점에서 결정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재화나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기업들도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그냥 받아들일 뿐, 가격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경제학에서는 설명한다. 실제 기업이 제품 경쟁력을 잃거나, 시장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때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판매한다. 그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문 닫는 일도 적지 않다. 이처럼 시장의 경쟁이 활발한 상황에서는 원가보다 가격이 높다고 해서, 폭리를 취한다거나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문제 삼기 힘들다.
가격경쟁보다 쉬운 담합의 유혹
수수료 차등 부과 논란도 마찬가지다. 백화점들은 외국 명품업체나 국내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에 더 많은 수수료를 부과한다. 카드회사들도 대기업 가맹점에 비해 중소 가맹점에 더 높은 수수료율을 책정한다. 중소기업들은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하지만, 백화점이나 카드업체는 시장원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며 맞선다. 백화점업계의 한 간부는 “외국 명품업체나 국내 대기업처럼 백화점의 수익 증대에 큰 기여를 하는 거래처를 우대하는 일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일부 명품업체는 소비자 유인 등 부대효과가 크기 때문에 수수료를 아예 안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경우 시장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품 가격을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것은 한국 경제가 몇몇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독과점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독과점 시장에서 참여 기업들은 치열한 가격·품질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가격을 정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한국 시장에서 대기업들의 담합 적발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시장의 특성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독과점 업체들은 힘의 우위를 이용해 거래 업체들에 불공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따라서 시장경제 원리를 내세워 가격이나 수수료 결정에 대해 정부나 소비자가 절대 간섭을 해서는 안 되는, 마치 ‘신성불가침’이라도 되는 양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 한국 시장에서는 설득력이 약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수수료를 내리는 방식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양극화 심화,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 밀어붙일 수 있지만, 여론의 관심이 식거나 경제환경이 바뀌면 언제든 수수료는 원위치할 수 있다. 백화점·카드회사·은행의 과다 수수료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이를 방치해왔다. 지난해 이후 ‘양극화’ ‘동반성장’ ‘대기업의 사회책임’이 화두로 등장하자 뒤늦게 허겁지겁 소동을 벌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겉으로는 가격을 직접 규제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업체들이 공생 차원에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압박하는 모양새도 옹색하다. 공정위는 수수료 인하에 소극적인 백화점업계를 압박하려고 최근 들어 수수료 실태조사 결과를 잇달아 공개하며 파상공세를 폈다. 하지만 백화점의 수수료 책정 과정에 어떤 법 위반이 있는지를 물으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정부는 법치를 해야지 관치를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사실상 수수료 인하 가이드라인을 주고 업체들에 따르도록 하는 방식은 객관성이 없어, 수수료 인하폭을 둘러싸고 적정성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한국음식업중앙회 남상만 회장은 “마케팅비에 몇조원씩 들어가고 방만한 경영과 고배당, 고임금 등이 다 원가에 들어간다”며 원가 공개를 하면 1% 수수료도 가능하다고 압박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오히려 하루속히 사라져야 할 비정상적 관치를 온존시키는 역기능까지 한다. 관치는 감독 당국과 업계 간의 유착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청문회에서도 금융 당국과 카드회사 간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은 “지난해 6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으로 금융위원회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원가 명세서를 요청할 수 있게 됐는데도 (수수료 과다 논란이 본격화한) 올해 10월까지 단 한 차례도 자료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담합 막으려면 경쟁적 시장구조 조성해야
수수료 논란을 해결하려면 평상시에 합리적인 수수료 체계를 수립하도록 노력하는 것과 함께 더 획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시장경쟁을 무력화하는 담합에 더 엄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담합 업체에 대한 과징금이 너무 적은 게 현실이다. 공정위는 2005년 법 개정을 통해 담합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을 관련 매출액의 5%에서 10%로 높였지만, 지난 10년간 평균 부과율은 2%에 그친다. 담합을 통한 이익이 과징금보다 더 큰데 누가 담합을 그만두겠나? 미국은 담합으로 얻은 부당이득이나 소비자 피해액의 2배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유럽연합(EU)은 관련 매출액을 글로벌 시장의 전체 매출액으로 넓게 적용한다. 그러니 한번 담합이 적발되면 수억달러씩 벌금이나 과징금이 부과된다. 소비자가 기업들의 위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더 손쉽게 배상받을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계속 미루고 있는 집단소송제를 하루속히 도입하고,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적용 대상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국한하지 말고 더욱 확대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시장구조를 더욱 경쟁적으로 바꿔야 한다. 가격이나 수수료를 낮추려면 시장에서 업체들끼리 가격·품질 경쟁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독과점 심화 우려가 있는 기업결합(기업 인수·합병)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 공정위는 1998년 국내 자동차시장의 독과점 심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를 허용했다. 결국 현대·기아차는 국내 자동차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사실상 가격결정권을 쥐게 됐다. 공정위는 2009년 3월에도 음료업계 1위인 롯데칠성이 해태음료의 공장을 부분적으로 인수하도록 허용했다. 공정위는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09년 9월 롯데칠성·코카콜라 등 5개사를 가격 담합 혐의로 제재했다. 이 5개 음료업체는 국내 음료시장의 75%를 지배하고 있다. 공정위는 현재 대형마트 1·2위 업체인 이마트와 롯데쇼핑이 각각 킴스클럽과 씨에스유통을 인수하려는 기업결합 건을 몇 개월째 심사 중이다. 공정위는 왼손으로는 시장의 독과점을 심화하는 기업결합을 승인하고, 오른손으로는 독과점 업체의 과도한 수수료 거품을 빼겠다고 뛰어다니는 자기모순적 행동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금융산업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은행이 서너 개로 통폐합돼 은행산업은 명시적·암묵적 담합 구조가 정착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은행은 외환은행 인수에 목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강만수 산업은행 총재는 올해 상반기 메가뱅크(초대형은행)를 내걸고 우리은행 인수를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제동이 걸리기까지 했다.
큰 기업이 좋은 것만은 아냐
기업주에게는 기업이 클수록 유리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시장을 지배하기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에게는 기업이 클수록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기업이 너무 커서 시장지배력이 강해지면 가격이나 수수료 거품이 오히려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한국 사회의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무너졌다. 이제는 정부나 국민이 ‘대마 선호’의 맹신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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