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피죤 비리에 눈감은 MB의 ‘공정사회’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국세청과 검찰, 정식 조사 미룬 채 눈치보기만…막장 기업 비리 넘어 자본과 권력의 유착도 직시해야
등록 2011-09-28 17:22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집권 후반기 국정지표로 제시한 데 이어 올 들어 공평과세를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8대 과제 중 하나로 내걸었지만, 온갖 비리와 탈세 혐의가 드러난 피죤 사주 일가에 대해 사정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 2월17일 청와대 세종홀에서 열린 제1차 공정사회추진회의에서 개회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집권 후반기 국정지표로 제시한 데 이어 올 들어 공평과세를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8대 과제 중 하나로 내걸었지만, 온갖 비리와 탈세 혐의가 드러난 피죤 사주 일가에 대해 사정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 2월17일 청와대 세종홀에서 열린 제1차 공정사회추진회의에서 개회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피죤 탈세 조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국세청 본청에서) 자료 분석이 끝나서, 관할 지방국세청에 사건이 이첩됐습니다.”

“탈세 제보를 한 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세무조사를 시작했다는 얘기가 아직 없네요.”

“기존에 조사 중이던 사건들도 있으니 늦어질 수 있습니다. 조사 시점이 언제가 될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피죤 안에서는 진작부터 증거자료를 없앤다고 난리치는데….”

국세청과 피죤 관계자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 내용 중 일부다. 청와대와 국세청에 피죤 이윤재 회장 일가와 회사의 탈세 혐의에 대한 제보가 접수된 지 벌써 두 달이 됐다. 제보자가 직접 국세청에 들어가 혐의를 입증해주는 수많은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설명까지 끝냈다. 하지만 국세청은 정식 세무조사 착수를 미룬 채 눈치보기만 하고 있다. 그사이 이 회장의 책상 위에 높게 쌓여 있던 서류는 다 없어졌다.

청부폭력 의혹과 협박 전화

“회사와 가계가 구분이 없거나, 회계가 불투명한 중소기업이 있다. 중소기업도 투명경영을 통해서 기업답게 해나가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9월8일 ‘공생발전을 위한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피죤은 사주가 회사와 가계를 구분하지 않고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유용하고, 불투명한 경영을 한 대표적 사례다. 피죤의 전직 임직원은 “이 회장이 수억원∼수천만원의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면 직원 서넛이서 해당 금액을 몇 개 은행에서 5만원권으로 분산 인출한 뒤 쇼핑백에 담아 전달했다”며 “이 회장은 이와 별도로 매달 임원실 여직원을 시켜 300만원씩 회삿돈을 정기적으로 빼갔다”고 털어놨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를 집권 후반기 국정 지표로 제시했다. 올해 초에는 ‘공평과세’를 공정사회 구현의 중점 과제로 강조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피죤 사주의 불법 혐의는 탈세, 회삿돈 횡령,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실명제 위반, 허위 공사계약 체결, 해외 재산 유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피죤의 한 전직 임원은 “정부가 공정사회를 강조하지만 말뿐”이라며 “이러니 누가 정부를 믿겠느냐”고 탄식했다.

이윤재 회장에게 부당 해고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낸 이은욱 전 사장이 지난 9월5일 집 앞에서 괴한 2명에게 피습당했다. 함께 소송 중인 김용호 전 상무도 사건 직후 “이 전 사장이 폭행당한 거 알고 있느냐. 조심해라. 빨리 합의하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피죤 사주 쪽의 청부폭력 의혹을 제기한다. 피죤 사주 쪽에서는 부인하지만, 회사 안팎에서 청부폭력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잇따른다. 피죤의 전 직원은 “이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나는 깡패 출신이야’라는 말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1997년 피죤에 자주적 노조가 출범했을 때도 노조 주도자들에 대한 극단적 대응을 언급했다고 한다. 한 전직 노조 간부는 “당시 이 회장은 노조 와해를 위해 노조원 회유, 매수, 부당 인사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는데 회사 간부들에게 ‘사람들 시켜서 (노조 주동자들을) 죽여버리지 않고 뭐하느냐’는 질책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피죤 사태가 각종 비리 혐의에 이어 청부폭력 의혹까지 더해지며 21세기 글로벌 선진경제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기기 힘들 정도로 ‘막장 기업범죄’의 양상을 보이는데도, 사정 당국의 핵인 검찰도 손을 놓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 9월20일 전국 특수부장회의에서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부정부패와 전면전을 벌일 것”이라고 강조한 사실이 무색할 지경이다. 검찰은 오히려 언론 동향 파악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다. 피죤 사태를 취재 중인 한국방송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사람을 통해 피죤 관련 방송을 언제 할 계획인지 문의해왔다”고 말했다.

“걱정 마라, 10억 원이면 다 해결된다”

“그동안 피죤 임직원들의 이직률이 높고 관련 업계에 비리 소문이 무성했는데, 사정기관들은 수십 년간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피죤 안팎에서는 그 비밀의 열쇳말로 피죤과 관계기관 간의 ‘유착’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세청은 2009년 이윤재 회장을 ‘모범납세자’로 선정해, 3년간 세무조사를 면제했다. 또 2005년 이후 단 한 번도 세무조사를 한 적이 없다. 수십 년 전부터 자녀들의 이름을 빌려 회사 주식과 토지, 건물 등을 매입하는 수법으로 수백억원의 세금을 탈루하고 회삿돈 횡령과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를 일삼아온 탈세 혐의자에게 모범납세자의 훈장을 달아준 것에 대해 국세청은 뭐라 설명할까?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세무서 직원들이 담당 기업의 수저 수까지 알 정도로 내부 사정을 꿰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서도 “할 말이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기업 비리의 백화점’인 피죤에 감투를 씌워준 곳은 국세청뿐이 아니다. 사주가 임직원들에게 폭행과 폭언, 부당 해고를 일삼고 회삿돈 횡령과 탈세를 밥 먹듯이 저지른 피죤에 환경부는 2009년 지속가능경영대상을 줬고, 노동부는 2005년 노사문화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 언론들은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대상’ ‘소비자가 뽑은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대상’ ‘글로벌리더상’을 앞다퉈 수여했고, 경영컨설팅기관과 소비자단체들도 ‘한국윤리경영대상’ ‘신뢰기업대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피죤이 2005년 이후 올해 초까지 받은 상은 무려 79개로, 한 해 평균 13개꼴에 달한다. 한 경제신문사는 거의 매년 피죤에 상을 안겨주었다. 인간 경시의 막장경영과 비리경영을 일삼아온 피죤 사주에게 정부와 언론 등이 무더기로 상패와 꽃다발을 안긴 비밀은 무엇일까? 피죤의 전직 임원은 “이 회장이 받은 상은 모두 돈 주고 사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경찰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피죤 직원들이 이윤재 회장에게 폭행당해 고소하면, 경찰은 오히려 사주 편에서 사건 처리를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 전직 임직원은 “2008년 한 간부가 이 회장에게 폭행을 당하고 칼로 찔리고 회사에서 쫓겨난 뒤 관할 경찰서에 상해 혐의로 고소했는데, 담당 경찰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와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 사회적 파장이 클 테니 무조건 피해자와 합의하라’고 친절히 일러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현 피죤 사태에 대해 국세청과 검찰이 눈치보기를 하는 이유를 이윤재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특수관계에서 찾는 이도 많다. 이 회장은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해 이명박 대통령과 동문이다. 이 회장은 평소 고려대 경영대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고려대 경영대의 LG-포스코경영관에는 이 회장의 이름이 붙은 ‘이윤재 강의실’이 있다. 피죤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평소 든든한 인적 네트워크를 과시해왔다”며 “현 정부 아래에서는 피죤 조사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도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임직원들 앞에서 “걱정할 것 없다, 10억원이면 다 해결된다”며 큰소리쳤다고 한다.

뿌리 깊은 기업비리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피죤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지속된 것들이다. 국세청·경찰·노동부 등 관계 기관 및 언론과의 검은 유착이 없었다면 과연 그런 뿌리 깊은 비리가 지금까지 온존할 수 있었을까? 실제 피죤의 한 관계자는 “수년 전에도 몇몇 언론들이 회사 비리를 취재했지만, 광고와 촌지로 모두 막았다”고 털어놨다.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뒤 후손에게서 똑같은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다. 피죤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단순히 탐욕스럽고 전근대적인 한 기업가의 비리만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구조적인 검은 유착도 함께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